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장가가는 것(글/안병렬).jpg)
소학교 5, 6학년 또래의 아이들이 한국으로부터 이곳 연길에 와서 내가 있는 연변과기대를 방문하였다. 이 꼬마 친구들을 맞아 홍보과의 직원이 대학에 대한 설명을 한참 하다 말고 지나가는 나를 보더니 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말씀 한 마다를 하여 달라고 하였다. 마침 한가하던 참이라 나는 어린이들에게 이 대학은 지금부터 60년 쯤 전 김진경이라는 한 어린이의 꿈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어린 그가 아버지 찾아 이곳에 왔다가 어려운 동포들의 형편을 보고 장차 커서 이곳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꿈을 꾸고 이렇게 이루었다고 설명을 하였다. 어린이들은 모두 이해하는 듯 제법 고개를 끄덕이었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갖고 있나요?”
“여러분도 이런 꿈을 꾸어 볼래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답답하게 된 나는 앞에 선 사내놈에게 물었다.
“네 꿈은 무엇이지?”
“의사요”
그 옆의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한의사요”
“그래 참 좋습니다. 그럼 의사나 한의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지요? 왜 무엇 때문에 의사나 한의사가 되지요?”
이 물음에 두 어린이 다 말이 없다. 의사, 한의사 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나는 안타까웠다.
다시 옆의 여학생에게 물었다.
“우리 예쁜 여학생, 네 꿈은 무엇이지?”
“음악가요.”
“음악가 참 좋지요. 그래 음악가 되어서 무엇을 하지요?”
“음악 선생님이 되겠어요.”
“음악 선생님이 되어서 무엇 하지요?”
대답이 없다. 나는 그만 맥이 빠졌다.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나의 긴 설명을 들었으니 김총장님처럼 남을 돕는 일,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대답을 기대하였는데 겨우 당장 인기 있는 직업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업 자체가 목적이지 그 직업을 통하여 어떤 일을 하겠다는 꿈은 없는 것이었다. 참으로 문제라 여겨졌다. 무엇이 되겠다는데 왜 되겠다는 이유도 그리고 되어서는 어떻게 살겠다는 꿈이 빠진 것이다. 실은 무엇이 되겠다는 것보다 어떻게 살겠다는 것이 훨씬 중요한데도 그게 없는 것이다. 꿈은 꿈이지만 꿈에 값있는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이 실망스러운 충격을 어떤 분에게 이야기하였더니 그 분은 더 기막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농촌 소학교의 6학년 어린이들에게 꿈을 물었더니 남학생들은 모두가 다 “내 꿈은 장가가는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40살이 되도록 장가 못가고 있는 그들의 삼촌이나 이웃 아저씨들을 보고 그들도 그런 운명에 빠질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말하는, 참으로 솔직한 대답이었으리라. 이 진솔한 꿈 앞에 우리 무엇으로 대답할꼬? 이 어린이들의 꿈에는 무엇이 되겠다는 것마저 없다. 어떻게 살겠다는 이상은 더더구나 없다. 이런 포시라운 이야기는 그야말로 저 하늘 밖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긴박한 문제로 그저 다만 장가만이라도 가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이 없겠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고?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 농촌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었는고? 한숨이 나온다. 참으로 그들의 꿈을 이룰 방도는 없는가?
우리 어린이들이 무턱대고 무엇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기 위해 무엇이 되겠다는, 정말 아름답고 바람직한 꿈을 꿀, 그런 날은 언제 올려나? 그런 교육을 우리는 할 수 없는가?
“내 꿈은 장가가는 것” 그 소리가 자꾸 귀에 맴돈다.
2005. 3. 1.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