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변천의 근원을 찾아서(글/이동백)
며칠 전에 휴대 전화를 잃었다. 낡고 투박한 구형이긴 해도, 생광스럽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먼데 소식도 전해 주고, 시간도 알려주던 것이다. 상심해 있는데 인터넷이 이 놈을 찾을 묘안을 제시해 주었다. 위치 추적 프로그램에 접속하니, 이 녀석의 소재지가 표시되어 나왔다. 마음에 집히는 곳이 몇 나섰다. 의심이 가는 곳을 잡아 차근히 뒤져나가기 시작했다. 잃은 지 꼭 하루만에 놈을 찾아냈다. 나는 놈을 찾는 과정에서, 특히 마지막 망을 좁혀 들어갈 때에는 마음에 어떤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미지를 탐색해 갈 때의 그 전율과 스릴 같은 것 말이다.
이번으로 반변천의 취재는 끝이 난다. 순서에 따라 반변천의 근원을 더듬어 가게 된다. 포위망을 좁혀 들어갈 때의 그 전율을 피부로 느껴 가면서 근원을 찾아 나선 길의 출발점은 일월면 소재지였다. 반변천은 이 곳에서 가랑이가 찢어진다. 찢어진 가랑이 하나를 이끌고 장군천은 북쪽으로 사라진다. 장군천은 4킬로미터쯤 올라가다가 그 천변에 조지훈 선생을 낳은 주실 마을 남겨 두고는 일월산 깊은 골짜기를 향해 굽이굽이 더딘 발길을 옮기어 간다.
영양향교
반변천이 장군천으로 갈라져 나가는 지점에서는 길도 갈라진다. 31번 국도는 장군천 쪽으로 길 하나를 떼어주고는 장군천 위를 지나간다. 장군천은 작은 시내여서 놓인 다리도 작다. 반변천을 건너서 찾은 곳은 영양 향교였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이 향교는 인재 양성 교육 기관으로 1677년(숙종 3년)에 건립하였으며, 대성전, 명륜당, 육영루, 동·서재, 전사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대성전은 전면이 회랑으로 되어 있는데, 그 회랑에는 여섯 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섰다. 정면 5칸, 측면 2칸인 명륜당의 팔작지붕 위에 새포롬하게 낀 이끼는 이 건물의 오랜 연륜을 대변해 주었다. 특이한 것은 암막새에 康熙二十三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기와의 제조 연대 표시인 듯 했다. 향교 앞에서는 하마비가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비에는 大小人員下馬碑라 적혀 있었지만 마모가 심해서 손가락으로 그려 가면 읽어야 했다.
향교에서 조금 내려앉은 산발치에는 한양 조씨 영양 입향조(入鄕祖)인 참판공 조원(趙源)의 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기묘사화를 겪은 한양 조씨가 영양으로 들어온 것이 1535년이고, 이때 건축된 건물이다 보니, 종택은 매우 낡은 상태였다. 종택 옆에는 근간에 세운 듯한 건물이 육중하게 들어서 있었다. 口자로 지은 이 집에는 사람은 살지 않았다. 아마 숭조상문(崇祖尙門)의 상징물으로 지은 것 같으나, 종중(宗中) 행사가 여기서 치러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에는 思義精舍란 현판이 사람을 위압할 만한 모습으로 걸렸다. 이 건물 앞에 선 漢陽趙氏英陽世居紀蹟碑에는 한양 조씨 영양 입향 내력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다 읽을 수는 없었으나, 대략 한양 조씨는 참판공 조원의 뒤를 이은 수월(水月), 사월(沙月), 호은(壺隱)을 거쳐 지훈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날린 명문세가라는 내용쯤이 아니겠는가.
가천정
반변천과 작은 들을 사이에 두고 국도는 모롱이 하나를 돌아 나갔다. 모롱이를 돌아나가면 섬촌 마을이다. 일월면에서는 가장 너른 들을 낀 마을이다. 이쯤에서 강도 그 폭을 넓히고, 들을 에워 두르는 것이 마치 큰 활이 휜 꼴이다. 섬촌 끝자락에는 길게 섬촌교가 놓였다. 이 다리를 건너서 또 한 모퉁이를 돌아나가는데,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절벽 밑을 지나는 길을 넓히느라 붉은 절벽을 깎아내는 중이었다.
