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안동사람이다(글/천남희, 사진/박영대)
이 행사는 안동의 6개 남자고등학교(농고, 안고, 경안고, 중앙고, 경일고, 영문고) 와 안동여고,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 길원여고 등 3개 여자고등학교 모두 9개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참여하는데 올해는 약 1500여명의 동문들이 모였다. 행사를 준비하여 진행하고 장소를 섭외하는 일은 매년 6개 남자 고등학교에서 개교 연대순으로 돌아가며 주관하는데 이번에는 안동생명과학고(농림고등학교)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한다.
정겹고 즐거운 자리
구름한점 없이 파란 하늘을 이고 안동인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축구며 배구는 이미 예선전을 치르고 있었고 각 학교별로 자리를 잡아 선수를 선발하랴 또 음식을 준비하랴 선, 후배를 맞으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저기 안동 사투리가 흘러 나왔다. 그 말들이 찌릿찌릿 신호를 보내며 내 머릿속을 뱅그르르 맴돌아 나왔다. 행복했다. 안동인이라는 그 사실하나만으로 하나가되고 동문을 만난다는 사실보다는 누구든지 언니 오빠 형님이 되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튀어나오는 안동 사투리가 편하고 정겨운 자리였다. 더욱이 생명과학고 악대부 학생들이 각 학교별로 다니면서 교가를 연주해 주었다. 너무도 오래 된 터라 잊어버린 줄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연주에 맞춰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교가를 부르니 학창시절의 일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서 살아났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생각나는 친구, 선생님들을 하나하나 되 짚어 본다. 코끝이 찡해지며 가슴이 설레는 것이 마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9개 학교 교가를 모두 연습해 와서 우리를 이렇듯 기쁘게 해주는 그 후배들이, 새벽4시에 올라오느라 설친 잠으로 더러는 부스스해 보이는 그 얼굴들이 참으로 이뻤다.
각 학교 동문들은 몇몇은 운동 경기에 참여 하고 응원도 하고 또 나머지는 각 학교를 찾아다니며 친구를 찾고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끈끈한 정을 나누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오랜 지인처럼 서로 인사하면서 반갑게 맞으니 고향 떠나 타향에서의 고단한 삶에 활력을 불어 넣고 우리를 있게 해 준 고향 안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모든 이야기는 안동이 중심이 되었다. 어릴 적 동심이 싹트던 고향의 이야기며, 넉넉하게 흐르는 낙동강변에서의 놀이, 끝없는 추억을 쌓은 학교 이야기, 그날 하루만은 누구라도 뜨거운 애향심이 불붙어 살기 좋은 내 고향 가꾸기에 앞장서는 안동인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또한 청빈하고 학문과 예를 숭상했던 조상 덕에 어느 곳에서나 떳떳한 안동인임을 말할 수 있고 대접받듯이 우리도 노력하여 안동인의 자존심을 지켜나가자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한 해를 보내고 다음해에 모이면 새로운 안동 소식을 주고받으며 누구 네가 며느리를 봤고 사위를 봤는지 또 어떤 즐겁고 기쁜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를 올해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서 할 것이다. 이러한 만남의 기쁨이 31년이란 세월을 쉼 없이 이어오게 한 것 일게다.
축구와 배구, 줄다리기, 피구, 단체줄넘기, 이어달리기 등 다양한 체육대회와 안동출신 가수들의 흥겨운 축제마당이 어우러지는 행사는 어둑어둑 해져서야 끝이 났다. 이렇게 체계적이고 화합된 행사가 이어오기까지 여러 동문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관심이 있었겠지만 처음 모임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남자 고등학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31년 전 처음 모임을 주선한 선배 한분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김연대님과의 만남
경안고등학교를 졸업(2회)한 김연대(66)님을 만난 건 체육대회가 끝나고 10여일이 훌쩍 지나서였다. 송파구에 위치한 오금공원 인라인 경기장 관리소장으로 있는 그를 만나는 날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 때문인지 공원에 이미 수명을 다한 단풍잎들이 여기 저기 나뒹굴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늦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인라인 경기장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이서 안전모와 보호 장구를 착용한 채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뱅글뱅글 맴돌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편안하고 인자한 외모로 10여년은 훨씬 젊어 보이는 김연대님은 경안고등학교를 1958년에 졸업을 하고 그때 당시 안동에서 유일하게 신흥대학 체육학과(현 경희대 체육학과)에 진학한 분이셨다.
“1970년 가을이었지 아마 파고다 공원에서 안동 향우회를 했어요. 그때는 뭐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이고 언제 모이자 하면 입소문을 타고 연락이 다 됐지. 안동고등학교 7회 졸업 생하고 우리하고 동기생들인데 그때 봄가을로 축구대회를 하자고 얘기가 됐어요. 그땐 뭐 졸업한 학교가 달라도 다 아는 처지였으니까. 그래서 2년 동안 번갈아 가며 축구를 했지. 내가 숭문 중?고등학교에 재직 할 때여서 거기 운동장을 썼고 안고가 개최 할 때는 영등 포에 있던 대한 중석구장에서 했지.”
