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춤에 제대로 미친 특별한 해방둥이(글/이미홍)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산다. 모두들 각자의 사정대로 사연대로 무엇인가를 하면서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무엇인가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끔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약간의 기다림 후에 오는 무엇인가에 미친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가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만남이 좋다. 장금자씨와의 만남이 그랬다. 또 한 번의 해방둥이 이야기라 그저 할머니의 지나온 이야기나 들을 양으로 갔던 나는, 우리의 주인공의 일견 깐깐해 보이는 반듯한 자태에 반했고, 취재를 하면서 춤에 대한 그이의 열정에 반했다.


춤, 춤, 춤
약속한 전통찻집에 들어섰을 때 조금 전 찻집 입구에서 스쳐 지나가던, 또각또각 걷는 걸음걸이가 설핏 스치는 와중에도 어딘지 모르게 인상적이었던 이가 찻집 주인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금자씨였다. 다다미식으로 된 찻집에 앉아 차를 시키고 마주앉았다. 일본어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거기서 써낸 신상명세서가 계기가 되어 이렇게 만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우리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서 45년생 해방둥이를 찾고 있었는데 이번의 경우 그 일본어 강좌 신청서가 우리를 구한 셈이었다. 
“나 사는 거? 나야 춤에 미쳐 사느라 바쁘지요. 십 몇 년 동안 계속 춤만 추느라 다른 건 아무 것도 못했어요. 남들 다 따는 운전면허도 못 따고. 그러다가 이번에 마침 목요일하고 토요일이 시간이 비어서 전부터 관심이 있던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지. 내 나름으로는 이걸 배워서 나중에 일본어 통역 도우미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아직 시작이지만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망설임 없이 곧장 시작되는 첫마디에서부터 자신감이 뿜어져 나와, 내심 조금은 당황이 되는 참인데 이쪽이야 그러건 말건 작정이라도 하고 나온 사람 모양 이쪽에서 미처 묻기도 전에 목을 축이자마자 대뜸 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춤은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했어요. 우리 학교 다닐 때는 학예 발표회 같은 것들을 참 활발하게 했는데, 나는 그런 예체능 방면으로는 소질이 좀 있어서 특히 무용은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는 무용 선생님이 계셔서 그때 춤을 본격적으로 좀 배웠지. 선생님도 소질 있다고 아껴 주시고 나도 춤추는 게 좋아서 그때 나는 무용과를 참 가고 싶었는데 못 갔지.”
금자씨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당시 부모님 세대들 중에는 무용이 뭔지도 모르는 어른들이 많았고 특히 의성 같은 촌에서 무용한다고 하면 ‘춤 같은 거 추다가 무당 될래?’라는 분위기였고 금자씨 아버지가 또 굉장히 엄하셨는데 춤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셔서 포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의성여고를 나왔는데 그때 졸업생이 36명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여고생이 드물었어요.
우리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주위에서 여자애들은 중학교까지 가는 애들도 드물었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은 다행히 형편이 넉넉한 편이어서 대학 갈 형편은 되는데, 아버지는 내가 교육대학이나 간호대학을 나와서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그런데 나는 교육대학 갈 실력은 좀 안됐고 간호대학은 적성에 안 맞아서 내가 싫다 했고. 그러다 춤은 포기를 하고 말았지.
그런데 이상하게 춤하고 또 이어지더라고. 그때는 교사들이 많이 부족하던 때라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도 교사로 발령을 내고 그랬어요. 그때 의성 관내에도 교사들이 부족해서 졸업을 하고 그해 64년 가을에 교육청에서 의성군내 학교에 무용 강사로 발령을 내줘서 그때부터 의성관내 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쳤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은 자연 팔자가 그렇게 풀리게 되나 봐요.”



다시 찾은 춤
그 뒤 결혼을 하면서 금자씨는 춤과 한동안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슬하의 삼형제가 어느 정도 크고 나자 자연 금자씨의 관심은 춤과 관련된 쪽으로 기울어졌다.
“나도 모르게 무용 쪽으로 자꾸 관심이 가다 보니 결국은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80년대 전두환 정권 들어서면서 한창 에어로빅 붐이 일 때였어요. 에어로빅을 배워서 언니네 건물 2층에 에어로빅 교실을 열었어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아직은 의성 같은 지방에서 여자들이 에어로빅 배우는 거를 무슨 춤바람 난 것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라 말들이 많았어요.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건데 춤추러 다닌다고 했으니까요. 지금으로부터 한 25년 전쯤이었으니까요. 결국은 망해서 에어로빅 강습소 문을 닫아야 했죠. 나는 춤으로는 안 풀리는구나 싶어 그러고 또 한동안 춤을 쉬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시작했어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춤을 배워보자고 마음을 먹고 대구에 있는 한국춤교육원 계명대학교 서봉수 선생님한테 춤을 배우러 갔어요.”
