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대목을 맞는 뻥튀기 일가(글/계화순)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자주 내린다. 며칠 전에도 눈이 내리는 까닭으로 취재를 미루어야 했는데 설 대목장인 오늘도 날씨가 몹시 춥다. 모처럼 겨울다운 겨울을 맞는다라고 말하면 힘들게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겠지, 점점 사라져가는 뻥튀기가게를 꼭 한번은 취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목성교 뻥튀기 가게에 들르니 추운 날씨인데도 50이 넘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줄을 지어 섰다. 정말로 설이 가까웠음이 느껴진다. 아저씨 두분, 아주머니 한 분이 한쪽에서는 연신 뻥튀기를 하고 좁다란 가게 안에서는 오꼬시(강정)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무작정 기다릴 수만 없어 「안동」지를 보여주며 취재나왔음을 이야기하자 키가 큰 아저씨는
"그라마, 우리 얘기 싣지 말고 신시장에 함 가보래요. 거-는 칠십 넘은 노인이 하마 수십년째 하고 있구마. 우리는 대목밑에 한두달 빼에 안하께네." 서울에 가서 김서방도 찾는데 손바닥만한 안동에서 그것쯤 못 찾을까? 아무런 망설임이나 걱정없이 서문뚝을 넘는다. 난전에도, 점포안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매일 지금처럼 사람이 붐비면 우리 안동도 훨씬 활기가 넘칠텐데… 큰 가게가 아니어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펑 하니더 귀 막으소
빼꼭이 사람들이 들어서고 화구만 2개인 지극히 단순한 가스레지인지에서는 작은 냄비에 하얀 김을 내며 찌개가 끓고 있다.
"아직 아침도 못 잡싸니껴"
잘 열리지 않는 미닫이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침 자시고 하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갖고 온 쌀과 땅콩을 깡통에 부어서는 마지막에 줄을 세운다.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한 사람들은 모두가 낯선 사람들인진데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진다. 어제도 8시가 넘도록 일을 했고 오늘도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옛날에 비하마 요새는 아무것도 아이시더. 돌리기를 하나, 나무를 하나. 그냥 가스로 때고 자동으로 이래 들아가잔니껴"
정말 그렇다. 크지 않은 가게안에는 2개의 뻥튀기 기계가 있는데 하나는 한 되짜리, 다른 하나는 최고 세 되까지는 튀겨낼 수 있단다.
"펑 하니더 귀 막으소."
키가 큰 할아버지께서 원통형의 철망 끝에 쌀자루가 달린 걸 뻥튀기 기계에 가져 가면서 이야기하자 가게안에 있는 사람들은 귀를 막기도 하고 그냥 말갛게 쳐다보기도 한다.
펑
요란한 소리가 나고 하얀 김 때문에 순간적으로 바로 앞에 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부자가 함께 뻥튀기를 하고 있는 이 가게는 간판도 없다. B4 용지에 매직으로 오꼬시라는 글자는 좀더 크고 진하게 합니다라는 글자는 작고 연하게 두줄로 내려 쓴 것이 간판의 전부다. 이곳 가게에서 뻥튀기를 한 것은 5년 남짓, 주로 안동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뻥튀기를 한 것이 25년쯤 되었다고 한다. 내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주인인 할아버지 박점권(74)씨가 아니라 그의 막내아들인 명환(41)씨와 가게안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들이다. 자리에 앉아 기계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깡통들을 조금씩 앞으로 당겨놓고 맡겨놓고 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얀 비닐주머니에 쓰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농담도 하고 아버지를 쳐다보며 내 물음에 대답하기도 한다.
우리집하고 다른데 하고는 다르거든요
"아주 쪼맨할 때부터 아부지를 따라 다녔지요. 그냥 아부지가 좋아서요. 힘든다는 생각은 안하누마 다른 사업도 했드랬지요. 하도 돈을 많이 까머가 이야기하기도 부끄럽구마. 청과물을 했는데 한 10억쯤 될끼구마."
아무리 돈이 가치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조그마한 가게에서 그렇게 큰 돈을 다른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난 적잖이 놀랐다.
"나도 아부지처럼 할 수 있으마 이제는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수십년이 되이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기지요. 우리집하고 다른데 하고는 다르거든요. 풍산, 예천, 심지어 봉화에서도 우리집에 갖고 오거든요."
덜컹덜컹, 억지로 문을 연 한 아주머니는
"여 오꼬시 하는데 얼매로?"
"튀기는데 3천원, 오꼬시하는데 8천원 합이 만 1천원이시더."
"요 앞에는 만 5백원 하던데?"
"그 머 만 5백원 하는데 가소."
