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농군(글/권혁조)

나는 땅에 대한 애착이 태생적으로 유달랐다. 어디 송곳꽂을 땅 한 평 제대로 없는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호된 유소년 시절을 치룬 한의 탓도 탓이겠지만, 어쩌면 나의 이 만성적인 고질병은 무조건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자연의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의 나무를 사랑하고 그의 돌멩이와 실개천을, 호젓한 오솔길을 사랑함과 동시에 두엄썩는 구수한 냄새와 시골 사랑방의 눅눅한 곰팡내까지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또한 땅을 파다가 자칫 삽날에 잘려 나오는 지렁이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며 그의 너무나도 무저항적인 연약한 사망을 나는 애도한다.


 


<<<알지도 못하시면서!>>>



1991년 6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 세 필지가 실제로는 한필지로 나란히 붙어 있는 농가주택을 낀 장방형의 반듯한 준농림지 일천평을 매입, 드믄드믄한 10여호의 전형적인 시골마을로서 그 장방형의 긴 변이 도로에 붙어 있고, 야산에 기댄 끝자락에 접해 있는 청정 개울속에선 버들치, 꺽지, 산천어가 노닐고, 6번 국도에서 3-400미터쯤 알맞게 떨어진 그야말로 맞춤형의 남향받이, 기암괴석과 함께 울창한 숲으로 둘러쳐진 앞산허리로는 백로 서식지답게 학이라도 두어 마리 두둥실 떠오를 때면 그대로가 고스란히 한 폭의 장대한 동양화요, 살아있는 동영상의 이발소 그림이 되고마는 비장하기까지 한 신선의 경지. 정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 동안 기고만장하여 일주일 내내 토요일 12시만 애타게 기다리다가 그 땅 구석구석마다 아예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해 농사는 전지주(前地主)가 파종한대로 맡겨두고 집앞 텃앞이나 일구다가 이듬해 봄, 나는 서서히 땅의 노력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집터 빼고 텃밭 빼고 800여평, 정작은 늦게 시작한 텃밭 50평을 가꾸는데도 손바닥이 부르트고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데 눈앞에 떠억 버티고 있는 800평이라니…


그래서 텃밭만 고수하고 나머지는 우선 도지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몇 사람을 탐문해도 그 곡수라고는 한 해 겨우 쌀 두가마. 토질 좋기로는 동네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칭송하는 문전옥답인데, 겨우 쌀 두가마라니. 나는 탐욕의 눈을 휘번득이면서 손을 내젓고는 종로 묘목상의 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무고파인, 스위스에서 종자를 수입해왔다는 정원수인 반송의 일종이다. 그런데 묘목의 크기는 콩나물에서 더도 덜도 아니어서 조금은 수상쩍었지만 원래 무고파인은 그래야 돈이 된다는 나무장수 말만 믿고 그러려니 했다.


포장은 다발로 묶어 파는데 한다발에 100그루씩, 이것이 3∼4년 후면 무릎높이까지 자라 나무장수의 팜플렛에서와 같은 고급 정원수가 되어 없어서 못팔 만큼의 고가에 팔린다니… 이크, 땡잡았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횡재수가 아닌가. 나는 더 두고 볼 것도 없이 그 넓은 밭을 무고파인으로 덮어 버렸다. 그 해 따라 이른봄부터 유난스레 가물어서 먼지가 풀썩거리는 사막 같은 밭에다 근동의 사람품을 총동원 하다시피 해서 여리디 여린 콩나물로 드넓은 밭을 덮어 나갔으니 이 어찌 가관이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근동 마을까지 이미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가끔씩 이웃 촌로들이 찾아와선 무어라고 알아듣지도 못한 소리로 혀를 차고 갈 때도 있었다. 그럴때면 나는 자기들은 감히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상할 수 없으니까 심통이 나셨나보다고만 지레 짐작하고는 "괜히 알지도 못하시면서!"하고 되레 심통을 부리곤 했다. 아무튼 그 이후 적어도 서원면 유현리 일대에서만은 그 어느 누구도 살아있는 무고파인의 모습은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패잔병 대추나무>>>



