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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영화사랑 동호회(글/백소애 - 편집기자)

영화 ‘아이다호(원제:My Own Private Idaho)’에서 주인공 리버 피닉스는 길 위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길의 감식가다.” 그러나 길 위에서 그는 가방을 도둑맞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할 운명에 처한다. 끝없는 길 위에서 어딘가에 끝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 영화는 마치 우리의 삶을 캡쳐 해놓은 것만 같다. 그런 영화를 유독 사랑해서 모인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영화를 감식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막창 집 습격사건
안동의 젊은 영화광들의 모임인 ‘안동 영화사랑’ 회원들의 모임이 막창 집에서 있었다. 오늘 모임은 예정에 없었던 일명 번개모임이다. 춘천으로 발령이 나서 미처 송별회도 하지 못하고 떠났던 닉네임 ‘왕의 천사’ 류재익(28세) 씨가 잠시 안동에 온 것이 계기가 되어 회원들과 번개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송년회도 알차게 했다는 회원들이 한 명의 회원으로 인해 10여명이나 모이다니, 폴폴 날리는 막창 연기만큼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더군다나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기자에게 자꾸만 술 권하는 그들 덕에 뜻하지 않은 음주취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회원들 연령대는 10대부터 40대까지이나 대부분 활동하는 연령은 2,30대이다. 굳이 나이에 따른 제한이 없는데도 자연스레 영화를 제일 많이 보는 세대들이 모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젊음을 무기로 금세 친해지게 된 이들답게 이날은 가입한지 한달밖에 안된 새내기 박연남(25) 씨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고 있었다. 뒤늦게 합류한 이소룡 매니아인 닉네임 ‘브루스7’ 팽태성(33세)씨는 청송에서 왔다고 한다. 퇴근 후 부랴부랴 왔다며 모두 고향친구들처럼 편해서 은근히 모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2003년에만 해도 회원이 달랑 2명이었어요. 그때 카페를 이끌어 나가던 분이 회원이 7명이 되면 그때부터 활동하자고 했었거든요...그런데 지금은 100여명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현재 카페(http://cafe.daum.net/andnogmoive)의 주인장인 이귀하(29세) 씨의 말이다. 회원들이랑 만나서 처음 본 영화가 무엇인지 기억하냐는 질문에, ‘S다이어리’를 보았다고 한다.
“그땐 참 쑥스러웠어요. 몇 명 안 되는 사람이 모여서 영화보자니. 그런데 영화 끝난 후 술자리 한번 가지고 그냥 친구 먹기로 했어요.”

이귀하 씨는 대전에 살다가 안동으로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내다가 안동영화사랑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창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운영자로, 주인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개봉되는 영화는 대부분 관람한다는 그녀는 특히나 판타지 영화를 좋아한다. 카페에 꾸준히 영화리뷰를 올리기도 하는데 전문적인 비평이 아니고 그냥 감상문 정도로 생각하고 편하게 올린다고 한다.
운영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영화 평이나 토론을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직은 미흡하다는 점이란다. 영화를 보는 과정을 좋아하는 만큼, 보고난 후에도 영화에 관한 깊은 얘기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한 때는 영화를 보고 커피숍에 앉아 토론을 한 적도 있었다. 류재익 씨가 자신이 처음 모임에 나왔을 때라고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 영화보고 나서 커피숍으로 가더라니깐요. 그리고는 영화를 본 감상을 서로 얘기하는데....전 솔직히 적응 안됐거든요.”
커피숍에서 술자리로 옮겨간 후에야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었다는데, 누가 안동사람 아니랄까봐 영화이야기도 멍석 깔고 시작하자니 쑥스러웠나보다. 간혹 비디오나 DVD로 바로 출시되는 작품들은 회원 중 위대권 씨의 집에서 홈씨어터로 감상할 때도 있다고 한다.

친목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직선적으로 질문을 해본다. ‘이쯤 되면 너무 소비적이고 가벼운 모임이 될 우려가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하기가 무섭게 이귀하 씨가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
“어쩌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름의 규칙과 예의가 있습니다. 요즘 영화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영화관련 동호회를 만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영화로 만났지만 온?오프라인 상의 예의는 꼭 지키고 있습니다”
하긴 사뭇 심각한 것만으로 매니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전문 리뷰어 처럼 리뷰를 쓰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 그 자체로 편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 바로 그런 모임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단다.
한달에 한번은 정기모임을 갖고 영화가 개봉되는 목요일이면 번개모임도 갖는다고 한다. 정기모임 날짜도 따로 정해져있지는 않다. 그달에 생일을 맞은 회원이 있으면 축하 겸 모인다고 하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토끼처럼 달려가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이들과의 만남은 내내 시끌벅적했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원제:Before Sunrise)에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사람처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이들의 영화이야기, 사는 이야기는, 북적거림 속에서 계속 됐다.
막창 집 아주머니가 4인분 같은 3인분의 막창을 추가로 놓고 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최근 본 영화 중 추천해줄만한 영화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왕의 남자>를 말한다. 그러자 닉네임 ‘왕의 천사’류재익 씨가 딴지를 건다.
“제가 보기엔 관객 1000만이 들 정도 수준의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류재익 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회원들 모두가 영화 수준과 관객 수 돌파는 최근 조폭코미디물이 강세인 것을 감안했을 때, 별다른 상관도 없을뿐더러 <왕의 남자>는 그런 수준을 훨씬 상회함을 외쳤다. 본전도 못 뽑은 류재익 씨가 본인의 닉네임이 괜히 ‘왕의 천사’겠냐며 억울한 표정으로 수그리고 들어갔다.
영화는 공연이나 전시 등 다른 문화보다는 지역에서 그나마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이고 차별성이 적은 매체이다. 지역 차별성이 느껴지거나 영화관람 시 불편한 점을 물어보았다. 개봉날짜를 기다리던 영화가 지방에는 개봉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각 통신사별 할인카드도 모두 적용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안동에서 제일 큰 P영화관에서조차 조조할인이 되지 않는 점은 더욱 더 아쉽다고 한다. 노랫말에도 있듯 영화를 핑계로 아침부터 만나고 싶은 연인도 있다는데, 많은 영화 매니아들이 선호하는 저렴한 영화관람 문화인 조조할인이 은근슬쩍 없어졌으니 불만이 있을 법도 하다.

그들만의 시네마 천국
관객이고 독자이고 관람자일 때 모든 문화를 누리는 사람은 가장 행복할 것이다. ‘안동영화사랑’ 회원들의 밝은 얼굴과 서로에 대한 배려의 모습은, 왜 그들이 영화개봉일인 목요일을 기다리듯 정기모임이나 번개모임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영화 볼 친구가 필요하거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는다면 지금 바로 다음카페 ‘안동영화사랑’을 검색해보자. 처음은 엑스트라부터 시작하지만 열심히 활동하면 모두가 주연배우가 될 수 있는, 영화도 즐기고 친구도 만날 수 있는 그런 동호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