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에서 만난 본 상수의 안동할매(글/임재해)

“침선이 제일 힘들었지 뭐!”
“내 생시가? 임인(壬寅)생! 임인년 정월 열 나흗날 해시(亥時), 밤 초저녁이지. 우리 친정은 청송군 진보면 부곡동이래. 열 여덟에 시집을 왔는데…”
서후면 교리 ‘운고정(雲皐亭)’ 안채 상방에 가을 빛살이 화사하게 쏟아져 가득하다. 마다할 수 없는 손을 맞이하여 이명홍 할매는 모처럼(?) 한복을 갖추어 입고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모습이 새댁처럼 다소곳하다. 큰절을 올려 인사를 드리니 답례로 맞절을 하는 자태가 여전히 곱다. 한 세기가 되는 오랜 연륜을 삭일 수 없어서 얼굴의 주름은 깊지만 눈빛은 형형하다.
“할매요, 시집 와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 뭐였어요?”
“층층시하 시집 오이께네, 침선(針線)이 제일 힘들었지 뭐.”
귀는 좀 어두워도 못 알아들을 말이 없을 정도로 말소리는 또렷하다. 그 때는 일일이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여 옷을 지어 입던 시절이다. 손수 길쌈은 하지 않았으나 바느질은 쉴 틈이 없었다. 겨울에는 늘 화로에 불을 담아 인두를 꽂아두고 살았다. 빨래를 할 때마다 옷을 모두 새로 지어야 한다. 옷의 안팎을 모두 따서 솜을 드러내고 빨래를 하여 씻어 말린 다음에 다시 솜을 놓고 바느질을 하여 옷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느라 다듬이질도 하고 풀도 먹여야 한다.
“친정에서 (바느질을) 잘 배와가주고, 그리 뭐 괴롭지는 안 했니더.”
바느질하는 법을 친정에서 잘 배워 와서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마다 살림살이가 다 다르듯이 힘들었던 과거도 제각기 다르다. ‘디딜방아깐에 아 업고 보리쌀 빻아가주고 그거 삶아가주고 밥 다 해먹고, 농사 다 짓고 하느라고’ 고생한 사람도 있고, ‘밤낮으로 숱한 삼 삼고 베짜고 명 잣고 물레질하느라고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해’ 고생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바느질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고 하시는 걸 보면, 길쌈 일로 시달리지 않고 농사일에는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시집 살림살이가 넉넉했던 모양이다.
  
“숱한 번뇌도 많지만 다 잊었부고”
“글 때는 전부 여 밖에서도 갓망해가 댕겼잖아요!"
예전에는 바깥어른들이 늘 갓망건을 갖추고 도포를 입고 출입을 했다는 말씀이다. 안에서 바깥어른이 출타할 때마다 바지저고리, 두루마기, 도포 등을 갖추어 반듯하게 입성을 제공하려면 ‘참 힘이 들었어요. 요새 긑지 안해’라고 하신다.
“요새 새댁들은 살판났지요 뭐!”
“요새 참 세월 좋소! 만고에 뭐 아순(아쉬운) 거 없이 다 있으이(있으니). ”
“예전 살 때 비하면, 요새 젊은 사람들 사는 거 어때요?”
“아이구, 요새 긑은 좋은 세상 못 보고 죽은 사람 얼매노 아깝노?”
“요새 주로 무슨 일을 하며 소일하시니껴?”
“숱한 번뇌도 많지만 다 잊었부고…. 그냥 혼자 누워있지 뭐.”
중년에는 가사를 읽고 외우고 베껴 쓰고 하며 소일을 했다. 천수경과 한양가를 줄줄 외우며 가사도 숱한 가사를 썼단다. 글은 친정 조부로부터 배웠느냐고 여쭈어보니, “우리 조부가 갈친 제자들이 선비가 70명이래요. 손님들이 그만치 드나드이 우리사 할배 근처에 가보지도 못해요.”라고 했다. 글은 안채에서 조모로부터 배운 셈이다. 글을 익혀서 쓴 가사두루마리나 사돈지들은 지금 가진 것이 없다. “6. 25사변 때 살림살이 뭐 축나니라꼬. 하나도 없이 다 가주가고 없어. 살림 다 싹 잃어부랬어. 그래가주고 붙어 있는 게” 없다고 한다. 6.25때 집을 비워두고 경산으로 가서 피난살이를 하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유관순 누나와 연세가 같은 103세
근년에는 이웃 노인들과 화투놀이도 하며 소일을 했으나, 요사이는 더불어 어울릴 만한 노인들이 없어서 혼자서 무료하게 지낸다. 아들 권두갑(80세)씨가 ‘바깥에 나가셔 가주고 풀도 뽑으시고’ 하니, ‘워낙 심심으이 글치’ 한다. 이웃에 함께 어울릴 노인들이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난리 겪은 거는 뭐 6. 25가 제일 컸습니까?”
