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을 건드리는 사람들(글/김재왕)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땅벌에 쏘여 ○명 사망, ○명 중태'같은 기사가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가을 벌의 집단 공격을 받아 사람의 생명이 위태해지는 일이 매년 일어나고 있다.
사실, 벌이 철새처럼 꼭 가을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때만 벌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아닐텐데 매년 가을이면 유독 벌에 쏘여 많은 사람이 다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추석 전에 산소를 돌보아야 하는 관습 때문이다. 거기에다 봄철부터 숫자를 불리기 시작한 땅벌의 수는 이때가 되면 불어날 대로 불어나 벌집을 건드리기만 하면 떼로 기어 나와 사람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몇일전이다.
마침 토요일이라 일찍 진료를 마치고 밀린 서류정리를 하고 있는데 부축을 받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벌에 쏘였다고 했다. 얼굴은 이미 불덩이처럼 벌겋게 달아 올랐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머리와 목엔 빠꼼한 자리 하나 없이 벌에 쏘인 자국들로 가득했으며, 손등과 팔도 나을 바가 없었다. 아마 쏘일 당시엔 달라붙은 벌들로 사람이 아니라 벌을 뭉쳐놓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혈압은 떨어져 있었고 천식음이 들리는 응급한 상황이었다. 필요한 처치들을 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소 안정이 되었다.
환자는 조금 남은 일을 마저 하려고 했으나 숨이 가빠오고 함께 온 사람들의 독려를 못이겨 내려왔으나 이후의 기억은 가물가물 하다고 했다. 만약 혼자 산에 있었거나 산에서 어물쩡 시간을 보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늦었어도 심각한 곤란을 당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월요일 아침, 그는 여기저기 부어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작업복 차림의 그는 남은 벌초 일을 마저 하러 산에 가야한다며 치료를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우묵한 산(묘지)을 보면 자식도 없냐고 욕할 거 아니오. 벌에 물려 죽으나, (있는)자식 없다 소리 들으며 사나 그게 그거 아입니까?"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년 수십명의 사람들이 벌떼를 만나 사경을 헤메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의 구실을 다하며 사시는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오늘은 벌떼를 조심하십시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