강을 타고 가 닿은 곳은 덕봉 마을이었다. 강 건너에 앞짱구처럼 폭 솟은 산봉우리가 덕스럽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리라.
덕봉 마을에서 반변천은 다시 갈라졌다. 가천 마을을 지나 송하, 죽파 마을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파천이 반변천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잠시 반변천을 버리고 장파천으로 길을 잡았다. 좁은 골짜기를 뚫고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간 곳에 가천 마을이 산기슭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앞으로는 장파천이 흐르는데, 집채만한 붉은 바위가 강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앉아 있었다. 그 바위에는 佳川洞天이란 명문(銘文)이 음각 되어 있었다. 그 어느 시대에 신선이 내려와 이 바위에서 한바탕 호탕하게 놀았을까. 가까이 가서 본즉, 이 명문 옆에도 작은 글씨로 무엇이라 쓰였으나, 강물이 가로막아 그 글씨를 읽어낼 수 없었다. 한참을 서서 그 바위를 바라보노라니, 여울을 타고 내리는 겨울 강의 물소리가 무척이도 맑다. 도시의 소음에 찌든 귀를 깨끗이 씻어 주었다.
장파천은 일찍이 폭포석으로 이름난 강이다. 지금은 구하기 힘들지만, 한때 이 곳에서 많은 폭포석이 나와서 수석 애호가들에게는 훌륭한 탐석지였다. 요행을 바라며, 강 언저리를 어슬렁거려 보건만, 폭포석 줍기는 복권 당첨되는 일보다 어려웠다. 돌 줍기를 작파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는 사람의 흔적은 없고, 길섶에 낡은 정자 하나가 나그네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천 김찬구 선생이 1783년에 세운 정자로 그의 호를 따서 가천정(佳川停)이라 했다. 인자(仁慈), 효도(孝道), 공경(恭敬)을 근본 삼아 정성을 다하라는 뜻에서 삼친당(三親堂)이란 별호를 가지기도 했다. 이 정자의 역사를 그 나이테의 갈피에다 죄다 품어 안고 있기라도 한 듯이 늙은 소나무와 향나무가 정자를 향하여 비스듬히 서 있었다. 정자 근처에는 또 월성 이씨 정려각과 당집이 뿌연 먼지를 온통 뒤집어 쓴 채 서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은 반쯤 깨지고, 문짝은 아예 떨어져 나가 버린 이 초라한 당집은 한 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아가며 볼품없는 당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당집이라고 그 안에는 洞主之神城隍神位之廟라고 쓴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가천 마을을 지나 송하, 죽파 마을까지 올라갔다. 좁기만 하던 장파천의 초입과는 달리 상류로 올라갈수록 들이 넓어지고 마을의 형세도 좋아 보였다. 문 닫은 초등학교 마을에는 트럭 여러 대가 주차하고 있었다. 마을 회관인 듯한 집, 섬돌 위에는 신발 여러 켤레가 놓였는데,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무슨 긴한 회의가 있는 모양이다. 강줄기는 길게 골짜기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끝까지 갈 수는 없어 중간에서 회정길을 잡고 말았다.
장파천은 송하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세 갈래로 나뉜다. 한 줄기는 기산리를 지나 삼승령에 닿고, 또 한줄기는 오십봉을 거쳐 백암산 한 줄기에다가 그 뿌리를 묻는다. 그리고 다른 한 줄기는 죽파 마을을 관통한 후, 멀리 검마산 깊은 골에다 그 꼬리를 드리운다. 장파천이 흘러내리는 송하 계곡은 청정(淸淨) 지구이다. 주변의 경치도 아름다워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산골 마을이 주는 정취도 정취러니와 기암 절벽이 몸을 담고 있는 맑은 물에 천렵이라도 하며 즐기는 맛은 쉽게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문암삼거리
장파천을 빠져 나와 덕봉 마을을 지나서 닿은 곳은 일월산 관광 농원 휴게소였다. 잠시 쉬면서 주위를 살펴본다. 강폭이 상당히 좁아지면서 쭉쭉 뻗은 소나무가 강바닥에까지 내려와 섰다. 층을 이루는 소나무 가지가 수평을 이루며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완연한 깊은 산중의 모습이다. 붉은 절벽들이 도열한 병사들처럼 강 언저리를 따라 솟아 있기도 했다.
