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재사 이야기(글/윤천근 - 안동대 교수)
능동 골짜기의 설경
능동은 큰 무덤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여기 골짜기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권태사 묘소로부터 아마도 그 이름은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의 한 깊은 산골짜기. 이 골짜기의 초입은 산 사람들의 삶터이지만, 그 깊은 부분은 죽은 이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 산 사람들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영역은 골짜기 초입의 좁은 부분이지만, 죽은 이들을 위한 건물과 묘터는 그 안쪽 골짜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골짜기 주변의 삶터가 죽은 이들을 모시기 위해 개척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눈 온 날 아침.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골짜기 안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신비로움을 가득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로 위에는 흰 눈이 쌓여 있다. 그 위에 차바퀴 자국을 처음으로 새기며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는 일이 그저 범상한 것만은 아니리라. 특별히 할 일이 없이 설경만을 찾아 움직인 것이라면 그 느낌은 한결 자유롭고 신선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신선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흰 눈은 골짜기 안 전체를 엷게 휩싸고 있었다. 그 느낌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는 우리를 까닭 없이 스산하게 만들어 주지만,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은 우리를 이유 없이 따뜻한 느낌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비는 따뜻한 계절에 내리더라도 추위를 느끼게 하는데, 눈은 추운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만나더라도 우리를 푸근함으로 감싸 주는 것은 어쩌면 역설적인 우리의 감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능동의 골짜기는 남향으로 좁직하고 길게 열려 있다. 골짜기의 남쪽 끝은 서후면 소재지와 저전 삼거리로 이어지는 2차선의 굽이진 길을 향해 열려 있다. 골짜기 안으로는 양쪽으로 벌려 선 산줄기가 뻗어 있다. 그것들은 골짜기의 아주 깊숙한 지점에서 북쪽을 막아선 산의 척추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다.
“천등산은 안동 서쪽 20리쯤에 있는데, 태백산에서 기원하여 여러 군을 거치며 흘러내려온 산줄기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맥을 잘 알 수 없게 되었다가 봉정사 뒤편에서 다시 크게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 봉우리 중 하나는 남쪽을 어루만지며 여러 갈래로 흩어져 나가고, 또 한 지맥은 서쪽으로부터 굽어 돌다가 동쪽으로 흘러내린 지맥과 만나 서로 둘러싼다.”
숭실재사의 <천등산기> 현판 속에 보이는 일절이다.
능동은 봉정사의 서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봉정사 서편으로 흘러내린 지맥 속의 한 가닥이 능동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봉정사 동편으로 흘러내린 지맥이 굽어 돌아 능동 쪽 지맥과 같이 어우러진다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이곳 봉정사 주변 서후의 산천이 천등산에서 학가산으로 이르는 산줄기로부터 흘러내린 여러 지맥들이 서로 뒤엉켜 휘돈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만큼 능동 주변의 지형은 산들로 휩쌓여 있다. 사람의 흔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깊은 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능동 골짜기라는 말이다.
능동 골짜기의 북쪽을 막아선 것은 천등산에서 학가산으로 나가는 산줄기이다. 천등산이나 학가산은 안동 서쪽에서는 높은 산이다. 안동 주변의 산세는 아마도 천등산과 학가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모습을 갖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능동 역시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지만 능동 골짜기에서 우리는 높고 험준한 산을 확인할 수는 없다. 능동 골짜기 안에서 험준하다거나, 깊은 산골짜기 속이라는 느낌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유는 골짜기의 바닥이 밋밋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능동 골짜기 속에서는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도, 산줄기 사이에 펼쳐진 좁직한 분지도 남쪽을 향해 뻗어 내리면서 천천히 같은 비율로 키를 낮춘다. 그러므로 골짜기의 초입인 마을에서나, 그 안쪽의 권태사 신도비각에서나, 또 그 위쪽의 안동권씨 능동재사 영역에서나, 가장 위쪽의 풍산유씨 숭실재사 영역에서나 우리가 갖게 되는 것은 높은 산 깊은 골짜기가 주는 위압감이 아니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좁직한 공간. 능동골짜기 속의 어디에서든 우리는 그런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산과 더불어 골짜기도 일정한 경사면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 골짜기 속에서 우리는 한없는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느낀다. 산도 골짜기도 눈으로 덮인 겨울 아침, 그런 느낌은 한결 강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숭실재사
“이 건물은 풍산부원군 유중영의 묘제를 위해 지어졌다. 류중영은 서애 유성룡의 부친이며 중종 때 문신으로 경연관이 되어 활약하였다. 이 집의 평면은 숭실재와 영모루, 부속건물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영모루는 정면 6간 측면 2간 규모의 다락집이다. 누의 아래에는 벽체를 설치하여 수납공간을 마련하였다. 재사는 영모루 높이만큼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3간 측면 1간의 건물을 세웠다. 봉정사의 건물들과 그 분위기가 비슷하며, 정면 6간 중 4간은 원래의 구조이고 왼쪽의 2간은 나중에 달아낸 것이다. 숭실재는 원래 능효사의 한 전각이었는데 풍산유씨가 재사로 인수하여 1558년 중수하고, 1622년 보수하였다.”