그때 금자씨의 나이 오십 둘이었다.
“그때 계명대에 계시던 정대웅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내가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와 있더라’ 라고요. 그 말을 저는 요즘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전까지는 한국무용을 그냥 내가 좋아서 했고 여기저기 춤을 배우러 다니고 그냥 공연하고 하는 것으로 만족했지 내가 이걸 가르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부터는 기회만 된다면 나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하고 다니다 보니까 정말로 자연히 가르치는 일로도 연결이 되더라고 했다. 후배가 마침 한국무용 강사를 구하고 있던 의성복지관에 소개를 해 준 것이었다. 복지관에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모든 춤이 다 그렇지만 한국 무용은 특히 몸에 완전히 익어야 제 맛이 나거든요. 우리 춤이 참 어려워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서양 무용처럼 이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부터 몸으로 다 체득해서 익혀져야 춤사위가 나오는 거거든요. 안동에도 아직까지 유교사상이 많이 남아있고 해서 그런지 아줌마들이 한국무용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직장이 안동인 둘째 아들 따라 와서 이제 겨우 삼 년, 춤꾼 금자씨는 우선 그것이 제일 안타깝다.


고마웠던 아버지, 원망스러웠던 아버지
어린 시절 금자씨는 그야말로 금지옥엽 귀하디귀한 딸로 자랐다. 4남 6녀 십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돌이 갓 지났던 금자씨가 돌림병이 들어 죽을 뻔 한 일이 있었다. 간신히 목에 숨만 붙어있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한밤중에 외할머니가 오셨다.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이 주사약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맞으면 살 수 있다고 그러시더란다. 그 길로 아버지가 일꾼을 보내서 그 사람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놓아준 주사 한 대를 맞고 어린 금자씨는 살아났다고 한다. 후에 알고 보니 금자씨를 살린 그 주사약은 다름 아니 페니실린이었다. 그때 그 주사약 한 대 값이 삼천 원이었다고 한다. 그때 삼천 원이면 네 칸짜리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금자씨는 그 사실을 다 커서야 알았다고 한다.
안계에 사시던 친척 아저씨가 있었는데 집에 오실 적마다 금자씨를 보고 “삼천 원짜리 잘 있었나, 삼천 원짜리 잘 있었나” 하셨단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이었다. 그이가 탑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가니까 하숙집 아주머니가 옛날에 금자씨네 앞 집 문간방에 살았었다고 해 집에 와 그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가 그 주사 맞고 살아난 이야기 끝에 그러셨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 아들도 그때 같은 병에 걸렸었는데 그 집 아들은 결국 죽고 말았다고. “우리 집은 아들인데도 돈이 없어 죽고 저 집은 딸인데도 돈이 있으니 살아났다” 고 그 옛날 금자씨만 보면 그 아주머니가 울면서 그랬었단다.
육이오가 났을 때 금자씨는 여섯 살이었다. 청도까지 피난을 갔는데, 일꾼이 끌고 가는 자전거에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서 피난을 가던 장면과 비가 굉장히 많이 왔던 기억, 그래서 삼을 훑고 난 속 홀대인 재랍을 가지고 텐트처럼 얽어서 거적 같은 것을 덮어서 지붕을 만들어 씌우고 그 속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장면만 기억난다고 했다. 그리고 개울가에 앉아서 놀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거기가 청도 강변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참 대단하셨던 것 같아요. 자식이 열 명이나 되었어도 한 번도 짜증내는 법이 없으셨고, 욕 한 번 하시는 일이 없었고 안 된다고, 싫다는 내색하시는 그런 일도 없었어요.
한 가지 우리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건 자식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 우리 오빠나 남동생들 모두 미술에 재능이 정말 뛰어났는데 끝까지 미대를 못 가게 하셨어요. 옛날 어른들 말로 ‘그거는 밥 비러 처먹는 인간들이 하는 짓’ 이라고 말도 못 꺼내게 하셨죠. 제가 요즘도 우리 어머니께 그래요. ‘엄마, 오빠하고 나하고는 아버지가 다 망쳐 놨다’ 고요. 우리 아버지도 지금 같으면 반대를 그렇게까지 안 하셨겠죠. 그때는 시대가 그림쟁이나 춤꾼은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나는 여자기 때문에 못하고 그런 거 별로 없거든요. 우리 동생이 항상 말하잖아요. 의성에서 미니스커트 처음 입어본 사람이 누나라고. 결혼하기 전에 원하는 대로 멋도 실컷 부려 봤고 하고 싶은 건 웬만한 건 다 해봤어요. 옷이고 구두고 기성복은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다는 금자씨, 금자씨는 그때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거 남이 말린다고 못하는 성격이 아닌 금자씨가 단 하나 꺾여야 했던 꿈 대신에 금자씨는 그 넘치는 열정을 끊임없이 새로운 멋을 쫒고 남보다 앞서나가는 것으로 풀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 아버지 덕에 부유했으나 그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을 젊은 날의 그들 남매가 떠오른다.
