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혜 장터(글/김선주)
여느 시골장터보다 더 한적한 온혜 장터6월이 시작되는 첫째주말이다. 요즘 계속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의 이런 날씨에는 어디로든 가서 콧바람이라도 쏘여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장에 갈 채비를 했다. 시골장터, 말 그대로 내가 옛날에 보던 흥겨운 정취와 훈훈한 인심, 그리고 도란도란 이웃이야기들이 그리운 이때, 마침 오늘이 장날이라는 도산면 온혜장으로 향했다. 재래시장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일거란 생각에서 그리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아홉시 경, 장에 막 도착했을 때는 조용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까닭일까, 장구경 나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찐빵장사 부부, 채소와 과일 파는 아저씨, 옷이며 이불이며 파는 아주머니, 그릇 난전을 펴는 부부장사꾼, 그리고 닭 파는 할머니가 장사 할 채비에 한창이었다. 이들로 장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찾아들기를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심사에 바로 근처에 있는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주인아저씨가 교회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혜학생사를 운영하는 이무열(57)씨,
“장사꾼들이 장날로 오니까 서로 약속하듯이 필요하면 나와 가지고 뭐 생필품을 사가지고 가지요. 근데 요즘은 사람들이 워낙 없으니까 옛날만큼 안돼요.”
천정을 가리키면서 옆 한 칸을 튼 흔적이 보이냐며, 옛날에는 문구점 옆 한 칸에는 양복점이 있었다고 했다. 양복점이 있었을 만큼 그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던 시절, 이제는 사람들 자체가 다 떠나버렸단다.
이무열씨가 문구점를 한지는 20년 정도 되었단다. 이곳 장터는 1976년 안동댐이 만들어지고부터 온혜장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곳을 청계장이라고도 부른다고. 푸를 청(靑) 시내 계(溪) 런가.
온혜초등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문구점에는 공책이며, 구슬 등 옛날 초등학교 시절의 준비물들이, 그리고 흰 고무신까지 즐비하게 놓여져 있었다. 정겨운 물품들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골장터에서 볼 수 있는 문구점 옆 조그만 슈퍼마켓 앞 평상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어제 밤 먹다 남겼을 법한 소주 한 병과 과자봉지가 놓여져 있다.
문구점을 나오니 이제 장이 제법 갖추어진 것 같았다. 장보러 온 사람들도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릇전부터 갔다. 그곳에는 아침준비를 하다 무엇을 떨어뜨린 모양인지, 바가지가 깨졌다며 사러 온 올해 여든넷 되는 김계월 할머니가 있었다.
“며느리는 들에 나가고, 아들은 바가지 사지도 안하제, 내가 나물 담고 하기에 아쉬우이께네 이래 사러 왔지. 원래 이 장사 잘 안오는데, 마침 오늘 왔네.” 한다.
바가지 살 생각은 없었고 놀러 나왔는데, 마침 그릇전도 온 김에 바가지 하나 사 간단다.
사람들이 이제 제법 지나간다. 관광버스도 한 두대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휴일이 하루 더 있어서 그런지, 청량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보다.
이제 찐빵이며 도너츠를 파는 데로 갔다. 안동시내 5일장은 다 다닌다는 송인걸(51), 전순화(49)부부. 안동뿐만 아니라 영주, 영양, 예천 다 돌아다닌단다. 언제까지 장터에 있느냐는 물음에,
“해 빠지면 가요. 오늘은 휴일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좀 괜찮네요. 원래 오늘 영주 부석 갈려고 했는데, 그냥 이쪽으로 왔어요. 옛날 그래봐야 장사한지 10년 됐어요. 그때는 장꾼이 참 많았어요.”
과일, 채소, 어물 등을 파는 이연노(61)씨도 오늘은 좀 장사가 되는 것 같았다. 할머니 두 분이 채소를 사러 나온 모양이다. 근처에 가서는 어디서 왔는지, 고향은 어딘지 물으니,
“요 아랫동네 살아. 여기서 4～50년을 살았지. 녹전에 있는 사신동 거-서 났고. 일로 시집왔지.” 한다.
일흔이 다 되간다는 할머니들 말씀에 젊어보인다며 못 믿겠다니 ‘한턱 내야될새’ 한다.
“올해 아홉이래. 예순아홉.”
“장날 내내는 못 오지. 돈 있을 때 오지 뭐. 촌에도 요새는 나물도 다 사먹어야 되고. 오늘은 배추사고 무사고 양파사고 했지.”
