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하던 날(글/김연숙 - 안동주부문학회원)이삿짐을 들고 방문을 열어 보니 방 가득 고인 퐁퐁거리는 물소리는 보일러에서 나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까? 어젯밤에도 멀쩡하던 집이 두꺼운 장판 속으로 스며든 물 때문에 물침대로 변해서 뜨끈뜨끈한 물이 출렁거린다 오랜 기간 비어 있던 집이라 미세한 틈세가 추위에 금이 갔고 계속 보일러를 가동시키자 터져버린 것이었다.
야외 뷔페식으로 개업을 하려던 나의 계획에 한겨울 날씨는 그만 심술을 부렸다. 띄워 버린 편지와 예약된 손님 때문에 물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데 여기 저기 펑펑 터지는 사고 소식과 방으로 가려면 두세 번 열어야 하는 문은 손발을 발갛게 물들여 놓았다. 그 와중에도 너른 마당에 옹골차게 들어선 나무들을 보며 여름이면 제법 운치가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얘기는 귀에 쏙 들어온다.
매듭 달 보름날, 이십육 년 전 그날로 D-데이를 잡았는데 난 아직도 어린 티를 못 벗은 신부로 이 자리에 서 있다. 하얀 면사포 쓰고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식장에 들어가는데 한바퀴 빙그르 돌려 버리는 신랑 때문에 예식장은 웃음보가 터졌고 난 기절 할만치 놀랐었다.
음악회도 예약되어 있고 개업 겸 아는 분들과 웃고 떠들려던 나의 계획은 풋내기 티를 벗지 못해 엉망진창 난장판을 만들었다. 스무 평도 안 되는 곳에서 이백 평으로 옮겨 왔으니 간도 크다는 말도 들리고 여기 저기 미처 떨어내지 못한 거미줄도 함께 손님인양 너풀거린다.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 하자 말자 호된 추위 속에서 시련을 겪고 모든 삶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다보니, 지나온 시간들에게 좀 더 충실하지 못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치 시집가던 날 들던 짠한 생각처럼, 장롱 속 깊숙이 들어있는 아련한 추억의 앨범처럼.
삐걱거리는 커다란 대문을 열면 찬바람이 밀려오면서 볼을 스친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던 친구가 마치 대문에 들어 설 것 같은 착각도 일으킨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가에 서면 조롱조롱 매달린 목련이 나를 향해 웃음 짓고 까치들이 울어대면 고향집에 머무는 기분이 든다.
혹독한 겨울 뒤에는 더 아름다운 빛깔의 꽃이 핀다는 말처럼 나에게 봄꽃이 가슴 가득 피는 날,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리라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눈꽃송이가 내릴 것 같은 날 난롯가에 군고구마 얹어 놓고 메주를 만들며 창밖을 본다. 안동에는 그리도 인색한 눈이 전국에 넘치게 내려 수십만의 가족을 가슴 치게 하는 일에 비하면 추위쯤이야 하는 생각이 들자 참기가 수월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 속에서 음악회, 시 낭송회, 출판 기념회로 마당 가득 방 가득 손님 맞을 차비를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이 넓어서 할 일도 많고 부지런도 떨어야 하지만 그만큼 꿈도 꿀 수 있어서 어떤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웃음으로 살아가리라.<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