숭실재사 안내판의 기록이다. 이 숭실재사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위치하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46호이다. 이 안내문은 집의 규모 등에서 조금 사실과 차이를 보이는 듯 하다.
숭실재사는 골짜기의 제일 안쪽에 위치한다. 그 뒤는 뒷산의 가파른 산기슭이 막아서고 있다. 재사 영역에는 뒷산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바닥으로부터 헤아려본다면 꽤 높은 산이라고 하겠다. 골짜기는 남향으로 열려있다. 재사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남동쪽이다. 재사가 남동쪽으로 시선방향을 두고 있는 것은 유중영의 묘소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재사는 조금 가파른 경사면 위에 터를 마련하여 들어앉았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높은 누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경사면을 타고 올라 재사 영역으로 들어서면 제법 넓은 바깥마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바깥마당은 골짜기의 경사진 바닥을 밀고 평면을 마련하였다. 그 위의 재사는 골짜기 바닥의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어졌다. 바깥마당을 평면으로 만드는 바람에 생겨난 단층은 높은 석단으로 해소하였다.
바깥마당에서 보았을 때 재사는 3층의 석단 위에 높이 올라서 있다. 제 1층과 제2층은 각각 4단의 석축으로 쌓았고, 층과 층 사이에는 좁직한 화단을 두었다. 제 3층은 2단의 석축을 쌓았다. 석축은 각각 다른 모양의 단정한 자연석을 적절히 이용하여 빈틈없이 쌓아올렸다. 제 3층의 석축의 위쪽은 잔돌을 이용하였고 시멘트를 이겨 붙여 마무리 하였다.
석축부분의 동쪽 한켠으로는 영모루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역시 시멘트로 이겨붙인 계단이 마련되어 있다. 계단의 동편으로는 좁직한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고, 또 그 동쪽으로는 아주 폭이 좁은 수로가 마련되어 있다.
재사 영역의 서쪽 측면은 바닥면이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영모루와 헛간채로 이루어진 재사의 남쪽 건물들이 올라서 있는 부분이다. 헛간채의 서쪽 끝으로는 커다란 나무판 문으로 이루어진 측문이 열려 있다. 2층은 1층으로부터 5단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평면을 마련하였다. 2층은 재사의 서쪽 건물이 남동쪽과 북서쪽을 축으로 삼아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이다. 서쪽 건물의 한가운데에는 역시 두 쪽의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측문이 열려있다. 이 2층의 측문 서쪽으로는 좁직한 마당이 있고, 그 한쪽에는 작은 강돌을 이용해 원형으로 쌓아올린 우물이 덮개를 하고 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른 길은 바깥 마당 아래쪽에서 둘로 갈라져 하나는 바깥마당 동편 끝으로 기어오르고, 다른 하나는 바깥마당 아래쪽에서 서쪽 끝으로 기어올라 재사 측면의 2층 작은 마당에 까지 이른다.
재사는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영모루, 아래쪽 헛간건물, 서쪽 건물 북쪽의 재사건물, 동쪽 건물 등이다. 남쪽과 서쪽, 북쪽의 건물들은 서로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안내문에서는 ㄷ자형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쪽 건물은 그 ㄷ자의 열린 부분을 동쪽에서 막고 서 있다.
영모루 건물
영모루는 2층으로 지어진 누각이다. 안내문에서는 이 건물이 정면 6간, 측면 2간 규모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면 5간, 측면 2간으로 되어 있다. 3단의 석단으로 된 기단 위에 2층으로 지어진 영모루는, 1층과 2층의 남쪽 벽면이 거의 다 판재로 막혀 있어서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한껏 발현한다. 날렵하다는 느낌은 영모루의 것이 아니다.