한 모롱이를 급하게 돌아 나가는데 저만치 낡은 정자가 낮은 언덕에 서 있고, 주변에는 민가 몇 채가 서 있다. 정자 앞에는 높은 절벽이 하늘을 가리고 우뚝 솟아 있었다. 천심의 높이로 솟은 절벽 위에 소나무를 그럴 듯하게 세워 놓은 한국화를 참 많이도 닮았다. 그림에 좀이라도 소양이 있다면 이 앞에서 한번 붓을 잡고 싶다. 다만 허물어져 가는 정자가 안쓰러울 뿐이다. 정자 앞에 선 잎 다 떨군 단풍나무도 퍽 외로워 보인다. 어느 가을 이 곳을 지날 때 그리도 고운 잎을 달고 있던 단풍나무였는데 말이다.
다시 한 구비를 돌아 나가면 칠성리. 절벽을 이루는 조그마한 산 일곱이 강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서 있어 칠성리라 했다던가. 작고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었다.
반변천은 좁은 협곡 사이로 굽이쳐 흐르고, 길은 그 협곡에 붙어 나 있다. 다리 하나를 지나서 협곡을 빠져나가자, 길 위에 이정표가 높게 걸려 있고, 그 옆에는 풍요롭고 살기 좋은 영양이란 표어를 써 붙인 대형 광고판이 서 있었다. 문암 삼거리였다. 여기서 31번 국도는 또 한번 나뉘어 진다. 동쪽으로 갈려 나가는 길은 수비를 거치고 구주령을 넘어 백암에 잠시 머물다가 동해 바다로 빠져나간다.
가는 날이 장날이더라고, 마침 문암 삼거리는 유조차와 트럭이 충돌하여 난 사고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통행량이 많지 않은 한적한 도로이지만 이 지점은 사고가 잦은 곳이란다.
문암 삼거리로 들어가기 바로 전의 강자락은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유원지를 방불케 하는 곳이다. 반석이 알맞게 나 있고, 유량도 적당하여 몸을 물에 담그고 놀기 좋은 곳인 까닭이다. 그 바로 위에는 문암 마을에서 조성한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놀이터에는 미끈하게 빠진 적송 세 그루가 주변의 잡목을 거느리고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 있어 주변의 경치를 한데 아우르는 멋을 지녔다. 가을 같으면 그 아래 마련된 벤치에 앉아 일월산 줄기의 위용을 단풍과 더불어 감상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곳이다.
살얼음이 살짝 낀 겨울 강과 차가운 기운을 머금은 겨울 산이 연출해 내는 솜씨 앞에 잠시 옷깃을 여미는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크게 한번 세상을 들먹이게 할 만한 겨울 산에 마음은 한정 없이 위축되기만 했다.
일월면 용화리, 폐광된 광산
문암을 지나면 일월산이 그 모습을 들어낸다. 마침내 반변천의 발원지인 일월산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일월산, 해발 1,218m의 산세가 공중에 우뚝 솟아 웅장하고, 산정은 평평하고 급하지 않으며 동쪽으로 동해가 바라보이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 하여 일월산이라고 불려진 산. 꼭대기에는 일자봉, 월자봉의 두 봉우리가 솟아 있고 천축사라는 절터와 산령각, 황씨부인당 등이 있다. 특히 일월산은 태백산의 가랑이에 위치, 음기가 강한 여산(女山)으로 알려져 그믐날만 되면 전국 각지의 무속인들이 이 산을 찾아 내림굿을 한다. 그렇게 하면 점괘가 영험하고 신통해 진다고 하여 무속인들로부터 성산으로 추앙 받는다.
일월면 용화리에는 일제 시대부터 개발된 광산이 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지만, 1939년부터 40여 년간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터널을 통해 용화리 선광장(選鑛場)으로 운반하여 유용 광물인 금, 은, 동, 연, 아연 등을 생산하였다. 선광장은 깎아지른 듯한 산비탈에 만들어 놓았다. 운반된 광석을 선광기, 정광기, 농축기를 거쳐 광석을 추출해 내는 방식이었다, 산비탈을 타고 위에서 아래로 선광기, 정광기, 농축기를 차례로 설치하여 에너지를 절약해 가면서 광물을 얻어냈다. 지금은 영양군에서 관광지로 조성하여 견학하기 좋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국도변이라서 구경하기도 쉽다.