처음에는 그저 안동출신들끼리 고향소식을 전하고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래고자 시작한 막연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학교 축구대회에 참가한 인원만도 500~600명 이었다고 하니 그때의 열의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다. 3년째 되는 해에 안동사범학교와 농림고등학교가 합세하여 4개 고교 축구대회를 하면서 ‘제 1회 재경 안동고등학교 축구대회’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하며 10여년을 친선을 도모하였다. 그 후 나머지 학교들이 하나 둘 합세하여 5개교, 7개교에서 현재는 9개교 체육대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모임을 위한 쓴 소리
“그땐 뭐 모이는 거 자체만으로도 좋았지. 수건 도시락도 겨우 주문해서 나눠주고 외상으로 먹은 밥값도 많았지. 경제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지. 지금은 열의가 많이 식었지. 살기가 더 좋아 졌는데도 말이야. 사는 게 여유가 있고 하니까 주말에 더 모이기가 어려워지는 거 같애. 4개 고교 모일 때도 1000여명 정도 모였으니까. 연령층도 7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 너무 많이 벌어지니까 우리는 자연적으로 뒤로 나앉게 되지. 안동 사범도 뒤 받쳐주는 후배가 없으니까 몇 년 전에 공식적으로 인사하고 빠져 나갔지.”
참으로 오래된 얘기인데도 생생한 기억으로 변함없는 안동말로 술술 풀려나왔다.
“그래도 후배들이 잘 하고 있어. 내가 올해는 일이 있어서 못 갔는데 해마다 가보니까 잘 하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초창기 대회를 이어온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없어. 홀대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정치가나 유명인사들은 와서 인사나 하고 박수만 받고 사라져 버리지. 거기가 뭐 정쟁을 하려고 모인 것도 아이고, 내빈소개 라고 하는데 그 내빈이 안내(內)가 아니고 올래(來)자라고, 우리 집 잔치에 우리 집 식구들이 와서 죄다 인사하고 있으니 누가 좋아 하겠어. 그 사람들은 학교 마다 다니면서 인사해도 된다고. 그르이 나이 드신 분들이 하나둘 참석을 꺼리는 거지. 시대가 변하기도 했고. 우리는 뭐 뭔 발치서 지켜보는 거지.”
어렵게 만들어 이어온 모임이 행여 형식적이고 일반적인 다른 모임과 같아서 그 본래 의미가 희석될까봐서 일까. 점차 획일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고향은 안동
그의 고향은 안동시 삼산동이다. 그의 말대로 부잣집에 태어나서 배 고품은 없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다 6.25사변, 4.19와 5.16등 많은 사건을 함께 겪은 세대이다. 그래서 일까. 고향에 대한 아니 고향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 다른 것 같았다. 그는 영가회나 도약회, 터구회 등 안동사람들의 모임을 여럿 주선하고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한달에 서너 번은 길흉사 참석차 안동을 다녀오지. 내가 좋아서 내려가는 거지. 부주 값 보다 경비가 더 들지만 그래도 좋아서 하는 것을……. 지난 탈춤 축제 때에는 관광버스 4대를 맞춰서 내려갔다 왔어. 먹거리도 다 안동에서 해 가주고 와.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 지인들이 말려준 시래기며 씀바귀, 고등어가 가득 들어 있지. 살기는 여기 살아도 내 생활권은 안동이야. 공기 맑고 좋지, 교통 편리하지, 농토가 비옥해서 먹거리도 많지. 그런데 말이야 한 3일 있으면 답답하더라고. 친구들이 다 여기 있어서 그런가. 허허…….”
오랜 객지 생활 탓일 게다. 그리워서 찾아 가지만 친구나 가족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 다시 돌아올 수밖에. 오랜 서울 생활에도 사투리나 억양이 하나도 변하지 않아 물었더니 변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 하신다. 참으로 당당하게 안동인답게 살아온 것 같아 존경스러웠다.
고향이 안동이라는 것, 그 이유로 우리는 1년에 한번쯤은 한자리에 모여 안동사투리 껴껴를 맘 놓고 쓰며 정담을 나눈다. 그 모임에서 비단 동문만 만나겠는가. 먼 동창이나 고향 사람은 물론 사제지간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날 기자도 초등학교 선생님과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 오랜 만의 정담을 나눌 수가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더군다나 같은 땅을 밟고 물을 먹고 자란 사람들의 모임에 무엇이 더 필요 하겠는가. 부디 그 모임이 안동을 고향으로 둔 이들에게 오랫동안 쉼터가 되고 고단한 객지생활에 큰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모임을 처음 기획한 그 선배들, 또 그 모임을 계속해서 이어왔던 후배들의 마음일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