메뚜기도 한철, 지금이 대목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신감이 조금은 의아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굳이 지조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작은 돈에, 쥐꼬리만한 권력에도 비굴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요즈음이니까. 응당 다른 곳으로 갈 줄 알았던 그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맨 마지막에 내려 놓는다. 아무도 그것을 아는 체 하지 않고 당당한 명환씨도 모르는 척 넘어간다.
"야물기는 됐고 땅콩 세 되"]
"세 되 아니다. 두 되다."
"저울을 속여내나? 아지매 보소. 4키로 아이껴? 껍지리 까가 대며 어예노? 껍지리까지 쳐야제."
"손님들은 껍지리 까가 알만 대지만 오케는 껍지리까지 쳐야 되거든"
서방님과 막내아들의 아침을 챙겨주러 왔던 할머니가 손님들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아들을 한마디 거들고는 늦은 아침이나나 챙겨주기에도 애시당초 글렀음을 알고는 총총이 사라져간다. 기다리는 손님도 많은데 연신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나므로. 불위의 냄비에서는 아직도 김이 오르고 있다.
"거 불 좀 나차라. 아익 아침 못먹겠다마는"
"하마 아까 내가 나차났다."
손님들 나름대로 사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쓴 것이다.
"요즈음은 전에 보다 장사가 훨씬 낫지요? 류가 줄었으니까…"
내가 묻자 명환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류가 줄었다고는 카지만 전에 보다 훨씬 못해요."
"옛날의 반도 안 될거로, 우리집만 해도 전에는 대여섯되 했는데 요새는 두되빼이 안하는데…"
"그머요. 전에 대머사 훨씬 못할게시더."
순서를 기다리는 아주머니들이 더 친절하게 응수한다.
몸만 성하믄 돈은 얼마던지 벌 수 있는기라
묵호에서 공사판으로, 난전으로 안해 본 것 없이 별의별 일을 다 해본 박씨 할아버지는 본래 고향인 대구로 돌아가기 위해 30년 전 가솔들을 거느리고 이 곳 안동으로 왔다.
"안동에 턱 와 보이 저녁 때거리가 없는 기라. 글타고 집주인한테 처음 봤는데 돈을 빌려달라 칼 수 있는가? 굶었지. 그래그래 며칠을 견디며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이 이 일을 하는기라. 그래 옆에서 몇 며칠 지켜봤제. 가마보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가 주인한테 말해서 돈을 빌맀지. 헌 기계를 하나 사가 안동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는기라. 어디든동 전을 피먼 거가 내 자린기라. 젊을 때께네 나무도 지고 불도 때가마 참 열심히 했제. 그래가 아-들 6남매 공부시키고 살 만큼 다 해주고 지금은 돈 하나도 없다. 저놈아한테 돈달라카마 주나? 놀먼 머하노. 일 할 수 있을 때까제 해야제. 전에처럼 나무로 불 때며 돌려야 되는 것도 아이고 이래 가마이 앉아 있으머 저절로 되는데…"
막내아들을 쳐다보며 입으로는 흉을 보는데 그 눈빛에는 원망이나 미움은 전혀 없고 정만 뚝뚝 묻어나니 모를 일이다. 아버지의 꾸중을 듣는 명환씨도 고개를 숙이고 죄송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다. 본인도 밝히기를 꺼려하고 억지로 들추어내서 아픔을 되씹게 할 의도도 없지만 10억이라는 큰 돈을 사업을 한답시고 몽땅 말아없앤 부자간에 이처럼 다정할 수 있음은 또 무슨 조화인가?
"몸만 성하면 돈은 얼마던지 벌 수 있는기라."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워물며 딱히 누구에게 할 것 없이 혼자 말씀하시자
"얄구저라. 참말로 마이 달라졌대이. 전에 같으마 일 안하고 가마이 노는 기 제일이랐는데…"
"놀먼 머 하노. 일 할 수 있을 때 일하는 기 더 낫다."
"그래도 옛날 선비나 양반 한 번 봐라. 그 사람들 언제 일했나? 가마이 노는 걸 젤로 여겼제."
손님들끼리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주고 받는 말이다.
그들 말대로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나 역시 할아버지 말씀대로 몸이 성해서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면서 살고 싶다.
오꼬시는 우리 며느리하고 손녀가 만들지
"아저씨. 여~ 땅콩 여가 오꼬시 좀 해 주소. 언제 오먼 되니껴?"
바쁘게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다.
"한 두 시간쯤 뒤에 오소"
"뻥튀기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려요?"
내가 물었다.
"7, 8분 마이 말랐으마 한 10분, 옥수수 같은 건 한 12분쯤 걸리지요."
"그런데 두시간뒤에 오꼬시까지 할 수 있어요?"
"오꼬시 하는데 5분도 안 걸려요. 지금 사람들이 이래 기다리고 있으이 넉넉잡아 두시간이라 캤지."
"여기서 오꼬시도 만들어 주나요?"
"여-는 좁아서 모하고 조짜서 만드니더."
