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정을 나누는 마을제사(글/권두현)- 밤. 서삼리에 도착한 것은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인적이 끊기고 마을사람들은 성스러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1.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삼리 동네를 수호하고 상징하는 당나무였다.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한 이 당나무에는 산불조심이라는 현수막이 있고 그 옆에 촛불이 성스럽게 그러나 다정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 낡은 의자에 비닐을 씌운 바람막이가 그 불빛을 수호하고 있었다.
2.
새로 지은 동 회관 위로 마을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동제를 지낼 당주집을 찾을 수 있었다. 당주집 대문에는 왼새끼로 만든 신성불가침의 상징물이 성스럽게 부정한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우리는 주저했다. 깨끗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마음과 함께 같이 간 일행 중에는 여자들도 있어 관행적인 것에 대한 반감을 우려한 때문이다.
주인어른을 불렀다. 할머니 한분이 나와 동제를 지내는 신성한 시간에 왠 낯선 사람의 방문일까? 하는 의구심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곧 반갑게 맞이한다. "여자도 있는데요" "뭘 그런 걸 다 따지니껴. 추운데 방으로 들어가시더"
방 안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해 하시지만 곧 익숙하신지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텔레비전에는 트로트 가요가 흥미롭게 흘러나왔다. "우리 양반도 노래하면 참 잘했는데…"
3.
건너방에는 오늘 동제에 쓰일 제물이 정성스럽게 차려져 있다. 모두 오늘 아침에 장만한 것이라고 한다.
4.
시간이 되자 제물을 손수레에 싣는다.
5.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끄시고 당으로 향하고 할머니는 잰 걸음으로 따라간다. 할아버지는 발길이 너무 빨라 앞서 가시고 할머니는 자꾸만 안 처지려고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은 듯 다정한 손짓을 하면서 총총거리신다.
6.
동네 이웃집에는 동제를 드리러 가는 시간에 맞추어 앞마당에 촛불을 켜 놓는다. 정성을 함께 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정이 느껴진다.
7.
당에 도착하자 촛불을 당 앞으로 가져다 놓고, 제물을 차린다. 평범한 일상처럼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8
제사는 그래도 일상복과는 달라야 하는가. 일하는 복장위에 도포을 입는다.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도포를 입고 할머니의 차림을 도와주신다.
9.
제사는 그저 정성이 담겨야 하는 법, 그럼에도 거대한 종교집단이 가진 위엄과 복잡한 절차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박하면서도 정성 담긴 손길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온기만 있을 뿐이다.
10.
마음을 모아 동네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는다. 한자로 쓰였지만 자세히 보면 한글로 토가 달려있고 날짜는 분명한 기록을 하지 않고 매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신성한 것을 품위있게 말하고자하는 서삼리 민중들의 흐믓함이 있다.
11
온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일일이 소지를 한다.
함께 사는 동네의 소들과, 동네의 개와 닭들에게도 안녕을 빌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성을 모아 절을 한 후
12.
제물을 거두고, 마지막으로 초와 떡을 한 접시 남겨둔다. 이 떡을 먹는 사람 복이 있을지니…, 사람이 아니고 들짐승이 먹어도 마을의 넉넉함이 나눠질지니. …돌아오다 돌아보니 벌써 떡이 없어졌다. 한 청년이 떡을 소중히 싸서 사라졌다. "집이 가깝게 있어 늘 기다리고 있다고 이 행운의 떡을 제가 먹죠" 연신 싱글벙글이다.
13
돌아오는 길, 여전히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앞에 가시고 할머니는 총총거리시면서 따라간다.
집에 돌아와 음복을 하잔다. 복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행복도 나누고, 오늘 처음 만난 이방인이지만 무엇이 두려워 함께 정과 소원을 나누지 못하리.
서삼리에도 사람들이 정겹게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