이듬해 봄, 이번엔 뻣뻣하던 고개를 조금 수그리고 공손한 말투로 대리경작자를 물색했으나 이젠 쌀 한가마니라도 바랭이, 억새, 명아주대궁이, 심지어는 한해 사이에 칡넝쿨까지 얽히고 설킨 묵밭이라 다들 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해엔 워낙 콩나물 만한 것들과 수작하다 혼이 난 지라 이번엔 콩나물보다는 분명히 훨씬 더 크고 튼실한 무릎높이 만큼의 대추나무를 가락동까지 가서 한 트럭 실어왔다. 그 튼실하던 대추나무 역시 그 해 여름을 치루기도 전에 이미 팔할이 사망했고, 그나마도 남은 것은 빗자루 병에 걸린 일할오푼삼리의 패잔병들뿐, 낫으로 베어내기엔 잔가지일수록 그 가시가 바늘끝 보다도 더 날카로와 불을 놓다가 어이쿠, 불길을 잡지 못해 하마터면 쇠고랑을 찰 뻔 하기도 했다.


 


<<<이번엔 딱이다! 두충나무>>>



다시 이듬해 봄, 우연히 경동시장을 들를 일이 있어 기웃기웃 거리다가 초보농군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비싼 약재가 무엇인가를 수소문한 끝에 두충을 발견했다. 병해없는 속성수로서 잎은 차로, 껍질과 뿌리는 약재로 버릴 게 하나 없는 대단한 보물나무라 했다. 당시 경동시장 시세로는 한 근에 2만4천원이나 하는 가히 독불장군 같은 기세였다. 더구나 7-8년 후에 지상 10㎝ 높이만 남기고 수확하면 남은 둥치에서 바로 곁가지가 나오는데 그 중 한가지만 남겨 올리면 성장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이게 바로 화수분이 아닌가. 앞 뒤 잴 것도 없이 노후대책으로 이게 내게 딱이다! 그래서 나는 내 키보다도 더 큰 두충묘목들을 댓바람에 사다 날랐다. 그리고 직장 상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휘둘러 내키지 않는 직장후배놈들을 무차별적으로 징발해서 막걸리통 꽤나 없애가면서까지 씩씩하게 두충나무란 선수들을 내 남은 생애의 반려자로 극진히 모셔 심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그 이후 열차여행이라도 할랍시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새로 심은 나무는 경상도건 충청도건, 논이건 밭이건 눈에 밟히는 건 온통 두충나무 투성이었다. 게다가 엎치면 덮친다고 나의 사랑스런 두충나무 선수들을 기별 한 장 없이 날아든 중국산이란 낮도깨비들의 인해전술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결국 완벽하게 옥새당하고 말았다. 2002년 5월 알아 본 현재 두충피 시세는 채집비에도 못 미치는 근당 3-4천원으로 물고가 났고, 오늘도 나의 두충나무들은 대부분 이름 모를 병에 걸린채 10여미터의 감당키 어려운 키를 인내하며 푸대접의 설움을 온몸으로 신음하고 있다.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어느덧 십여년이 흘렀다.
불혹의 나이에 연분을 맺어 지천명을 지나고 이제 이순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오십대에 들면 세월이 물동이로 쏟아 붓듯이 흘러간다 했던가. 그 세월 동안 많이도 변했다.
땅도 환경도 나의 형편까지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더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6번 국도가 지척인 용두리까지 4차선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농협하나로마트가 들어서고 좁은 마을에 주유소가 들어서는가 하면 비만 오면 질퍽거리고 차 바퀴가 빠지던 마을 안길이 시멘트로 포장되고 징검다리로 건너던 개울엔 천지개벽이 나도 끄덕없을 것 같은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완고하게 버티고 들어섰다.