“아이구, 6. 25도 컸고 뭐 그 때 뭐 난리가 늘 나 잖니껴!”
어떤 난리가 또 있었어요?“
“뭐 겪은 난리 다 생각할 수 있나!”
난리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때 ‘어매가 겪은 난리가 또 하나 있지. 집에서 보천교를 믿었는데…’하고 권두갑씨가 말을 잇는다. 그러자 보천교 겪은 이야기를 한다.
“보천교가 내한테도 큰 난리였어. 아이구 왜 그 때 보청교를 어른들이 믿는다 그래가주 뭐, 고마 양가(兩家)이 막 난리 났지요 뭐. 그 아무것도 아닌 걸 가주고, 그 때 마구 그쿠 조사를 했어. 그 피하느라꼬 애먹었어요. 어른들도 모도 각처로 숨었부고 그랬지요.”
보천교는 1920년대 초에 강일순의 제자 차경석이 세운 증산교의 일파이다. 신도들이 항일활동과 독립운동자금지원 등으로 왜경의 탄압을 받았다. 시어른이 보천교를 믿는 바람에 왜경의 검거를 피해 다니느라 갖은 고생을 겪었다.
“겪은 난리를 뭐 다 이야기할 수 있나? 거친 세월 넘겨가주고, 이쿠(이토록) 나이 많드록 살아 놓으이, 그런 거 다 잊었부랬어요.”
이명홍 할매 연세가 올해 꼭 103살이다. 그러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잊어버릴 만도 하고 숱한 난리를 겪어서 다 기억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임인년 정월 열 나흗날 해시(亥時)’의 출생 연월일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임인년은 서기 1902년이자 고종이 왕위에 오른지 39년째 되는 해이며, 유관순 누나가 탄생한 해이다. 그러니까 유관순 누나가 생존해 계셨다면 이명홍 할매와 같은 103세가 된다.



〈한겨레신문〉과 함께 출발한 『안동』
100수를 넘긴 이명홍 할매를 표지 인물로 모신 것은 본지 『안동』이 100호를 발간하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창간호를 내면서 표지인물로 100수를 넘기신 ‘김봉이’ 할배를 모셨으니 100호 기념은 상수(上壽)하신 안동할매를 모시는 것이 앞뒤가 맞다. 안동에 100수 하신 어른들이 대여섯 분 계시지만, 거동이 자유롭고 말씀을 또렷하게 하실 만큼 정정한 어른은 이명홍 할매 뿐이었다. 처음 찾아뵈었을 때는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여 뵙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사흘 뒤에 다시 찾아가서 뵙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할매 말씀처럼 워낙 오래 살아서 갈피를 잘 잡을 수 없었다.
『안동』이 창간호에서 100호까지 견뎌오는 동안 어떤 내용들을 다루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 어떤 보람을 누렸는지 가닥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도 같은 사정이다. 창간호를 정확하게 언제 간행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생년월일시는커녕 생년조차 얼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창간 시기는 분명하게 헤아릴 수 있다. 『안동』지는 <한겨레신문>과 함께 출발했기 때문이다.
1987년 11월 어느 날 한겨레신문 창간준비위원장인 송건호 선생이 안동문화회관에서 안동시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다. 이때 시민의 신문에 관심을 가진 몇 사람이 주주로 참여할 준비를 하고 설명회에 참여하였다. 토론 시간에 ‘한겨레신문은 지역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하고 질문을 하니, ‘지역문제도 잘 다루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한창 연구하고 있다’는 대답을 하였다. 기대 밖의 상투적인 대답을 들은 사람들이 주주로 참여하기 위해 준비한 기금으로 ‘차라리 우리 지역에서 매체를 하나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고 창간한 것이 바로 『안동』이다. 설명회에 함께 참여하여 제안을 하고 합의를 한 이가 이진구, 임세권, 임재해였고, 이에 따라 실무를 담당한 사람이 김복영이었다. 그러므로 1988년에 창간된 『안동』의 역사는 한겨레신문의 창간과 함께 간다.
처음에 계간지로 간행되었다가 다시 격월간지로 바뀌면서 여러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으로 지령 100호에 이르렀다. 그간의 숱한 이야기들을 다 할 수 없지만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지금은 문화적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안동』을 계속 간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지역의 젊은 후배들에게 물려주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도 더 가야 한다는 뜻이 우세하여 지금껏 어김없이 계속 가고 있다.


“까짓 거 옛날 이얘기 해가 뭐합니까”
“식사를 할라 그만 워엤든지, 식사하는 이가 20명도 넘었어요.”