영모루의 주춧돌은 넓적하고 커다란 자연석이다. 원형의 기둥을 그 위에 세웠다. 1층의 기둥과 2층의 기둥은 서로 다른 목재를 독특한 목구조로 연결하여 이어 세웠다. 2층 바닥면을 형성하고 있는 목판의 중간 지지목이 종으로 기둥 사이에 걸쳐져 30센티 정도는 밖으로 삐죽 튀어나오고, 그 판목과 기둥 사이를 좀 두툼한 판목을 세로로 박아 1층의 기둥을 2층 바닥면과 견고하게 연결한 목구조이다. 박아 넣은 판목은 1층 기둥의 위쪽을 반으로 가르듯 들어서 있는데, 위쪽은 20센티 정도 나와 있고, 아래쪽은 10센티 정도 나와 있으며, 그 사이는 사선으로 잘려 있다. 이 연결구조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건물을 안정시키기는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그것은 2층의 바닥면을 구성하고 있는 두툼한 각재 횡목과 그 아래위로 붙어 있는 각재 횡목의 도움을 받아 위 아래로, 또는 좌우로 견고하게 틀 잡아진다.
1층의 중간 간에는 대문이 마련되어 있다. 대문간은 위쪽으로는 2층의 바닥면과 고정시킨 횡목 아래편으로 주먹 하나가 들어 갈만한 틈을 두고 크고 작은 횡목이 가로지르고 있고, 아래쪽으로는 중간이 아래를 향해 불룩한 호를 그리고 있는 목재가 기단까지 침범하며 가로지르고 있으며, 좌우로는 굵기가 다른 각재가 각 세 개씩 종으로 박혀 있는 사이에 두 쪽의 판자문이 가설되어 있는 것이다. 대문은 위 아래의 횡목에 또 작은 횡목을 덧붙이고, 거기 구멍을 만들어 두 쪽 대문의 양쪽 끝에 위 아래로 튀어나온 나무못 형상을 한 연결부와 요철을 맞추어 달아냈는데, 대문의 양 쪽 가장자리에 위 아래로 길게 직사각형의 틈을 만들고, 그 홈이 가 닿는 양쪽 기둥의 위아래에도 대문의 그것보다는 좁직하지만 같은 모양의 홈을 각각 두 개씩, 총 8개 만들어 대문의 구멍과 중첩되게 배치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이 구멍들은 지금으로써는 그저 뚫려 있을 뿐으로 상호 어떤 유기적 기능을 담당하는지 분명치 않다. 대문 아래쪽 문지방의 가장 아래쪽으로 불거진 부분의 아래 기단면에도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아마도 대문 안에 물 같은 것이 고였을 경우 그것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가게 하는 목적으로 배치된 것일 터이다.
대문간의 동쪽과 서쪽으로는 각 두간씩의 나무판 벽이 벌려 서 있다. 동쪽의 두 간은 앞으로 경사면을 이룬 동쪽 산의 믿믿한 기슭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쪽의 두간은 앞으로 3층으로 된 기단 위에 서 있다. 건물은 중앙의 대문간을 사이에 두고 좌우의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기단은 중간의 계단길을 사이에 두고 비대칭을 이루는 것이다. 이 비대칭은 영모루 건물만을 위에 두고 있었다면 불균형함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영모루 서쪽으로 영모루와는 다른 구조의 헛간건물이 달라붙어 있는 비대칭 구조와 화음을 이루어 불균형하다는 느낌을 증발시켜 버린다. 이 대칭과 비대칭의 어울림은 대칭 구조가 갖게 마련인 단조로움의 미학을 벗어나는 기제로서 작용함과 동시에 비대칭 구조가 갖게 마련인 난삽함의 미학을 극복하게 하는 요소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 비대칭의 요소는 대문간 양쪽의 벽면에도 있다. 대문간 동쪽의 2간 벽면은 횡으로 크기가 다른 세 면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대문간 서쪽의 2간 벽면은 횡으로 거의 같은 크기의 두 면으로 분할되어 있다. 대문간 동쪽의 벽면은 종으로 판재들이 빈틈없이 막고 서 있지만, 대문간 서쪽의 판재 벽면은 중간 부위에서 아래쪽으로 칸마다 하나씩 살창이 가설되어 있다. 창살이 위아래 방향으로 박힌 살창이다. 그것은 통풍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영모루는 2단의 석가래 위에 지붕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쪽에는 원형의 석가래를 두르고, 그 위에는 각형의 석가래를 얹었다. 지붕과 기둥 사이는 아래와 흡사하지만 조금더 견고함과 미학적 요소가 가미된 목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기둥 사이를 이어주는 각재 횡보는 지붕의 가장 아랫면을 형성한다. 이 횡보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틈을 두고 다시 아래에 횡보가 가설되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30센치 정도의 공간이며, 그 아래에는 각 간마다 나무판 문이 달려 있다. 밖에서 보았을 때 영모루의 외벽은 거의 90퍼센트 정도가 목재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상인 것이다.