반변천은 용화 계곡 초입에서 물줄기 하나를 그 계곡에다 내 주면서 자신의 몸체를 줄여간다. 용화리의 아랫대티 마을에는 단아하게 선 삼층석탑 하나가 있다. 도로 가까이 서 있지만 눈썰미가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2단으로 된 기단에 3층 석탑을 올려 놓은 양식으로 현재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다른 부재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아랫대티 마을 끝자락에서 31번 국도를 벗어나 물길을 따라 난 좁은 시멘트 길로 들어섰다. 이쯤에서 반변천은 이미 강으로서의 모습을 잃고 있었다. 조그마한 실개천으로 변한 반변천에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돌돌거리며 돌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용화사, 천문사를 거쳐 윗대티 마을에 이르니, 시각은 오후 세시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찻길은 이 마을에서 끝이 났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이르니, 남의 집 마당이다. 마당에 차를 세우는데, 주인인 듯한 남정네가 잠시 쉬었다 가란다. 옷차림이 예삿사람은 아닌, 무슨 도인 같았다.
법명을 무명(無名)으로 쓴다고도 했다가 한때는 법산(法山)을 쓴 적이 있지만 이제 다 잊어 버렸단다. 알쏭달쏭한 대답이었다. 인연이 닿으면 절을 짓게 되는 법이라며 굳이 용심(用心)을 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루 세상을 돌아다녀 보았더니, 경북 지방이 불심이 깊은 곳이더라고도 했다.
"강원도 여러 산, 지리산 등지를 다녀봤지만, 여기 물이 제일입디다. 일월산의 온갖 좋은 약초가 썩어 정화되어 나온 물이라 그런가 봅니다. 일월산 산중턱에서 파이프로 뽑아온 물로 탄 겁니다."
커피를 뜨겁게 끓여 건네면서 하는 법산의 말이었다.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서둘러 나왔다.
3대째 윗대티에서 살고 있는 황희철씨
마을에서 황희철 씨(54세)를 만났다.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그는 5천여 평의 밭에 천궁과 고추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한창 많을 적에는 12가구가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고작 다섯 집뿐잇시더. 그것도 토박이는 두 집뿐이고 다 들어온 사람들이지요. 들어온 사람들은 농사일은 안 하고 믿는 사람들인데, 무속인이라고 보면 되지요. 이 산 안에는 그런 사람이 많니더."
"반변천의 발원지가 여기서 멀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여서 한 30분 정도 올라가야 될 걸요. 여기서는 칡목밭이라고 하는데, 산죽이 지천으로 갈려 있어요. 그 가운데 굴이 하나 있고, 거기서 물이 흘러나오지요. 그 굴 안은 마당 만한 공간을 이루고 있어요. 굴 안에는 이 굴 지킴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부정을 타고 물을 마시러 들어가면 물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뚜렷한 신화적 화소(話素)를 가지지는 아니했으나, 미미하게나마 신화적 화소를 지니고 있어서 반변천의 발원지로서의 가치는 인정되었다. 무릉도원 같은 배경 설화를 가졌더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았지만,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발원했더라면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시간이 없어 올라가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러하네요. 걸어서 못 가면, 차로 일월산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어요. 거 가면 이오록 할머니라고 약초 캐고, 염소 먹이면 사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을 만나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터인데…."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그와 작별하고 돌아섰다. 미련을 떨칠 수 없어 일월산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영양 터널을 지나 일월산으로 급히 방향을 잡았다. 한참을 올라갔으나, 황희철 씨가 일러준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촉박한 시간을 원망하며,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골짜기 마을의 짧은 겨울 해는 벌써 뉘엿뉘엿 서산 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일월산 꼭대기의 군사 기지 지붕에서는 석양이 걸려 화려한 빛을 사방으로 흩어내고 있었다.
반변천의 취재는 여기서 마무리가 지어진다. 그러나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반변천 그 근원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미지를 탐색해 갈 때의 그 전율과 스릴 같은 것도 그만큼 퇴색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냥 여운으로 남겨 두고 끝을 내자. 때로는 언어보다 마음속의 상상이 그려낸 세계가 훨씬 더 강한 진정성(眞正性))을 함유할 수도 있을 테니까.[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