"오꼬시는 누가 만드는데요?"
"우리 며느리하고 손녀가 만들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우리 손녀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얼매나 착하다꼬. 하마 쪼맨할 때부터 저거 엄마를 도와가 얼매나 잘 만든다꼬."
놓칠 수 없는 아니, 빠뜨려서는 안되는 현장이다.
뻥튀기조 오꼬시조, 환상의 뻥튀기 일가
"거기가 어디예요?"
"날 따라 오소"
역시 손님이 나선다. 펼쳤던 공책을 접고 아주머니를 따라 10여미터쯤 가니 허름한 창고가 보이는데 입구는 좁고 뒤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세모모양의 강정을 만드는 현장에는 벽에 닿도록 만들어놓은 강정들이 잔뜩 쌓여있고, 5, 6명의 사람들이 커다란 양은솥과 나무판 주위에 둘러서 열심히 만들고 있다.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에게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박효선이예요"
"할아버지랑 같이 사니?"
"예"
"엄마가 막내 며느리인데 왜 할아버지랑 같이 살지."
"처음부터 우리랑 사셨는걸요. 맏이만 부모님 모시고 살라는 법은 없잖아요? 엄마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누가 모시던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요."
엄마를 도와 바쁘게 일손을 놀리면서 하는 말이다. 뻥튀기 가게의 부자와는 달리 이곳의 모녀는 몹시도 부끄러움을 탄다. 엄마는 연신 딸 뒤로 몸을 숨기고 효선이는 묻는 말에 겨우 대답만 할 뿐이다.
"이거 한 번 잡사 보셔요."
자투리가 난 들깨강정 작은 것을 나한테 건네주며 효선이 엄마가 하는 말이다. 달착지근하고 금방 만들어서 따뜻함이 남아 있는 강정은 한 입에 쏙 들어간다.
굵기가 다른 각목으로 자를 삼아 반듯하게 만들어진 강정을 자르고 있는 젊은 남자는 효선이의 사촌오빠 박용대(28)씨다.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그는 설이 다가오는 겨울철 두달간은 건축현장의 일을 쉬고 숙모와 함께 강정 만드는 일을 벌써 여러해째 하고 있지만 어릴 때도 뻥튀기하는 할아버지가 좋아서 학교가 끝나면 이곳저곳 할아버지를 많이 따라 다녔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하는 효선이 엄마도 설 되기 두달전부터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시아버지께서 하는 일을 도와 강정을 만든다. 설이 임박한 지금은 주문받은 것만 만드는데에도 야간 작업까지 해야 하므로 가게에서 바로 사가는 손님들을 위해 미리미리 만들어둔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의 수요가 있는지 가늠하기에 그리 많은 재고는 남지 않는단다.
"효선아, 엄마가 이 일 끝나고 나면 용돈을 많이 주신다고 했니?"
"아뇨, 아직 그런 약속은 없어요. 지금은 너무 바쁘고 엄마가 힘이 드시니까 도와드리는 거예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도와드렸어요. 그때는 지금처럼이 아니고 포장하는 일을 도와 드렸어요."
그녀는 깡통에 든 물엿을 녹이고 튀겨진 곡식들을 양은솥에 넣어 설탕과 물엿을 함께 버무리는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내 질문에 또박또박 답하는 딸애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에 애정이 듬뿍 담겨있고, 뻥튀기 부자들 마냥 모녀간도 서로를 쳐다보며 잘도 웃는다. 그 모습이 참 좋다. 옛말에도 있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고.
나는 아직 아부지 따라갈라믄 멀었어요
웃는 얼굴로 엄마를 열심히 돕고 있는 효선이의 맏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큰아버지께서는 지금 영호학교 서문앞에서 뻥튀기를 하고 계신단다. 설 대목인 요즈음은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아버지, 엄마, 그리고 사촌오빠까지 모든 일가가 시간에 맞춰 끼니를 때운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께 들은 바에 의하면 여름철엔 하루에 겨우 두 방만 티울 정도로 일거리가 없는 날도 있지만 이유식이나 미숫가루를 만들어주고 자신이 농사지은 옥수수로 차를 만들어가기도 하여 몸만 성하면 꾸준히 일할 거리는 있다고 했다. 특히나 뻥튀기 기계로 만든 이유식이나 미숫가루는 다른 것들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한다.
"나는 아직 아부지 따라갈라문 멀었어요. 상태에 따라 물이나 시간을 얼마나 줘야 할지 달라지거든요. 아부지가 계시이 이래 같이 할 수 있는기지."
자식도 손주들도 정말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해서 취재를 하는 나 역시 즐거웠다. 한가지 일을 수십년 동안 지치지 않고 열심히,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건 정녕 축복받은 일이다. 뻥튀기와 오꼬시(강정)로 일가를 이룬 그들 일가가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