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장을 지키는 사람들(글/김선주)
무더위를 방불케 하는 여름날, 그래도 아침나절은 시원한 기운이 든다. 그래서 오늘 찾아갈 임동장, 그곳을 아침 일찍 찾았다. 한 20여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임동면 중평리. 이곳은 임하댐 건설로 1987년 수몰되어, 오랜 시절 장터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물 밑으로 묻어 두어야 했던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왠지 모를 스산한 거리에 설마 이곳에 장이 서는가 의심이 들었다. 마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장이 어디에서 서는지 물었다.
“장터? 저 위에 있는데, 요 골목으로 올라가면 시장이지. 오늘 보이 뭐, 마늘 장사들 몇이 왔든데, 장날이긴 한데 공휴일이라서 사람들이 없어. 장사가 안돼. 그래도 한번 올라가봐.”
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장을 다 본 모양인지, 양파와 마늘, 채소 등을 비닐봉지 몇 묶음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갈전이 집이라는 천상한 할아버지(73) 이야기다.
“수몰되기 전에는 장날 이고 뭐고 다 잘됐지. 이젠 사람들 이사 다 가뿌래서 노인들만 있어. 옛날 임동장은 요 아래 마을에 있었는데, 장날 이면 사람들이 많아서 골목을 댕기지도 못했어. 지금은 사람들이 진보로 가뿌고 안동으로 가뿌고 글치 뭐.”
혼자 사는 노인이라 적적하다며 사람이 그립다는 할아버지, 장이 서는 날에는 늘 장에 나와 면에 일도 보고, 농협 일도 보고 한단다. 사람구경 둘 하면 많이 하고, 많이 모이면 댓 명 모인다는 할아버지 말마따나 시장으로 올라가는 거리는 휑한 기운이 감돌았다. 아쉬움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예전 활기가 넘쳤던 임동장이 그리워졌다.
“옛날에 장이 저 아래 있을 때는 장에 오면 우리도 한창 때 술도 먹고 담배 피우고 할 때는 술집으로 늘 가고했지. 이제는 술 묵고 안 그러지. 지금이사 술집도 없어. 들어가 놀데도 없는데 뭐.”
예전 이곳 임동장터는 사람들과 만나서 술도 마시며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장소였던 것이다. 천상한 할아버지는 어디 잡아가는데 없느냐며 허허 웃으신다. 이제는 장에 와서도 할 일이 없다며 장만 보고는 바로 집에 간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버스에 올랐고, 우리는 버스정류장에서 임동장으로 올라갔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장터에는 네 다섯 명 정도 장꾼들이 길가에 군데군데 좌판을 벌리고 있었다. 장터 골목 첫 모퉁이에는 공구 파는 아저씨가, 그 옆에는 마늘 파는 할머니 두 분, 그리고 건너편에는 옷가지를 내다 파는 피복장수 아주머니 한분, 또 옆에는 양파를 팔러온 아주머니, 그렇게 해서 너 댓 명의 장사꾼들이 임동장을 지키고 있었다.
옷가지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여기는 원래 그래. 안동에서는 저자 댕기면 안 글찮아. 근데 여기는 사무 사람이 없는데, 공휴일이라서 장사꾼이 몇 더 없지 뭐.”
아주머니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사람들 때문에 길에 틈이 없었다고 한다. 임동장이 안동에서 많이 컸고 또 유명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옛날에 장이 저 밑에 있을 적에는 버스가 내리면 고 자리가 시장이래나노이 잘됐고 인자는 버스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여기로 올라와야 되잖아. 그럴 수밖에 없지. 옛날에 물들기 전에 그때는 사람 많았지. 그때는 정류소 옆이라서 더하고. 물든 지가 15년이 넘었는데, 17년째야. 그때는 지금처럼 장터 가에 세워 놓은 차도 별로 없었거든.”
옆에 시장구경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옛날에는 임동장이라 그러면 잘 된다 했지”
“요번에 또 오거들랑. 문에 치는 거 있제, 모기장. 그거 하나 사가온나. 정지 문에 쳐 놓고 뻗치고 자야되지. 더버가 몬산다. 하나 있었는데, 암만 찾아봐도 없다.”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아주머니한테 다음 장을 기약하며 모기장을 사오라고 부탁도 한다. 오며 가며 서로의 소식들을 전하는 이곳 장터, 이렇듯 장꾼들의 세월도 이곳 임동의 주민들과 함께 호흡을 해왔을 터다.
