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불교미를 되살리는 귀일스님(글/서성훈)

신기하게도 봉정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마냥 즐겁다. 안기동을 벗어나 제비원석불을 지나칠 때면 마음이 설레고, 5번 국도에서 저전으로 빠져 서후로 들어서서는 들뜨고, 태장재사를 지나 봉정사 길로 들어설 때면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주차장에서 내려 일주문까지 언덕바지 소나무 길을 걷노라면 발뒤꿈치가 살짝살짝 들리는 것이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물론 영국여왕 덕에(?) 매표소가 생겨 얼굴한번 찡그려야 하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1000원에 비해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몇 갑절이 되기에 그냥 감내하곤 한다. 이렇게 신이 나는 것은 아마도 사찰에서 풍기는 종교적 경건함이 사람들에게 차분함을 강제하기에 다소 덜렁거리는 필자에게는 엄하면서도 포근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신이 난다.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은 지조암에서 기와그림을 그리시는 귀일(歸一?46)스님이다. 기와그림이란게 무엇일까. 기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기와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일까. 아무튼 기분 좋은 봉정사 길에 이런 여러 가지 호기심까지 더해져 발걸음은 더욱 가볍다.
사전에 방문약속을 잡아 놓은 터라 귀일스님은 봉정사 주차장 위의 기와그림 전시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만휴(卍休)라는 전통찻집과 공간을 반 반 사용하고 있는 기와그림 전시장은 최근에 새로 지어진 팔각지붕의 목조건물로 향긋한 나무향이 그대로 배어나는 운치있는 곳이었다.
처음 뵙는 귀일스님, 표정이 근엄하시다. 무신론자인 죄책 때문일까. 주눅이 든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엄한 표정 너머 포근한 말투로 반갑게 맞아주신다. 근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첫인상이 마치 봉정사처럼 느껴진다. 왠지 오늘 만남도 기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스님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기와그림이란 무엇인가가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기와그림이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지고 보니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를 하러 왔다는 사람이 기본 정보도 습득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귀일스님은 그런 필자를 책망하기 보단 살며시 미소 지으며,
“그럼 전시관을 먼저 둘러보셔야 겠군요.”
라며 전시관으로 안내를 하신다. 그리 넓지 않은 전시관이지만,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우선 기와그림은 말 그대로 기와에 그림을 그려놓은 작품들이었다. 암키와의 등면을 활용해 귀면이나 비천상 등이 그려져 있었고, 지름이 한뼘 조금 못되는 크기의 통나무를 횡단면으로 잘라 연꽃을 그려 넣은 그림도 있었다.(이것의 용도는 찻잔받침대인데, 얼마 전에 대웅전 수리공사에서 나온 서까래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재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기와그림의 재료인 기와는 새기와가 아닌 낡은 기와들을 재활용 한 것으로 기와에 묻은 세월의 흔적과 전통의 그림들이 어우러져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기와들의 형태 또한 온전한 것은 온전한 대로 깨어진 것은 깨어진 대로 그 낡음의 맛을 살리면서 채색이라는 새로움의 옷을 입혀 신, 구의 조화로움이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그림에서도 크게 부각되는 것은 귀면(鬼面)이였는데, 그 근엄함에 정말 잡귀들이 한 발짝도 범접하지 못할 사실적인 묘사에서부터 다소 앙증맞고 귀엽게 보이는 해학적인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아마도 현재 박물관 등에서 볼 수 있는 고고유물로서 귀면와(鬼面瓦)들이 그러하듯이 스님 또한 다양한 귀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밖에도 비천상 등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신상들은 금빛의 단색으로 채색하였는데, 금이 주는 사치스러움에 다소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신격화된 대상에 대한 종교적 경외감을 생각하니 부석사 무량수전의 금동아미타불 마냥 경건해 지기까지 했다.
그림 구경을 마치고 전시관 옆 卍休에서 스님과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스님. 구경 잘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군요.”
8월 중복의 무더위를 가슴부터 적셔주는 시원한 냉매실차 한잔을 대접하며, 스님은 그냥 미소만 지으신다.
기와그림을 구경하면서 생겨났던 궁금증 하나를 던져봤다.
“기와그림은 스님의 창작품인가요?”
“아닙니다. 기와그림은 예전부터 내려오면 불교미술의 한 부분입니다.”
그림의 재료나 소재가 주는 친숙함에 창작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불교미술의 한 장르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지게지고 장에 가듯 한 공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강산이 한 번은 변할만큼 역사공부를 했고, 저 북쪽 양양 낙산사에서 저 땅끝 해남 대흥사까지 전국의 대소 사찰을 안가본 곳이 없는 나인데 불교미술의 한 장르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전통 불교미술이라고요?”
의구심에 되묻는 나에게 스님이 천천히 설명을 해주신다.
“네, 맞습니다. 불교 회화 하면 단청과 탱화가 있는데, 기와그림은 단청의 일부였습니다. 즉, 단청을 그리는 화공이나 스님이 기와그림까지 그린 것이지요. 원래 기와그림은 단순히 회화로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목조건물을 지을 때에서는 기와지붕의 네귀퉁이인 추녀가 비바람에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녀의 갈무리로 추녀 끝에 암키와 한 장을 막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밋밋한 기와 한 장을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귀면이라든가, 나한이라던가, 신장 등을 그려 넣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추녀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적인 요소에 삼재와 잡귀, 액막이를 위한 주술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하나의 불교미술 장르로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러니 아마 단청 그리는 화공이나 스님이 기와그림까지도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한번도 추녀 끝의 그림을 본적이 없다고 하자 스님은 전시관을 지을 때에도 각각의 추녀 끝에 기와그림을 손수 그려 걸어두셨다고 했다. 무례를 무릅쓰고 도중에 밖으로 나와 추녀 끝을 살펴보았다. 팔각지붕 추녀마다 정말 기와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짧은 시간 기와그림에 빠져버려서 일까. 기와그림과 기와지붕, 그리고 전통가옥. 썩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매력을 느끼고 나니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기와그림은 어떻게 해서 그리기 시작하신 건가요?” 10여년 전 양산 통도사에서 고려말 또는 조선초로 추정되는 기와그림 두점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때 무엇에 홀린 듯 그 그림에 푹 빠져 버렸다고 한다. 그림의 소재는 인물상임이 틀림없지만 이미 세월에 많이 마모되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그린지는 분명하지 않았고, 다만 전술한 용도와 위치를 고려컨대 귀면이나 나한, 사천왕상 등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했다.
마침 스님은 불가로 출가하기 전 미술을 공부한 적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3년정도 자료수집과 구상을 한 후 본격적으로 기와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7년 전 즈음이라고 한다. 그후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기와그림의 인식확대를 위해 임시적인 전시보다는 상설전시의 필요성을 느껴 이 전시관을 짓게 되었다고 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단순히 한명의 승려가 아닌 전통의 맥을 잊고자 하는 인간문화재처럼 느껴진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열심히 그림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소망이라면 이 기와그림들이 예전처럼 목조건물의 추녀 끝에 걸리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런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
전통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옛것을 온전히 보전하고 유지하는데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석가탑을, 석굴암을, 서산마애삼존불을 보며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에는 분명 불심으로 자신의 혼을 쏟아내었던 당시를 살아가던 승려가-혹은 匠人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봉정사를 내려오는 발걸음도 신이난다. 아마도 후세들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남겨줄 또 하나의 장인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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