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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과 친구한 이응택씨의 세상살이(글/이미홍 - 객원기자)

10년을 함께한 파킨슨과 반장
봄이다. 세상만물이 눈을 뜨고 깨어나는 봄이다. 제아무리 게으른 양반이라도 겨울 내내 아랫목에 붙였던 엉덩이를 움직거려 사립문밖을 나서보고 싶게 만드는 계절이다 봄이란 놈은. 사람마음을, 온몸을 쑤석거리게 만드는 그 봄기운의 장단에 마음이 동해 어디론가 가고 싶은 그런 날에, 시도 때도 없이 온몸이 바람난 봄 처녀처럼 들썩이는 병을 안고서 봄바람보다 더 부지런을 떨며 사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는데, 화단에 아직은 바삭바삭한 흙 사이로 군데군데 파릇파릇한 잎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누군가가 비질을 해 놓은 화단 한편 응달진 곳에 겨우 자리를 잡은 키 작은 나무에는 이제 막 연초록의 물이 오르고 있는 걸 보고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리니 보라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이가 문을 열고 나온다.
십년 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동네 반장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응택(63) 할머니(?)였다. 할머니라는 말이 어색하기만한 그이의 어디에 그런 이국의 낯선 이름의 병이 깃들어 있다는 걸까 싶게 곱고 수줍은 얼굴이 웃고 있었다. 팔다리가 가만있지 못하고 자꾸 움직이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미리 다짐을 준다. 그리고 실제로도 취재를 하는 동안 그이의 팔도 다리도 목도 조금씩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는 했다. 그이는 그런 팔과 다리와 목을 살살 다독거려가며 우리를 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행은 갑자기 한꺼번에 오더군요.”
이응택 씨의 고향은 문경이다. 해방되던 다음 해에 태어나서 처녀 때까지 쭉 문경에서 살다가 스무 살 때 점촌으로 시집을 갔다. 점촌에서 몇 년 살다가 전화국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안동으로 왔다. 그때부터 한동안은 남편 직장 때문에 영덕에도 갔다가 봉화에도 갔다가 다시 안동으로 왔다가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병으로 먼저 가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삼십 년 넘게 안동에서 살고 있다.
“우리 아저씨 그래 죽고 나니 어떡해, 애들 데리고 먹고 살아야지요. 아저씨 죽고 나서 팔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살았는데, 생전 고생을 모르고 집에서 살림만 살다가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고 있으니까 누가 임시로 사방관리소 일을 소개시켜 주더라고요. 그래 일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삼월에도 두 귀가 얼기도 하고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애들하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 일이라도 고맙게 생각하며 다녔지. 그런데 거기 일이 끝나고 나니 또 걱정인거라. 그때 이웃에 아는 이가 파출부를 구하는 집이 있다고 소개시켜 줘서 갔는데, 주인집에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 그 집에만 7년 동안 일을 다녔어요.”
그러다가 그 집 아들이 벌이가 괜찮다고 소금공장 일을 다녀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남의집살이 보다는 낫지 싶어 그때부터 소금공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많아서 좀 힘들었지만 벌이가 괜찮아서 부지런히 다녔다. 그는 하루라도 일을 안 가면 죽는 줄 알고 다녔다. 성질이 대단했던 공장장이 사람을 심하게 부리면 신랑 있는 여자들은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나 하고 배짱도 부리고 그랬지만 그는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었다. 그런데 소금공장에 다닌 지 한 5년쯤 됐나 그때부터 몸이 이상하게 말을 안 듣고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는 곳마다 중풍인줄 알고 한의원에서 중풍 약을 지어줘서 그 약을 42첩이나 먹었어요. 그러다가 안동병원에 가니까 서울서 온 의사 선생님이 아무래도 파킨슨병 같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거야. 그래 서울 병원에 가보니까 참 파킨슨병이라고 진단이 나오는 거라. 그때부터 파킨슨병 약을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거지.”
그녀의 나이 쉰 두 살이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그이는 일손을 놓아야 했다. 맘에야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리고 공장 사장님도 빗자루 들고 나와서 마당질할 힘만 있어도 월급을 주겠노라 했지만 증세가 심할 때는 그런 단순한 일마저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언제 어디서 넘어져서 사고를 낼 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라 감히 일하러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젊은 사장이 우리 어매 같다며 일을 나갈 때와 똑같이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줬다. 대구까지 검사받으러 갈 일이 있다거나 집에 보일러가 터졌다거나 해서 무슨 일이 있으면 기사를 보내 일을 봐주었다. 나중에 공장이 어려워져서 규모를 줄여갈 때까지 한 삼 년을 그렇게 한결같이 사정을 봐주었다고 했다.
