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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글/권태경)

<첫 번째 이야기>
영양도 가니껴!

초겨울의 스산한 날씨였다. 그날도 조용한 반나절이 지나고 있었다. 거리에 흩날리는 낙엽만큼이나 빈 차로 생각 없는 질주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땐 생각을 한번 바꿔본다. 안동에서 제일 큰 안동병원에서 대기를 해보자, 운 좋으면 퇴원환자 중에는 장거리 손님도 있을 테니 연료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런데 아무래도 순번대로 출발하자니 기다림의 인내도 필요하다.
30분정도 기다린 끝에 웬 할머니께서 나오신다. 양손 가득 든 보따리로 보아 퇴원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 어서 오세요.”
“영양도 가니껴.”
“그럼요.”
“얼마에 가니껴.”
“미터기대로 주시면 되니더. 할머니 영양 어디쯤요”
“어, 재 넘어 바로....”
그러더니 할머니는 바로 ‘기사양반! 3만원 있는데 그리 해주면 타고 안 되면 내사 버스 타고 갈란다’ 하신다. 퇴원길이기도 하고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타시라고 했다.
시내를 벗어날 때쯤, 날씨로 시작된 이야기는 할머니의 가족사로 이어졌다. 내가 ‘할배는 집에 계시냐’고 묻자, ‘영감은 먼저 가부랬다’ 하신다.
“세상 버린 지 한 20년 되었지.....”
먼저 가신 영감님에 대한 야속함과 아쉬움이 배어난다.
홀로 밭농사 지어 육남매를 모두 출가시켰다. 많이 배운 자식은 공부한답시고 외국에 있는데 그나마도 몇 년 만에 오면 얼굴만 잠시 보이고 만다. 덜 배운 자식은 어머니 곁에서 농사만 짓는데, 풍년농사 지으면 가격이 하락되고 흉년농사 지으면 없어서 못 판단다. 그래저래 세월만 흘러 불혹의 나이에 연변색시 만나 장가를 들어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 한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희망 없는 농사를 견디지 못하고 집 나간 막내며느리는 3년째 소식이 없단다.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세월 지난 지금은 측은하다고 하니 괄괄해 보인 듯한 할머니도 그 속내는 참으로 부드러우신 분 같았다.
어느 덧 영양에 도착했다. ‘할매요 어디요.’ 하니 ‘어, 재 넘어’ 하신다. 한참을 가다가 ‘할매요, 어디요’하니 또 ‘어, 재 넘어’하신다.
30분이나 더 가서 도착한 곳은 동네에서 제일 외딴 곳에 있는 대문도 없는 집이었다. 밤이라 적막하기 그지없고 마음도 어쩐지 짠했다. 돌아서려는데 여기까지 수고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차 한 잔 대접한다고 막무가내로 나를 앉히신다.
물을 끓여야 하는데 마당 한가운데 있는 수도가 얼어서 마실 물이 없다며 한 걱정 하신다. 그냥 보고 있자니 젊은 내가 도리가 아니다 싶어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마을로 내려와 동장댁을 찾아 사정을 말하고 헤어드라이기를 빌려왔다. 20분정도 가열하니 수도가 녹았다.
할머니께서 ‘희한하다. 그걸로, 그게 되노!’하시며 저녁 준비를 하셨다. 된장 끓이고 김장김치에 곤짠지까지 할머니의 정성과 늦은 저녁의 시장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저녁만찬이 끝나자 할머니는 다락방에서 이 봉지 저 봉지 뒤져서 썰어 말린 곶감을 한 보따리 챙겨주신다. 사양도 해보았지만 정성이라며 차 안에 훌렁 넣어주셨다.
하룻저녁 인연으로 할머니네 수도를 녹였으니 그나마 덜 고생시켜드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어둑하니 외진 길을 나오는 내 뒤로 홀로 서 있는 할머니 모습이 백미러에 담긴다. 오롯이 서 있는 그 모습이 마치 풍경 같다.
소요된 시간, 받은 택시비보다 더 값진 정성과 인정을 담아 올 수 있었던 재 넘어 돌아오는 길.....산 위에 휘영청 보름달이 그날따라 더욱 밝아 보였다.

<두 번째 이야기>
할배한테는 쉿!

언제나 그렇듯 평일 낮에는 조용하다. 시내를 서너 번 돌아도 2천원 손님 한 번뿐, 그래서 저녁을 일찍 먹고 세수도 하고 저녁장사에 승부를 건다.
잠시 휴식과 독서 겸 옥동 이마트 승강장에 대기 중이었다. 순번은 첫 번째. 잠시 후 할아버지와 새댁 손님이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께서 대뜸 ‘청송 얼마로!’ 하신다. 나는 ‘할아버지 요즘은 다들 미터기로 해요.’하니 그런 소릴랑 본래 하지 말라며 차문을 쾅 닫으신다. 당신은 3만원으로 알고 있으니 그 가격에 가자신다. (미터기로는 4만원정도가 나오는 거리였다.)
내가 곤란해 하니 옆에 새댁이 할아버지께 ‘고마 타고 가시더’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역정을 내신다.
그때 대기 중에 있던 동료 기사들이 거든다. 오늘 장사도 안 되는데 3만원에라도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할배요 그마 그래 하시더’하니 ‘거봐라, 진즉에 가지 에그!’하신다.
출발해서 강변을 벗어날 때쯤 이었다.
“기사 양반, 담배 한대 피아라-”
“저는 못 피는데요.”
“그라마, 내사 피울란다”
“할배요, 차 안에서는 금연인대요”
“기사는 아까부터 안 되는 게 왜 그래 많노.”
옆에서 새댁이 말려도 계속 피우신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민요음악을 틀었다. 역시 옛날 노래가 좋다고 흥에 겨워 따라 부르시더니 내게 묻는다.
“요새 택시는 장사가 좀 되는 갑지.”
“잘 안됩니다.”
“그마 청송 여는 금방 가는데, 가자카만 다믄 2만원이라도 얼씨구나 가야지 말야, 앞으로는 반값이라도 가라카이!”
나는 졸지에 세상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할아버지한테 충고 한마디 듣는다.
야간이라 조금 늦게 청송에 도착했다. 성미 급한 할아버지는 얼른 내리며 트렁크에 짐부터 챙기신다. 뒤에 내린 새댁은 ‘할배요, 물건 단디 챙기소’하며 내게 요금 계산을 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고생 하셨는데 여기 4만원 받으세요. 할배한테는 쉿!”
차 문을 얼른 닫은 새댁이 ‘할배요, 3만원 맞지요’하고 능청을 떤다. 할아버지는 ‘아까 뭐 들었노’하시며 ‘기사 양반 잘 가시데이’ 하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새댁, 끝까지 당당하신 우리네 할배. 청송에서 안동까지 돌아오는 밤길은 기분 좋은 길이었다.<안동>

글쓴이 권태경씨는 8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