안에서 보았을 때 영모루의 1층은 고방영역이고, 2층은 누각영역이다. 영모루의 1층은 안마당보다 낮다. 안마당은 1층의 4분의 3정도 높이를 갖고 있고, 계단을 통해 영모루 1층 영역과 연결된다.
영모루 1층 영역은 좌우가 서로 다르다. 동쪽 방향으로는 정면 2간 측면 1간 정도 크기의 고방이 마련되어 있다. 고방은 바깥마당 쪽으로 붙어 있으며, 안마당 쪽으로는 그냥 원형의 기둥이 받치고 선 허당이 있을 뿐이다. 허당 부분도 서편 벽은 판재로 막혀 있다. 중앙은 대문영역으로 비어 있고, 서쪽으로는 대문과 가까이에 정면 1간 측면 1간의 작은 고방 하나, 대문과 먼 쪽에 정면1간 측면 2간 정도의 큰 고방 하나가 붙어 있다. 1층 허당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에는 아래쪽을 잘라서 갈아 끼운 모습도 보인다. 이 허당 부분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2층 누각의 바닥면을 이루고 있는 판재가 판재라고 하기에는 적절치 않고 오히려 각재라고 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두툼한 각재를 위는 대패로 밀고 아래는 자귀로 찍어내 평평하게 다듬어 쓴 것이다. 그렇게 두툼한 각재이므로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리라.
대문간의 동쪽 고방 벽에는 자잘한 붓글씨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석순 6두, 철준 4두 등의 글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담미를 낸 내용을 적어 둔 것인 모양이다.
영모루의 2층 누대는 안마당의 한 층 높은 서편 방향에서 돌계단을 두고 오르게 되어 있다. 영모루 위층의 동북쪽 모서리 부분에서 누각의 바닥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누각의 바닥은 안마당 쪽으로 석가래 하나 길이는 내밀어져 있다. 기둥 밖으로 바닥면이 나가 잇는 것이다. 누각은 위쪽으로 일정한 공간을 두고 3면이 판자벽과 판자문으로 다 막혀 있다. 안마당 쪽 한 부분만 터져 있는 것이다. 그 안마당 쪽으로는 누각으로 오르는 부분만을 제외하고 각재 난간이 둘러져 있다.
누각 중앙의 남쪽 벽에는 처마 아래로 ‘영모루’永慕樓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동쪽으로는 칸마다 <족중입의>族中立議, <천등산기>天燈山記, <금계묘산수호입약>金溪墓山守護立約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금계묘산수호입약>에서는 다음의 두 개 조항이 눈에 띈다.
“1. 옛사람은 사당 향사를 중히 여겼으며 묘에서 지내는 제례는 아주 간소하였다. <<가례>>는 단지 3월 상순에 택일하여 묘제를 행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4계절 다 묘제를 지내니 비록 예의 바른 모습이라 할 수는 없을지라도 후하게 예를 올리는 속례를 취한 것이라 하겠다. 군자가 예를 행할 때에는 변례나 속례를 구할 것이 아니지만, 선조들이 행하였던 예법이니 지켜 행하여야 마땅할 일이지 가볍게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조 이상은 세대가 이미 멀어져서 소략하게 행하거나 번거롭게 행하는 차이가 없을 수 없다. 지금 한 산에 있는 묘소를 가지고 정하여 보자면, 매년 한식과 추석에 제를 올리는 것으로 하고, 제물의 가지 수 역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편히 마련할 수 있는 바를 따라서 오래 할 수 있게 할 일이다. 만약 다른 산에 있는 묘소의 경우라면 종족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쫒아 매년 가을에 족인들이 나누어 제향하는 것을 영원한 법식으로 삼을 일이다.
