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상덕사, 여성참배 허용하다(글/이해영)십 수년전 몇몇 지인들과 퇴계선생의 위패를 모신 도산서원 상덕사를 참배할 기회가 있었다. 서원 측에서는 유생들의 복장인 청금을 입고 참배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 요청에 같이 있던 몇 사람들 사이에는 첫째 감격에 겨워 청금을 입고 상사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는 반응, 둘째 청금도 입지 않고 참배도 하지 않겠다는 반응, 셋째 참배는 하되 청금은 입고 싶지 않다는 3가지 반응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참배에 참여한 사람은 상덕사 참배가 선현을 존경하고 우리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뜻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지닌 듯 하였다. 참배를 거부한 사람은 상덕사 참배는 봉건적인 유습을 따르는 것으로 이는 사회의 진보 방향에 위배된다고 생각한 듯하였다. 참배는 하되 청금은 입지 않겠다는 반응은 선현에 대한 존경은 표하되 청금을 입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리라.
이렇게 굳이 한참 지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며칠 전 퇴계선생 제자들의 후손 모임인 도운회에서 앞으로 상덕사 참배를 여성들에게도 허용한다고 뜻을 모았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 일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참배를 하려해도 여성들에게는 도산서원측에서 전통을 내세워 기본적으로 참배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유교는 봉건적이며 여성 차별의 원천이다'라고 여긴다. 유교는 분명 봉건사회의 이념으로 기능했었기 때문에 필자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생각이 전부 그르다고 보지는 않는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 속에서 살았던 것은 사실이고 뿌리 깊은 남아 선호도 유교적 영향이다. 최근까지 상덕사 참배를 남자들에게만 허용해 온 것도 조선시대 이래의 전통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현대는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크게 상승되었고 남아 선호 자체도 이미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그러므로 때늦은 감은 있지만 여성들에게도 상덕사 참배를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죽어가던 고목나무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난 것과 같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유교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을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삶과 유리된 유교는 생명을 잃고 박물관의 전시실에 모셔진 박제된 유교이다. 박제된 유교는 한 순간의 구경거리는 될지언정 삶 속에 살아왔던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안동은 우리나라 유교의 본산이다. 이 곳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굳게 닫아두었던 가슴을 열기로 한 것은 유교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 선구적 결정의 영향은 앞으로 전국적으로 퍼져 아주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안동에는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느 순간에 깜짝 놀랄 만큼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말 일제 초 유림들의 개화 독립운동도, 카톨릭의 농민운동도 모두 그랬다. 어쨌든 상덕사 여성참배 허용 소식으로 안동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