“그 젊은 사장이 참 좋은 분이셨어요. 내가 자기네 공장을 다니다가 그렇게 되니까 맘에 걸려서 그랬겠지만. 누구는 공장 다니다가 그랬으니 사장한테 부탁해서 산재 처리라도 받으면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러기도 했지만, 이 병은 의사들도 왜 생기는지 원인도 모르는 병인데, 우리한테 그렇게 마음을 써주는 사장한테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어요. 누가 뭐라 해도 몇 년을 그렇게 꼬박꼬박 월급주고 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어쨌거나 나한테는 고마운 분이지요. 일도 못하고 어려운 그때, 그래도 그 사장님 때문에 먹고 살았지요.”
그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녀는 생기길 본시 의심도 원망도 할 줄을 몰랐다. 그저 형편 닿는 대로 살았다. 쌀 한 되를 사면 보리쌀 두 되를 사서 섞어서 먹었다.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죽을 쒀서 먹고 살았다. 사정이 조금 나으면 더러 치료를 받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나마도 받지 못했다. 겨우겨우 먹고는 살았지만 애들 학비며 큰 돈 들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무렵 대학 3학년이던 딸의 대학 등록금이 모자라서 친정 조카네를 갔다. 집에 들어서는 그를 보고 조카댁이 먼저 집에 돈이 한 푼도 없어 사는 게 말이 아니라고 해서 말도 못 꺼내보고 돌아서 나왔다. 결국 등록금은 딸이 제 단짝 친구한테 빌려서 해결을 했다. 딸의 단짝친구가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모자라는 금액만큼을 보태 방 값이 올랐다고 집에 거짓말을 해서 그 돈을 빌려 주었다. 딸하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그때 돈으로 20만원이었는데 나중에 딸이 졸업을 하고 직장에 취직을 한 뒤 그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때 그 친구는 일찍 결혼을 했었는데 사는 형편이 좋지 않은 듯 조심스레 그 돈을 갚아주면 안되겠냐고 하더란다. 그날 집에 와서 딸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그 20만원에 이자를 보태 30만원을 부쳤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잘자라준 대견한 딸과 아들
부산으로 시집가서 학원을 운영하며 사느라 바쁜 큰딸도, 결혼해서 서울서 벌어먹고 사느라 늘 시간에 쫒기는 아들도 어머니 때문에 늘 걱정이다. 그러나 사는 게 바빠 생각만큼 자주 오지 못하니까 늘 미안해하고 죄스러워 한다. 그런 자식들이 외려 안쓰러워 그이는 웬만하면 전화도 하지 않는다. 전화해서 어떠시냐고 물으면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괜찮다, 내 걱정은 마라’ 하고 웃으며 받는다. 한 번씩 병원에 갈 때마다 서울 사는 아들이나 며느리가 내려와서 데리고 가고 데려다 주고 하는 것도 그만두라 했다. 객지서 자식들 키우랴 일 다니랴 힘든 거 뻔히 아는 데, 그리고 하루 이틀에 나을 병이라면 몰라도 죽을 때까지 동무하며 같이 가야할 병인데 싶어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는 자식들 짐 지우지 않고 혼자서 병원에 다닐 궁리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길동무였다.
“석 달에 한 번씩 약 받으러 서울병원을 가야 되는데, 혼자서는 자꾸 넘어지고 해서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길동무를 사서 데리고 다니는 거래요. 이웃에 친하게 지내는 칠십 세 살 된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더러 내 길동무 좀 해 달라 그랬어요. 그렇다고 따로 일당을 주는 건 아니고 다니면서 차비하고 밥 사 먹고 여관에 잠자고 그런 비용은 내가 내주고 그 할머니는 내가 버스에 타고 내리는 거며 걷다가 간혹 증세가 심해져서 거동이 불편하면 잡아주고 그러는 거지요. 증세가 좋아질 때면 혼자 맘에 이제 혼자서도 다닐 것도 같다 싶다가도 막상 그날이 되면 또 불안하니까 그 할머니한테 전화를 해요. 다행히 그 할머니가 건강해서 내가 전화만 하면 웬만하면 알았다 하고 같이 길을 나서 주니 그게 고맙지요.”
더러 가깝다고 혼자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섰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어 실은 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증세가 한참 심할 때는 팔다리가 제 의지를 잃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그야말로 ‘지 맘대로’ 논다. 팔다리가 오그라들라치면 걸음이 제대로 걸어질 리 없다. 그런데 그게 사정 모르는 남들 눈에는 여자가 대낮부터 취해서 비틀거리는 걸로 보이나보다. 이상하다는 듯이, 혹은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길들과 수군거림이야 예사로 보아 넘기지만, 어쩌다가는 길에서 몸이 불편해서 차를 제때 피하지 못하다가 남의 신세 망치려 든다고 대놓고 삿대질도 당해 봤다. 그래도 그는 야속타 생각지 않고 저 사람은 모르니까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이해를 했다.
그나마 장애인 2급 판정을 받은 게 많은 도움이 됐다. 파킨슨병이 증세가 근육이 점점 굳어져서 못쓰게 되는 병인데다가 완치가 힘든 병이다 보니까 그이는 자연스레 장애인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장애인 연금도 조금 나오고 치료비도 보조가 되고 해서 그나마 투병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한다.