1. 이 산에는 태사 권공이 가장 앞서 묻히셨고, 그 후 6백년이 지나서 평창군사 권공이 다시 찾았으며, 그 아래에 같이 묻어 달라는 유명을 남기셨다. 우리 고조이신 호군 부군께서는 평창공의 사위이므로 이로부터 유씨가 묻히는 산이 되었다. 지금 나의 부친이신 영의정 부군과 모친이신 정경부인의 묘도 같이 한 산 기슭에 있어서 4계절 향사를 지내니, 제례는 하나는 행하고 하나는 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므로, 매양 제사 때마다 반드시 먼저 태사묘에 주과를 올리고, 다음으로 평창군 부부의 묘에 제물을 올리며, 그 다음에 여러 묘에 제향하여야 하니, 예법에는 본래 이런 사례가 없을 지라도 의리로서 마땅히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금후 자손들은 모두 기왕의 사례에 의거하여 경건히 실행하여 임의로 보태거나 빼지 말 일이다.”
<천등산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주목된다.
“고려 때 태사공 행幸은 산 속에 묻혀 6-7백년이 흘렀다. 자손들이 아주 번성하였으나 이어서 묻힌 사람은 없고 산도 황폐하여져서 묘역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성화 년간에 태사의 18대손인 평창군사 옹雍이 충주로부터 와서 안동사람인 이조정랑 배소裵素의 여식을 취해 풍산현 하회촌에 거주할 때, 하루는 <<여지승람>>을 보고 시조 태사의 묘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으나 비갈이 없고 세월의 흐름으로 묘역이 희미해져 표식을 찾을 수 없었다. 술사와 같이 산기슭을 빠짐없이 뒤져 지석誌石을 찾아서 흙을 모아 봉분을 만들었으나 비석은 세우지 못하고 타계하면서 그 아래 묻어주기를 유언하였다. 부인 배씨가 먼저 타계하니 공의 생존시에 이미 태사의 발치 몇 발짝 아래 매장을 하였고, 공의 묘는 그 뒤에 모셨다. 평창의 아들인 유裕, 작綽이 옛 삶터로 돌아감에 평창의 사위인 호군이며 사복시 정을 증직으로 받은 유소柳沼 부부가 앞쪽 산록에 합장되었다. 이때부터 유씨들이 대대로 산을 지켜 왔다. 호군의 아들 자온子溫은 참의를 증직으로 받은 선조이신데, 먼저 하회의 화산에 묻혔다가 물의 화를 받을 것이 두려워 다시 이 산 속 북쪽 기슭, 태사묘로부터 4백보 떨어진 곳에 이장하였다. 후에 부인이 죽어 그 산록에 같이 묻고자 하였을 때, 태사의 먼 후손인 권균權均이 정승으로 있었는데, 아첨배들이 ‘태사묘의 계단석을 가져다 쓰려 한다’는 말로 이간질을 하였으므로, 균이 크게 노하여 안동부에 글을 보내 매장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할아버지이신 참판공이 서울에 이르러 상복을 입은 채 정승을 지키기 한달, 매양 정승이 출입할 때마다 길 죄측에 엎드려 호소하니, 정승이 불러 물어 봄에, 조부께서는 자손과 지파가 대대로 장지로 삼아온 내력과 산세의 멀고 가까움을 세세히 아뢰니, 균이 비로소 이해하고 금한 것을 풀어서 묘역을 같이 쓰게 되었다. 이는 조부님의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 자손들이 계속 이 산을 지켜 나가야 하는 이유를 이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족중입의>는 7조로 이루어져 있다. 족원들의 의무와 책임을 주로 적은 것이다.
“1. 제일은 8월 20일로 정하나 유고가 있을 때엔 유사가 미리 통지하여 당기고 미룰 수 있다. 그러나 9월 망일을 넘지는 않아야 한다.(나중에 10월 상순으로 바꾸었다.)
1. 묘소에 수, 화, 투장의 변고가 있을 때에는 유사는 즉시 통지하고, 사람을 모아 올라가 살피고 고쳐야 한다.
1. 제원은 한번 참례 않을 때는 쌀 한 말, 두 번 참례 않을 때에는 쌀 두 말, 세 번 참례 않을 때에는 노비에게 태장, 네 번 참예 않을 때에는 손도損徒, 다섯 번 참례 않을 때에는 제적의 벌을 받는다. 질병이 있을 때 단자를 올려 알리고 주과와 벌초하는 노비를 갖추어 보냈을 때에는 의논을 거쳐 벌을 감한다. 벌에는 각각 그 유사가 봉납을 감독하고 능동재사에 저장하며, 제원들이 써야 할 일이 생겼을 때에는 용도에 따라 지급한다. 제미를 납부하지 않은 사람 역시 참례 않은 사람과 같은 정도로 벌을 부과한다. 유사로써 일을 제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노비에게 태장을 가한다.
