찰떡(글/김연숙)
두터운 코트처럼 얼었던 대지가 녹는다.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땅속의 기운들이 깜짝 깜짝 놀라서 기지개를 켠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를 바깥으로 유혹하던 날 고향 친구들이 찾아왔다.음식과 이야기
마침 전날 모임에서 먹다 남은 찰떡이 있길래 떡을 쟁반에 담아 새빨간 딸기와 함께 내어 놓으니 모두들 좋아한다.
그 옛날 효자가 한겨울에 딸기를 찾아 나서서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박도 딸기도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우리는 옛날 임금보다 더한 호강을 한다며 수다를 떤다. 그러다가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고향 이야기가 나오고, 중년이 된 아줌마들은 세월을 밀쳐내고 초등학생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 할머니와 동행한 봄 소풍
봄이 되면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소풍이었다. 별난 장난감도 놀이도 없던 그 시절 소풍이라는 말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은 설레었고 며칠이 남았을까 손을 꼽고 벽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기다렸다.
소풍은 언제나 단골인 도산서원이다.
꼬불 꼬불 산길을 한 줄로 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땀을 흘리며 그곳에 다다르면 시원스런 강물이 굽이져 흐르고 우거진 숲에서는 산새들의 합창이 우리를 반겼다.
부지런하신 할머니는 점심을 싸가지고 소풍 길에 동행하셨다. 그때는 김밥을 싸가기도 힘들었고 사이다, 콜라 한번 사 먹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계란 삶고 콩가루 묻힌 찰떡을 만들어서 보자기에 싸 들고 오신 할머니.
농사를 지어서 날콩가루는 국이나 국수 부침에 쓰고 볶은 콩가루는 밥을 비비거나 떡고물로 이용했다. 할머니는 찰떡을 들고 따라다니시며,
“이것 좀 먹어라.”
고 사정을 하셨지만 못된 손녀는 할머니의 쌈지 돈으로 산도나 사탕 풍선 불기를 즐겨 했었다.
“너희 할머니, 너한테는 끔찍하셨지 우리 너희 집에 가서 놀기도 자주 했는데…”
친구도 우리 할머니를 잊어버리지 않았나보다. 소풍을 가면 수건 둘리기, 보물찾기, 노래 부르기, 밀가루 쟁반에서 엿 먹기. 오가는 시간들이 너무 많이 걸려 항상 소풍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객구야 물러가라”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만들어 오신 정성이 아까우신지 자꾸만 떡을 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배가 고픈 참에 친구들과 몇 개 먹었는데,
‘아뿔싸’
물도 제대로 안 마시고 꿀떡 삼킨 찰떡이 가슴에 꼭 체했는지 다리에 힘이 없고 얼굴이 샛노래지며 만사가 귀찮아졌다. 집은 가야 하는데 친구들은 저만치가고 할머니는 나를 부축 하느라 땀을 흘리시며 애를 쓰셨다. 겨우 집에 돌아와 할머니는 종지에 좁쌀을 넣고 헝겊으로 덮으신 뒤 배를 쓰다듬으셨다. 그러면 종지 한구석이 구멍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좁쌀이 가득 차면 틈새가 안생기고 조금 덜 차면 틈새가 생긴 것 같다.
음식과 이야기 할머니는 ‘객구(객귀) 들렸다’ 하시며 바가지에 물과 칼을 가지고 와서 음식도 조금 넣고 내 머리카락을 칼로 자르는 시늉도 하고 이곳저곳에 금을 긋고는 사립 문밖으로 나가셔서
“객구야 물러가라.”
하시며 칼을 내동댕이치셨다. 마음의 병인지 약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나면 씻은 듯이 아픈 배가 나았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엉터리라고 말하겠지만 할머니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이후로 나는 찰떡을 안 좋아했다. 그러나 지금은 행사만 있으면 삼색 찰떡을 주문을 한다. 보기에도 예쁘고 고향 생각도 나기 때문이다. 떡을 좋아하면 나이든 징조라는데 나도 서서히 황혼으로 달려가는 중인가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