시집식구들이 가장 많았을 때는 끼니때마다 20명 이상의 밥상을 차렸다는 말씀이다. 『안동』의 산실인 ‘사랑방’에 늘 드나드는 이도 한때 20명이 넘었다. 사랑방은 항상 문전성시였다. 운영을 도와주신 분 가운데는 지역을 떠난 분도 여럿 있고 작고한 분도 있다. 요즘은 전만 같지 않다. 각종 회의와 모임도 다른 곳에서 주로 한다. 자주 오고가지 않는다.
“옛날에는 사돈끼리 자주 오고 갔는데, 요새는 사돈끼리 발걸음이 없어요. 뭐 어째가 그는동 고마 서로 걸음이 없어졌어요.”
세월이 크게 달라진 탓이다. 혼례식을 예식장에서 하고 아이들이 객지에 나가 사는 까닭에 사돈끼리 서로 방문할 일이 없어졌다. 전에는 시집간 딸이 보고 싶으면 사돈댁으로 갔는데, 이제는 객지에 있는 딸네 집으로 바로 간다. 사돈댁에 길흉사가 있어도 예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찾아가는 까닭에 사돈댁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사돈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거의 없다. 어쩌다 손자손녀 돌잔치 때나 객지에서 만날 따름이다. 
사랑방 회원들끼리 뜸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랑방을 거점으로 서로 오가야 하는데, 회의조차 다른 공간에서 하니 발걸음이 뜸할 수밖에 없다. 전에는 출판도 하고 각종 기획전시회도 하며 공연기획까지 했는데, 지금은 까마득한 이야기다. “지금 옛날 법은 없어요. 까짓 거 옛날 이얘기 해가 뭐합니까. 지금 시세를 따라야 돼요.”  할매는 시속을 따라야 한다지만, 사돈끼리 오가는 풍속은 본받을 만하다. 사랑방이 한갓 『안동』의 편집실이 아니라 안동문화의 산실 구실을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랑은 무슨 자랑, 큰손자는 지금…
“할매요. 그 때 하고 요새하고 시절이 뭐가 크게 달라졌어요?”
“그 법이 참 지금은 참 남녀동등권이 돼서 매란이 없지만, 그 때는 내외한다꼬요 생전에 길거리에 못 나가 댕겼습니다. 꼭 어데 잔치나 있어가주 나갈라만 시비(侍婢)를 데리고 가고, 머리에 너울을 씨고, 요래 얼굴을 가루코(가리고) 나갔어. 그 남자들이 이래 지내가만 가다 돌아섭니다. 남자가 미리 돌아선 뒤에 지내가요, 그런 세월이랬어요.”
뜻밖의 사실이다. 내외법에 따라 길에서 외간 남자를 만나면 여자가 먼저 돌아서서 남자가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그 반대라고 한다. 남자들이 알아서 먼저 내외를 한 셈이다. “남의 딸은 조금만 머식해도 뭐 아무도 안쳐다 봤다”고 한다. 내외법이 엄중할 때 남자들이 여자들을 위해 여러 모로 배려한 모양이다. 친정을 오고 갈 때도 어른들이 항상 동행을 해서 데려다 주었다. 부부간에 함께 다니는 법도 없었다.
“지금은 사돈들이 한테(한 자리에) 보잖니껴! 그 때는 사돈 손님이라 카면 얼굴도 몰래요. 안 보이께네, 아주 참 내외가 그쿠 심했지요.”
물론 바깥사돈과 안사돈 사이의 일이다. 더러 안사돈은 부엌 빈지 틈으로 바깥사돈을 엿볼 수 있어도, 바깥사돈은 안사돈 얼굴을 도저히 볼 수 없다. 내외법이 여자들만 옥죈 것으로 생각되나 남자들도 엄청 불편을 겪어야 했다. 남편이 아내 방에 들어갈 때도 반드시 옷을 갖추어 입고 여름에도 버선을 신어야 했다. 그리고 잠자리도 마음대로 같이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날을 가려서 들어가 자라고 해야 비로소 안방 출입이 가능했다.
할매 자랑은 두 가지이다. 할배와 인정이 좋았다는 사실과 손자손녀들 모두 훌륭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서 모두 인정 있게 지낸다고 부러워했는데, ‘바깥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모두 따랐더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손자 자랑도 한번 해보세요.”
“자랑은 무슨, 큰손자는 지금 과학원에 교수로 있어요.”
손자 권오준 박사는 지금 한국과학기술원(KAIST)대학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과장을 맡고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손자 손녀들 사진을 보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라고 한다. 머지 않아 『안동』도 할매의 손자 자랑처럼, 뒤를 이어갈 늠름한 후속세대 자랑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100호는 제2의 창간호가 아닌가.<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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