이 땅 해방의 언저리에서 태어나 예술이라는 걸 가까이 하고 살아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마도 그런 아픔들을 지녔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대접하기 시작한 지가 사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으로. 특히 한국 무용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한국무용은 기생에게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마지막 남은 민살풀이춤을 추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어려서 기생이 되어 그 춤 실력이 인근에 자자했던 그 할머니는 일제 때 징용을 피하기 위해 첩실로 들어가 아들을 낳았다. 그러다가 해방 후 먹고 살기가 힘들어 다시 기생으로 나섰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들어와 치맛자락을 붙잡고 ‘엄마가 내 친구네 잔치 집에 가서 춤을 췄느냐’ 고 통곡을 하더란다. 그 뒤로는 기생 집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행여 기생 티가 난다고 할까 하여 한복도 입지 않았다 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흘러 주위에서 그의 춤을 아끼는 지인들의 간청에 못 이겨 한두 번 공연을 하러 갈 때면 세탁소에 한복을 맡겨두고 ‘나들이 갔다 오마’ 하고 나섰더란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공연에 60대의 아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처음으로 어머니의 춤을 보았다고 했다. 아들이 온 줄 모르고 공연을 마친 할머니는 아들의 꽃다발을 받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시대를 잘못 만난 모자가 마침내 그 서럽던 시절과 화해를 하며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좋으니까 한다
풀어내야 할 것이 무엇이 그리도 많았던 것일까. 우리 춤에는 유독 살풀이가 많다. 그래서 한국 무용의 기본은 살풀이춤이라고 한다. 살풀이를 온전히 해낼 수 있어야만 춤을 춘다고 할 수 있고, 그 살풀이의 기본 위에 다른 춤을 배울 수 있는 법이라고 한다. 법고에서 태평무까지 종류도 많은 우리 춤 전부를 모두 익히는 일은 전문적인 춤꾼에게도 평생을 요하는 어려운 일이다. 춤동작을 다 배웠다고 해서 그 춤을 제대로 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춤 한 마당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데 만도 몇 년에서 몇 십 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누가 시켜서는 절대로 못할 일이지만은 자신이 좋아하면 어떻게든지 하고야 마는 그런 일들이 있다. 춤꾼 장금자에게는 춤이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우리 아버지 말고는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누가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사실 누가 반대를 한다고 해서 듣는 저도 아니고요. 춤은 내가 좋아서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온 거고요. 아들이 셋인데 내 보기에 둘째가 무용에 재질이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한 번 무용을 시켜볼까 했는데 지가 싫다더라고요. 아무리 끼가 있다고 해도 저 싫으면 못하는 거거든요.”
가르치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제자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춤에 대한 기본 소질만 있으면 한국무용은 3, 40대 정도에 시작해도 늦지 않거든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러 다니거든요. 이왕 하는 거 춤을 제대로 추고 싶어서 매주 금요일은 대구에 있는 한국 춤 교육원에 다니고 있는데, 뭐를 새로 배운다는 거 그건 참 좋은 거거든요. 몇 년째 대구에 춤을 배우러 다니는데 버스로 가고오고 하니까 한 달에 차비만 십만 원이 넘게 들어요. 거기에다 의성에도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나가고 하니까 교통비가 많이 들지요. 거기다가 수강료 내야지요, 먹어야지요. 하지만 그 정도는 나를 위한 투자니까 아깝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춤만 쫒아 다니다 보니까 남들 다 배우는 운전도 못 배워서 매번 버스를 타고 오가지만 조금도 몸이 지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도 그렇고 배우는 것도 그렇고 춤을 출 때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한다. 지칠 줄 모르는 그 에너지는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금자씨가 말했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라고.
나를 사랑하는 멋진 엄마
스스로를 좋은 엄마는 못되지만 아들들에게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게는 키웠다고 말했다. 그건 알고 보니 금자씨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키웠다는 말이었다.