1. 각 묘의 제원 중에 가까이 살아서 옮겨가지 않은 사람으로 유사를 정하고 1년마다 바꾼다.
1. 하회에 일이 생겼을 때에는 능동제사에 모여 음복한다.
1. 외손으로 의리를 좋아하고 효성이 깊어 진실로 배알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임에 참여토록 허락한다.
1. 유사가 1년마다 바뀔 때에는 반드시 얼굴을 대면하고 교대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바꾸지 않는다. 제사의 유사도 같다. 벌미를 다 받지 못한 유사는 다 받을 때까지 기다려 바꾼다. (도유사都有司는 안동 1인, 예안 1인, 제유사祭有司는 포본浦本 1인, 자을패子乙佩 2인, 마가매馬駕邁 1인, 막동幕洞 1인, 능동 1인.)
각 산에 모여서 묘사 올리는 묘소 : (죽전동의 시조 은사급제묘恩賜及第墓는 의논 시에 찾지 못하였으므로 여기 열거하지 않는다.)
예천 포본산 판도판서 조부모 묘
자을패산 공조전서 조부 묘
마가매산 전서 조모 묘
막동산 사정 조부 묘
자을패산 사정 조모 묘
능동산 사복정 조부모 묘
위에 기록한 의론들은 선조 겸암 선생이 찬하여 정한 것으로 산내山內 수호의 절목과 봉향의 법식을 갖추지 않은 바가 없다. 상세히 적어 자손들이 한 마음으로 지켜 영원히 준수하게 함이니, 오랜 훗날 혹 태만하여 망실하는 걱정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이에 문집을 편찬할 때 중종의 의논을 거쳐 판각하여 내거니 우리 후인들은 이 뜻을 알아서 출입할 때마다 살펴 보아서 부끄러운 생각을 키울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겠다.”
영모루는 서쪽으로 정면 6간 측면 1간 규모의 2층 구조 헛간 건물과 일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헛간 건물은 안마당 쪽으로만 열려 있고 다른 3면은 판재와 나무판 문으로 빈틈없이 막혀 있는 것이다. 아래층은 허당이고, 위층은 안마당 쪽이 난간으로 처리되어 있는 마루방이다. 헛간채 2층의 마루와 영모루 2층 마루는 나무판 경사길로 연결되어 있다. 헛간 건물은 영모루 건물보다 춤이 조금 낮다. 그러므로 영모루 마루판의 높이보다 헛간 마루판의 높이는 좀 낮아서, 그 사이의 두 건물 나무판 벽 사이에 문을 내고 서쪽을 향하여 기울어져 내려가는 나무판 길을 낸 것이다.
영모루와 서쪽 헛간채는 독립된 두 건물이다. 두 건물 사이는 반칸 정도 넓이로 떨어져 있는데, 남쪽 틈을 판자벽으로 위아래 다 막아 놓아서, 바깥마당 쪽에서 본다면 두 건물이 일선으로 이어져 마치 하나처럼 보인다.
숭실재사 건물
숭실재사의 안마당은 동서로 길게 열려있다. 동쪽에는 헛간채 건물과 남북 방향으로 지어져 있는 정면 4간 측면 1간의 건물이 막아서 있다. 이 건물의 남쪽 1간은 방인데 헛간채 2층 마루방 과 잇닿아 있다. 그 위쪽으로는 2간 규모의 창고가 있고, 그 위로는 1간 규모의 측문 영역이다.
안마당의 동쪽 영역은 바닥면을 조금 올려 정면 3간 측면 1간의 건물을 앉혔다. 이 건물은 남쪽 2간은 방이고, 북쪽 1간은 안마당 쪽으로 터져 있는 마루방이다.
숭실재사의 본 건물은 영역의 북쪽에 동서 방향으로 뻗어있다. 안마당과 재사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바닥면의 높이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높이의 차이는 7단의 석축을 높이 싸올려 처리하였다.
7단의 석축은 자연석을 조금 다듬어 사용하였다. 상당히 큰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어른 키를 훌쩍 뛰어 넘는다.
