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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회 경영혁신실장 배근석씨(글/천남희-과천사는 안동사람, 사진/박영대-동아일보기자)

이번에는 과천에 있는 한국마사회 경영혁신실장 배근석(52세)씨를 만나기로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지척에 있으면서도 인연이 닿지 않다가 어렵게 만나게 되었다.
과천에 살면서도 경마공원을 가본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십여 년 전에 과천으로 이사 온 뒤 서울대공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랜드 등 내 고장을 답사하는 차원에서 한차례 순례할 때 가보고, 지난 월드컵 때 대형스크린으로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경마공원에 간 것이 전부다. 나에게는 아주 가깝고도 먼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경마공원이 갖는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주말에는 바늘하나 꽂을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빽빽해서 감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평일에는 그 넓은 벌판에 사람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썰렁하다.
사실 자세히 알고 보면 경마공원도 많이 변해서 요즘은 서울이나 근교 유치원의 가장 좋은 소풍장소이기도 하고 무료승마교실도 있고 마사박물관도 있어 늘 사람들이 붐비고 친근한 곳이 되었지만 경마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극과극의 선입견이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26년을 한결같이, 마사회 터줏대감
한국마사회(KRA)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들이 모여 있는 경영혁신실. 그 책임자로 있는 배근석씨는 1979년 27살에 마사회에 입사해서 경리팀장, 감사팀장, 영등포지점장등을 지냈고, 직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인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현재 회장 직속기관인 경영혁신실장에 이르기까지 26년여를 마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경영혁신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하는 일은 조직을 바꾸어서 경영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세우고 직원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등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이다. 이 일은 업무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대인관계도 좋아야 하고 여러 면에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직책이다.
경마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본관 건물 3층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잠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의 사무실은 자리에 앉아 고개만 들면 널찍한 유리창을 통해서 경마장이 바로 보이는 위치라 오로지 일만 생각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마사회는 현재 과천, 제주, 부산경남 세 곳의 경마공원을 운영하고 전국에 32개의 지점을 개설하고 있으며 주말 하루 이루어지는 배팅금액은 많을 때는 100억 정도이고 인원은 10만 명에 이른다. 직책이 높을수록 책임도 커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책임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마사회와 시작해서 오늘까지 마사회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고졸사원에서 최연소승진 그리고 경영혁신실장
군대를 제대하고 마사회에 입사할 당시 포항제철에도 합격했다. 두 회사를 놓고 고민하다가 서울에서 가깝고 또 고졸사원으로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마사회가 더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해 마사회를 선택했다. 당시에는 고졸사원이 30% 정도 되었다. 5급으로 입사해서 3급이 될 때는 승진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전체에서 5등을 했고 최연소 3급(과장에 해당)승진이라는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계를 느껴 더 공부하기 위해 방송통신대 행정학과에 진학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고 공인중개사,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 현재의 위치에까지 이르렀는데 그 성실과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 고향 석동 마당엔 아직도 풀이 자라고
배근석 실장의 고향은 안동군 월곡면 석동이다. 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임하면 석동이 되었다가 현재는 안동시 석동이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송천동 안동대학교 뒷산 너머 안동댐가 어디쯤으로 생각된다. 아직도 그곳에 어릴 때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 해마다 추석 때 내려가서 하루 지내는데 마당엔 온통 풀이고 마루에도 풀이 자라나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고향에 정겨운 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송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막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내가 다닌 길원여고를 잘 알고있었다. 몹시 반가운 마음이었다. 경안중학교를 졸업했고 안동상고(현재 중앙고)를 나왔다. 당시에는 경안중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대부분이 경안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그것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노력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안동상고로 진학했다. 입학생 중에서 경안중학교 졸업생은 혼자였단다.

젊음 하나로 즐거웠고 행복했던 기억들
안동을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와 재수할 때의 기억이 제일 많이 난다고 한다. 2학년 때 친구들과 청량산으로 캠핑을 가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새롭고, 고3 여름 방학에는 시험공부한다고 짐을 싸들고 친구와 넷이서 안막동 고개 너머에 있는 절에도 들어갔다. 절에 뱀이 들어오면 쫒아낼 때 쓴다고 핑계대고 새마을 담배도 가지고 갔었는데 공부하러 와서 담배를 피울 수 있겠냐고 다 버렸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꽁초라도 주워서 피우려고 했던 기억도 있다.
또 재수할 때는 친구들과 청송 달기약수탕으로 놀러갔다가 돈이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가 청송에서 교사로 있는 친구 아버지에게 돈 500원을 얻어서 국수를 사먹으며 연명하기도 하고, 도로공사 현장에서 삼일 동안 일을 해서 차비를 마련해 집으로 오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다가 군대를 갔고 제대해서는 서울서 공부하다가 취직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고등학교 이후로는 안동을 떠나있었다.
서울 생활이 중해서 안동에는 명절이외에는 거의 가보지 못했는데 중앙고속도로가 생긴 덕분에 요즘은 종종 안동엘 내려간다. 안동시내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서 오래된 건물이나 큰 건물이 아니면 찾아다니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오랜 친구들, ‘영호루’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73 안우회’라고 73년도에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의 모임이 있는데 몇몇 친구들이 아직 안동에 있어서 그 친구들의 대소사에도 참석하고 같은 회원인 도의원 김선종씨와는 친분이 두터워 안동에 내려갈 때마다 술도 한잔씩 하며 회포를 푼다고 한다.
서울에서 만나는 안동지역 모임도 하나 꾸려가고 있는데 강남, 사당, 과천, 의왕지역 안동출신들이 모인 ‘영호루’다.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모여서 안동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 위로를 삼고 도움도 주고받고 있다.
마사회는 주말에 경주가 있는 관계로 휴일이 월,화요일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휴일이 서로 달라 많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좋다. 딸 둘은 다 커서 외국으로 유학 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차 막힐 걱정이 없으니 전국 어디나 가볼 수 있다.

철저한 자기관리, 그래서 ‘마건달’
등산과 마라톤을 특히 좋아하는데 전국의 산은 거의 다 가보았고 ‘마건달(마사회 건강마라톤 달리기 대회)’회장도 맡고 있다. 사무실 벽에는 ‘제1회 생명사랑 마라톤 대회’ ‘2003 오마이뉴스 마라톤 대회’ 등 그동안 참여했던 마라톤 대회 기록증명서들이 여러 장 붙어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것은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동질감보다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건강한 삶을 통해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모습에서 오는 든든함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한번 오라고 초대해 주었다. 올 봄 벚꽃이 필 때 쯤 경마공원으로 소풍 와서 좀 더 따뜻하고 여유 있는 시선으로 경마공원을 한 번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언덕을 내려왔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