“애들 키울 때 내 나름대로는 원칙이 있었어요. 엄하기는 엄하게 하되 애들이 원하는 걸 조르기 전에 필요한 걸 살펴서 미리미리 챙겨 놓았어요. 하고 싶은 거 하지 마라 소리 안했고요.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 4, 5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 무렵 의성에 전자오락이 처음 들어왔는데 우리 애가 거기에 푹 빠진 거예요. 내가 옆에 가 서 있어도 모를 정도로 하는 거예요. 그래 내가 ‘하더라도 밥은 먹고 해야 하지 않겠냐’ 하고 집에 데려와서 밥을 먹여서는 100원을 주면서 ‘이제 가서 실컷 하고 와라’ 하고 보냈어요. 그때 그렇게 실컷 하게 해서 그런가 우리 둘째하고 막내는 중학교 가서도 전자오락은 안하더라고요. 우리 애들이 엄마가 옛날에 그거 하나는 잘했다고 하는 게 있는데 나는 항상 바구니에 동전을 가득 넣어놓고는 그 옆에 항상 메모지를 놔뒀어요. 그리고 혹시 집을 비울 일이 있을 때는 메모를 써서 애들이 학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가는 곳에 붙여 뒀어요. 애들이 보통 냉장고 문을 제일 먼저 열기 때문에 냉장고 문에 ‘엄마가 어디 가니까 무슨 일 있으면 이리로 전화해라’ 하고 전화번호를 적어 뒀어요. 그리고 바구니에 동전은 필요한 만큼 가져가되 무슨 일에 얼마만큼 썼는지 꼭 적게 했어요. ‘집어가라, 집어가되 적어라’했죠. 그리고 솔직하게 적기만 하면 전자오락을 했건 군것질을 얼마만큼 했던 야단을 절대 안쳤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저절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는 애들한테 공부하라는 소리는 안했어요. 대신 숙제는 꼭 해 가라고 했어요. 그건 가르치는 선생님에 대한 기본 도리라고요. 저는 우리 세대 엄마들이 흔히 그랬듯이 자식 위해 모든 걸 다 해주고 자기는 몸빼 입고 기운 양말 신고 그렇게는 못하거든요. 희생적인 그런 엄마는 저는 못해요. 나는 지금도 애들보다 내가 먼저거든요. 지금도 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둘째 놈이 그래요. 우리 엄마는 특별하다고요. 그런데 그런 엄마가 보기 좋다고 그래요.”



마침표없는 인생
춤꾼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금자씨도 언젠가는 개인 공연을 한 번 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공연 한 번 한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선 의상부터가 문제다.
“작년 공연 때 내가 태평무와 한량무를 했는데 태평무 한 벌 의상비가 100만원이었어요. 안에 홍치마 겉에 청치마, 당의에, 활옷에, 장삼에 가채까지 그걸 본견으로 제대로 하면 더 들지만 다행히 서울에 있는 한국춤 의상을 전문으로 하는 데서 저렴하게 한 거죠. 거기다가 한량무 의상비가 50만원 들었고요. 살풀이도 그렇고 즉흥무도 그렇고 승무도 그렇고 각 춤마다 의상이 다 갖춰져 있어야 되거든요.”
의상도 의상이지만 무엇보다 춤이 관건이다 보니까 개인 공연을 하려면 춤 연습만 죽어라 하고 반년이고 일 년이고 해야 한다. 올 겨울에도 공연이 있는데 그때는 살풀이하고 즉흥무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어렵게 익힌 진도북춤을 하려고 했었지만 북춤이나 장구춤 같은 경우는 손목 힘이 좋아야 되는데 하도 연습을 하다 보니까 손목을 다쳐서 이번에는 포기해야 했다. 당분간은 춤 연습도 가르치는 것도 손목을 달래가며 살살 해야 할 판이다.
주위에 보면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은 부동산을 해서 빌딩도 사고 땅도 사고 그런다는데 그는 그런데는 도통 관심이 없다. 또래 중에는 흔히 복부인이라고 불리는 그런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재물하고 나하고는 원래 인연이 없는 팔자라 그런데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는 소리를 부쩍 많이 해요. 그저께 친구가 왔는데 그 친구가 굽 낮은 신을 신고 와서는 내 구두를 보고 그래요. 너는 아직도 그렇게  높은 구두를 신느냐고. 내가 이제는 7센티 굽은 안 되고 6센티 굽을 신는다고 하니까 나는 5센티도 못 신는다 그래서 둘이서 웃었어요. 제가 이렇게 제 또래들보다 몸도 마음도 젊게 살 수 있는 게 저는 다 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나마 제가 춤을 계속한 덕분에 이 별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래도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활기차게 살고 있는 거지,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도 안돼요. 친구들이 지금도 그래요. 너는 역시 별나다고요.”
다들 하는 말이 그 나이가 돼서 그냥 취미 생활 정도로 하면 되지, 왜 굳이 그렇게까지 기를 쓰고 그걸 하려고 하느냐는 거다. 그렇지만, 환갑이라고, 나도 이제 살아온 생을 한 번 돌아보게 된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이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은데 뭐 벌써 뒤돌아보고 인생을 정리하고 그렇게 노인네처럼 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거다.
한국무용에 제대로 미친 장금자는 항상 지금이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꾸준히 새로운 춤을 배우고 새로이 가르칠 걸 모색하고 ‘다음에는 뭐를 새로 시작해 봐야겠다’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한 사람의 인생에는 영원히 마침표가 없는 까닭이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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