재사는 서로 일선으로 연결된 두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의 정면 4간 측면 1간 건물은 나중에 달아낸 것이다. 이 건물은 재사 본 건물과 서쪽 건물을 90도로 연결지어 준다. 이 건물의 서쪽 끝은 1간의 방이다. 서쪽 건물의 측문 영역 북쪽으로는 이 방을 덮여주는 아궁이가 붙어 있다. 이 건물의 동쪽 두 간은 작은 방이다. 방 앞에는 좁직한 쪽마루가 가설되어 있다. 동쪽 두 간 방과 서쪽 1간 방 사이는 1간 규모의 마루방이다. 재사의 본 건물은 이 건물의 동쪽으로 붙어 있다.
재사의 본 건물은 정면 6간 측면 1간반의 규모이다. 본건물의 서쪽 2간은 부엌이다. 부엌영역은 서쪽 1간에 두 쪽의 나무판 문이 달려 있고, 나머지 1간은 바닥 쪽은 흙벽으로, 얼굴 높이에는 60여센티 높이의 나무살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 문 위쪽은 허당으로 비어 있고, 살창 위도 허당으로 비어져있다. 살창은 종으로 설치되어 있고, 살창 위의 빈벽은 나무문의 빈 벽 보다 훨씬 아래쪽까지 내려와 있다.
살창 사이를 통해서는 안쪽 부엌이 들여다 보인다. 살창 위쪽 횡목 위로 넘겨다 보이는 부엌 안 지붕의 아래쪽 목구조는 서로 중첩되어 상당히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 부엌의 동편 벽에는 솥이 걸린 부뚜막이 자리잡고 있다. 부엌 안은 상당히 넓은 흙바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엌의 동편 뒤 쪽은 동쪽 건물의 뒤편으로 열려 있다. 동쪽 건물은 정면 4간 측면 1간 반의 규모인데, 측면 1간 반의 반간이 뒤쪽으로 열려 통으로 뒷마루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쪽 방은 정면 4간 측면 1간 규모인 셈이다. 이 방들은 간마다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의 앞쪽으로는 반간이 약간 안 되는 넓이의 툇마루가 덧붙여졌고, 툇마루의 앞 쪽은 난간으로 막아 세웠다. 툇마루 영역은 부엌 쪽 4단의 계단을 두어 오를 수 있게 하였다.
부엌문 앞의 높은 석단 사이에는 넓은 계단이 마련되어 안마당과 재사 건물을 이어주는 정식의 통로 역할을 담당한다.
유중영의 묘소
숭실재사는 유중영의 묘소를 수호하고 묘사를 올리기 위해 지은 집이다. 유중영의 묘소는 권태사 묘소 아래쪽에 위치한다.
안동권씨 능동재사로부터 풍산유씨 숭실재사 쪽을 향해 가다보면 바로 동쪽의 산으로 오르는 좁직한 흙길이 열리고, 그 입구에 권태사 묘소 방향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흙길은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며 구불구불 돌아서 권태사 묘역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간다. 권태사 묘역은 바로 유중역의 묘역이기도 하다.
묘역은 세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일 위쪽은 권태사 묘역이다. 가운데는 평창군사 권옹 부부의 묘역이다. 제일 아래쪽은 입암 유중영 부부의 묘역이다. 이 세 묘역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똑같이 남쪽을 향해 시야가 열려 있다.
유중영은 1515년에서 1573년 사이를 산 사람이다.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며, 부친은 간성군수 유공작柳公綽이고, 유운룡, 유성룡 형제를 아들로 두었다. 그는 1540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황해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예조참의에 이르렀다. 유중영의 묘소 앞에 선 비석의 앞면에는 우측에 정경부인 김씨지(之)묘라는 명문이 좌측에는 통정대부 수(守) 황해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증(贈) 순충보조공신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영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풍산부원군 유공지(之)묘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위쪽에는 앞뒤로 구름 사이에 뒤엉킨 용이 부조되어 있다. 비석 아래쪽 좌우로 벌려 서 있는 문인석은 살지고 풍부한 몸체를 하고 있다. 돌이끼를 잔뜩 품고 있는 이 문인석의 모습은 상당한 매력을 발산한다.
유중영의 묘 아래쪽에서 산기슭은 갑자기 아래로 주저앉는다. 그 아래에는 길과 묘소의 중간 쯤 되는 지점에 유중영의 신도비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