옆에서 이연노씨가 한마디 거든다.
“저 할매 옛날 노래도 잘 부른데이.”
할머니는 본래 못한다고 손사래를 친다. 한 자락 듣고 싶었는데 극구 안 된다고 하니, 다음기회로 미룰 수밖에.
“옛날장이랑 다르고 마고지. 장이사 이게 가지래. 땅이 가진대 뭐. 그래도 옛날에는 젊은 사람도 많았고. 근데 요새는 젊은 사람이 없지.”
온혜장터 사람들, 장꾼들도 이제는 몇 십 년의 세월로 온혜사람이 다 되었나보다. 서로 안부를 물어주고 인사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내 옛날의 기억 그대로 장터는 만남의 장인 것처럼 말이다.
옷장사하는 권순화(55) 아주머니도 만났다. 아직 며느리도 사위도 안 봤다는 아주머니, 피복장사만 25년째란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우리를 알아봐. 처음 시작할 쯤에, 여기 조그만한 애들이 이제는 시집장가 다 가고 고향에 와서는 ‘아직도 이 장사하세요?’ 이러는데…. 그때 초등학교 다니면서 일곱 살 열 살 그랬던 애들이 벌써 그렇게 되긴 했지.”
오늘따라 장꾼들도 안 오던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했다. 장사 25년의 베테랑답게 손님들도 오면 다행이고 안 오면 그만이라는 아주머니, 날이 선선할 때는 더 노다 간다는 여유도 보였다.
옆에서는 닭이 울어댄다. 중닭은 처음 본다며 옆 친구가 신기한 듯 보러 간댄다. 닭의 주인은 올해 팔십되는 권감녀 할머니이다.
오징어 회를 기다리는 이유근씨.“나는 손녀가 팔남매야. 장사 안 해도 되는데, 아픈 데가 없으니까 이렇게 나와. 아들이 못하게 하지만은 근데도 건강하니까 이렇게 나오지. 이래 벌어가지고 손자들 학교 입학금주고 그래.”
바둑 삼매경인 그릇상 아저씨와 화초 파는 아저씨.할머니가 준 등록금으로 공부도 잘 한다는 손주 손녀들이 기특하기만 한가보다. 할머니한테 편지도 써서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했다며 자랑이 늘어진다.
권감녀 할머니는 월곡이 고향이고, 지금은 오천에 살고 있단다. 할머니가 서른 때부터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닭 장사 하기 전에는 소금도 팔고 그릇도 팔고 했단다.
“배도 골고 고생 참 많이 했어. 요새는 살기 좋잖아.”
쑥을 어디서 뜯어왔는지 다듬고 있었다. 곧 있는 단오에 쑥떡을 할 거란다.
도산 온혜에 사시면서 택시 운전하시는 이유근(49)씨도 친구가 온 터라 오징어 회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저는 여기 토박이예요. 옛날에는 장이 잘 됐지요. 지금은 보다시피 사람들도 별로 없고요. 안동댐이 되면서 장이 여기 새로 생겼는데, 그전에는 저 밑에 서부동 쪽에는 뒷골목에 사람들이 부딪쳐서 못 댕겼지. 지금은 거기도 여기도 안 되고, 시골장이 안되지요. 차편이 좋으니까 시내가가지고 마트에서 다 사고하지 뭐.”
오징어 회 장수가 와서 그런지 갑자기 장터의 활기가 사는 듯, 장터 안에는 여유롭고 정겨운 모습들로 가득했다.
점심쯤이 지났을까. 한달에 한두 번 정도 온다는 그릇상 아저씨와 화초 파는 아저씨, 옆 자락에서 한바탕 바둑판을 벌이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아주머니들끼리 모여서 오랜만에 본 터라 그런지 요란스럽게 웃고 담소도 나누었다. 그 옆에는 외지에서 온 등산객들이 막 내려와 장터에서 오징어 회를 안주로 잔을 주고 받으며 쉬어가고 있었다.
서로의 목적은 다르지만 그렇게 그렇게 동화되어 한 곳에서 만나가는 그러한 장터, 그곳은 신록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여름날, 고향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곳이었다. 그래도 막걸리 한 사발에 절로 나오는 할아버지의 어깨춤이 그리운 건 어쩔수 없나보다. 한적할 것이라는 예상외로 가슴 한가득 따뜻함을 담아 돌아와 오는 내내 뿌듯했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