그도 모자라 이젠 지척에다 유스호스텔 부지를 만든다고 산허리를 난도질하고, 농공단지가 들어서느니 풍수원 성당 자리엔 바이블파크가 들어서느니 어쩌고하고 모두들 부산하게 웅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수선스러움 속에서도 나의 사랑하는 땅과 그에 부속된 모든 것들은 이제 그 퇴락의 끝을 달리고 있다. 제법 그럴 듯하게 울타리도 처져 있고 대문이랑 헛간이랑 마굿간이랑 갖추고 있던 집은 주인의 무심한 세월을 버티다 못해 이젠 본채와 헛간 일부만 기우뚱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본채 지붕은 비가 새서 마지못해 다시 이었지만 그 이외의 모든 게 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주저 앉았다. 그리고 두충밭은 쓰잘데 없이 키만 자라 이웃밭에서 그 그늘 때문에 곡식이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한때 일확천금을 기대했던 바로 그 두충이었는데 지금은 거저 캐가래도 마다해서 일확천금은커녕 되레 돈을 주고 캐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작년가을부터 나는 대단한 결심을 하고 땅의 일부를 떼서 팔기로 작정을 했다. 무릇 사람이란 그에 마땅한 분수를 알아야 하느니 애초부터 과욕을 부린 탓이다. 다행히 땅 모양새가 도로에 장방형으로 길게 붙어 있으므로 두부목 자르듯 소용에 닿는 만큼씩 마음대로 잘라 팔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존심인지 뭔지 고집이 있어 차마 복덕방 같은덴 내놓지 못하고 왕래가 잦은 이웃들에게만 겨우 혹시 예전처럼 찾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름철 개울에 놀러온 서울 행락객들이면 으레껏 누구네 땅이냐, 팔지 않느냐던 땅이어서 이웃사람들이 "권씨 누가 땅을 사겠다 해서 전화번호를 이렇게 적어놓고 갔는데 전화 한 번 해 보우"하면 "무슨 소리! 장차 뭘 할래면 이 땅도 부족해요."하고 기세를 올리던 땅이었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하기사 그 동안 몇 사람이 다녀가긴 했으나 다녀가기만 하면 그 뿐. 지을 수도 빌려줄 수도 팔 수도 없는 땅, 땅, 땅


그러나 땅은 지금 있는 그 자리, 늘 거기에만 그렇게 있었다. 그는 비정하리 만큼 무덤덤하게 거기 그대로 있을 뿐 좀처럼 그 곁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이 땅을 그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는 욕심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른다.
이 어찌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자연을 거느릴 수 있단 말인가.
무릇 인간이 규정한 등기부나 토지대장에 등재된 법정지분에 강력한 내 이름 석자가 각인되어서 소유권이란 가장 배타적인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물권(物權)이라 할지라도 나 또한 잠시 이 땅을 그저 스쳐지나가고 말 뿐인 것을.
불과 백년전의 이 땅 주인이 어찌 내 행색을 미리 점칠 수 있었겠으며 앞으로 백년후에 마지할 이 땅의 새주인은 또 내가 이 땅을 이렇게도 끔찍히 여긴 그 흔적을 어디가서 찾겠는가.


 


<<<그래도 땅이 좋다>>>



이 땅의 전 주인도 땅에 대한 애착이 남 달랐다 한다. 이웃 토지와 한 뼘도 안되는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이웃경계 표시인 애매한 돌담을 수도 없이 고쳐 쌓았다고 한다. 경계측량이라도 해 버리면 간단할 것을 피차 그 비용을 서로 미루다가 옆주인이 안 보는 사이 한 뼘쯤 내다 쌓으면 옆주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냉큼 달려와 기어이 멱살잡이까지 하면서 다시 쌓고 또 쌓고… 이 땅을 그토록 애지중지하여 내가 마지막 잔금을 치루는 그날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도 이미 몇해 전 고인이 되었음을 전해 들었다.


어느 저명한 작가 한분이 어느덧 자기는 이젠 흙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나이가 됐다고 한다. 아둔한 머리로는 친구가 신문 가십에서 읽고 전해 준 그 말이 무슨 뜻일까를 한참을 의아해했지만 아마 이제 곧 한 줌의 흙이 되어 그에게 속할 나이가 되어감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땅은 결코 그 인간의 분수를 넘어 예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상당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난 연후에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땅이 좋다. 지금도 고추밭을 매다 말고 아픈 허리를 잠시 펴고 밭고랑에 퍼질고 앉아 풋고추를 따서 쓰윽 문지르고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들이키면서 뻐구기 소리와 요즘엔 낮에도 우는 소쩍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라치면 세상이 그저 한없이 너그럽고 거룩하기만 하다. 그래 나는 진정 더도 덜도 아닌 내 삶의 무게만큼의 검소한 땅에 귀화되어 내가 누린만큼이라도 한 줌의 거름으로 그에게 되돌려지고 말리라.[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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