“이거 하면서 다 늙었어. 우리 손녀가 벌써 학생만한데…”
피복장수 아주머니 이름이랑 나이를 물으니 나이가 많다며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환한 얼굴에 많은 나이를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다만 그만큼의 세월을 추측할 뿐이었다.
그 옆으로 갔다. 대곡 사는 할머니는 양파와 마늘을 팔러 왔다.
친정이 와룡 가야리라는 오노미 아주머니(68), 직접 재배한 거란다.
카메라를 보더니 어디서 왔냐며, 임동장이 잘 되도록 좀 어디 많이 선전 해 달라 한다.
“안동장에도 가요. 요샌 바빠서 못나가고 영감이 아파서 못 나오다가 이제 오늘 첨 왔어요. 들일이 안돼서 이때끔 이러고 있다가…”
양파를 사러온 아주머니들이 그래도 좀 있다.
“양파요? 한자루에 오천원이예요. 쪽이 좋아요 달고, 내 갖다 줄게요.”
집이 어디에 있느냐며, 배달까지 흔쾌히 해 주겠다는 아주머니다.
장사꾼들이 더 오진 않는지 공구며 씨앗이며 여러 가지를 파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어물 파는 아저씨랑 과일 파는 할머니가 오늘은 안나왔다고 한다. 아직 오전이지만 장날이 되어도 사람들이 잘 안 온다는 아저씨,
“초반이라도 장은 거의 다 됐어. 사람이 없어. 인제는 농촌에도 교통이 좋아서 이제 안되지뭐. 옛날에는 임동장이라 그러면 잘 된다 했지. 안동에 있는 다른 장중에는 옹천장이 좀 커. 풍산장도 큰 편인데, 길안도 그렇고.”
집이 안기동 이라는 강수용(68)씨의 말이다.
장사한지 얼마나 되었나는 물음에, 그는
“챙피시럽그러 그런 걸 묻나, 내가 여기에서 역사가 제일 오래 됐을걸. 40년도 넘었지. 43년이야. 62년도에 시작했으니까.”
오랫동안 장사생활 하면서 혼자 다니면서 적적하진 않는지 물어보니, 손님들 만나고 우스개도 하고 그러한 재미에 심심하지도 않단다. 가을배추 씨 사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녀간다. 씨앗 좋다면서 이것저것 설명한다.
“비가 올 것 같아서 전을 다 안 펴놨어. 모자, 공구 뭐 여러 가지 취급해. 요새는 단일 품목 가지고는 안되거든. 내가 하도 오래도록 하고 있으니까, 그냥 오는 손님은 없어도, 아. 거기 가면 그런거 있드라 하면서 더러 온다니까. 잘은 안되도… ”
“장에 오는 사람들 시계약도 넣고 하지. 내가 옛날에는 아주 시초에는 고담, 장화홍련,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책을 팔았어. 그 다음 라이터 했거든. 탄피로 만든 거. 아주 오래됐지. 옛날 보리 고개 시절도 다 지나가고 지금 같은 시절도 오잖아. 그처럼 장사도 변해야지. 그 다음에는 내가 안동에서 금방을 했거든. 장사도 하면서 점방도 차렸지. 얼마 있다가 박정희 시대 74, 75년도에는 사치성금지라고 해서 금도 18K 이상 순금 같은 거는 못하게 했어. 세금을 어마하게 매겼어. 그 당시도 종합소득세 나오면 10만원 이상 나왔거든. 한달에 밥값이 2000원 밖에 안가는 시절이었는데… 손해 보고 해서 폐업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래서 요즘에도 시계도 많이 팔아. 시계약도 넣고. 촌에는 시내가기 힘들거든. 시계약 찾는 사람들이 장날에 많이 있지.”
강수용씨는 그야말로 만물상 아저씨였다.
장에서 나오는 길에,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다. 재래시장 붐이 일고 있지만 이런 장터마저 사라질 것 같은 생각에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흙이 그대로 묻어 있는 야채, 비린내 풍기며 널려있는 생선, 옥신각신하면서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에서 각설이 분장을 하고 엿을 파는 광대… 그렇게 왁자지껄한 시장터의 모습들, 소박하지만 정겨운 옛 5일장의 모습들이 그리운 하루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형마트에 밀려 그 모습이 사라진 오늘, 특별히 예전 임동장이 그리운 날, 가슴 속 아련함을 달래며 길을 나섰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