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의 텃밭(글/사진 - 이현정)
「용상동」
예나 지금이나 땅에 발붙이고 사는 건 마찬가지지만 언제부터인지 하루 종일 걸어도 흙 밟을 일이 없을 때가 있다. 비가 와도 바짓단에 흙탕물 튈 일 없어 그것 하나는 좋다.
콘크리트 골목, 낯선 집 앞에 옹기종기 놓인 저 화분들이 돌아가신 할매의 남새밭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쩐 일인가. 예닐곱 이랑쯤 되는 땅에 오이며 부추, 파, 열무, 상추, 쑥갓, 완두콩 따위가 살뜰히도 심겨져 있던, 저녁 무렵이면 “부추 한 옹큼, 파 서너너덧 뿌리만 베어 오너라” 하는 심부름을 하기도 했던 남새밭.
이 집에는 어쩌면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굽은 할머니도 사실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석동」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신시장 마트와 재래시장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게 채소다. 그런데도 해마다 여러 가지 채소를 화분에다 심어 놓고 거두어 먹는가 보다. 해묵은 화분부터 새 것 같은 화분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집집마다 대문 양쪽에 두서너 개부터 열 개 남짓 화분들이 있다. 털털하고 투박한 화분들이지만 줄 맞춰 가지런히 놓고 물이 잘 빠지도록 한 뼘이나 높게 해 둔 꼼꼼한 솜씨가 골목 안 아주머니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운흥동」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디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빛이 들어올 공간도 없는 골목에는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낡은 담벼락과 이삼십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스레이트 지붕이 눈높이에 있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젖히면 사람 사는 풍경이 보인다. 옥상에 거미줄처럼 늘어진 빨랫줄이며, 맨땅 없는 마당 대신 옥상 곳곳에 놓은 화분 안엔 고추며 상추며 가지가 6월 빛을 가득 받아 골목의 풍경을 생기 있게 한다.
「대석동」
마땅한 그릇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흙을 담을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지난 겨울 생선을 담아 두던 스티로폼 박스와 깨진 플라스틱 그릇, 어디선가 주워온 튼튼한 비료 포대에 알뜰히 고추가 심겨져 있다.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막대를 세우고 끈으로 단단히 메어둔 주인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보인다.
고작 세 포기에서 고추가 열려 봤자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여름 내 서너 식구 입맛 돋울 정도는 착실히 되겠다. 밥상에 올라 올 싱싱한 풋고추를 생각하니,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