“고약한 병 어쩝니까, 같이 살아갈 밖에”
이 놈의 병이 어디서 왔을까? 신경에서 왔다고 의사가 그랬단다. 먹고 사느라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생긴 병이라 했다. 원래부터 몸이 약한 데다 남편 죽고 아이들 둘 데리고 먹고 살려고 파출부 다니랴 공장 다니랴 아픈 몸으로 늙은 친정 엄마 모시랴 참 신경을 쓰기는 많이 쓰고 살았다. 그가 외동딸이라 조카를 양자로 들였지만 노모가 거동이 불편해지자 모시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녀가 모셔 와서 20년을 같이 살았다. 마지막 몇 달은 치매가 심해져서 그의 속을 무던히도 태우다 가셨다.
이름도 생소했던 파킨슨이라는 놈의 병은 참 고약키도 해서 감기가 걸려도 약 한 번을 못 먹는다. 십 년째 먹고 있는 약이 독해서 다른 약을 같이 먹으면 휴유증이 심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놈의 병은 좋아지는가 싶다가도 약을 한 번만 걸러도 언제 좋아졌나 싶게 나빠지기 일쑤다. 밥을 많이 먹어도 악화될 수 있고, 고기를 많이 먹어도 악화될 수 있고,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악화되기도 한다니 어느 한신들 마음을 놓을 수 있는가 말이다.
“어디가 아파도 병원에도 마음 놓고 잘 못 가요. 치료를 한 번 받으려고 해도 몸이 자꾸 움직이니까 참 힘이 들거든요. 한 번은 치과에 갔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파킨슨병이라는 걸 아시더라고요. 그 의사 선생님이 ‘이 병은 본래 몸이 맘대로 움직여야 되는 병이니까 신경쓰지 말고 맘대로 흔드소.’ 그래요. 그래 말해주니 얼마나 고맙던지요.”
무엇이 그리 고마울까 싶지만, 그는 말끝마다 고맙다, 고맙다 한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을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산다.

우리집은 동네 아지트, 동네반장일도 앞장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 중에는 근육이 굳어져서 거동이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발병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이만한 게 감사하고, 오랫동안 맡고 있는 반장 일을 아직도 변함없이 잘 해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이웃이 있어 감사하고, 아침이면 약속이 없어도 자신의 집으로 마실 오는 친구들이 있어 고맙다.
“우리 집이 동네 아지트래요. 아침만 되면 별일 없으면 다들 여기 와서 놀다가 밥도 해 먹고 내기 화투도 치고. 온 겨울 내내 집에 사람이 안 비니더. 이 동네 반장 일을 오래 맡아 보고 있는데 일을 잘했다고 작년에 2005년도 모범반장 표창도 받고 그랬어요. 내가 몸은 이래도 맡은 일은 꼼꼼하게 하거든요. 작년에 인구조사를 할 때도 한 집에 최소한 네 번 다섯 번을 갔어요. 한 집도 허투루 한 게 없어요. 나는 조사하는 것 중에 하나도 빠지면 안 되고, 도장도 똑바로 찍어야 되지 삐딱하게 찍히면 안돼요. 성격이 이렇다 보이 뭘 해도 딱딱 맞게 해야 돼요. 그래 내가 반장 그만 두겠다 하니까 통장이 질겁을 하며 안 된다 그래요. 내가 이 동네서 십 칠년 살면서 부녀회 부회장 일도 여러 해 했고 반장 일도 10년 넘게 했는데, 그래도 인심은 안 잃었는지 사람들이 내가 말하면 다들 수긍하고 믿어주는 편이래요. 뭔 일을 하면 협조도 잘 해주고요.”
반장일도 그렇고 집안일도 그렇고 웬만하면 그는 남한테 자기 일을 대신 부탁을 잘 안 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방문해 도와주는 도우미 아줌마들이 놀란다고 했다. 주인이 너무 부지런해서 이 집에 오면 청소할 게 없다고. 그네가 한시도 쉬지 않고 운동 삼아 늘 움직이면서 청소고 빨래고 다 해 놓기 때문이다. 한때는 동네서 깔끔하고 부지런하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면서도 연신 너무 닦아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바닥을 훔친다.

딸같은 간병도우미,아픔으로 소중한 인연 맺어
취재가 끝나갈 무렵 계단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면서 아주머니 두 분이 들어오신다. 그녀가 반기며 마침 잘 왔다며 매주 수요일마다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라고 했다. 가사간병도우미 신정옥 씨와 최연희 씨였다. 두 사람도 양반은 못될 모양이다. 이래서 세상사는 게 재미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때맞추어 들어서다니, 거기다가 오랫동안 드나들어 제 집처럼 익숙한 양 어느새 거실 안쪽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모양새가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꼭 친정집에 온 딸네들 같다. 왜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었느냐는 놀림에 쑥스러운 듯 과일이라도 좀 깎아보라는 주인의 말에 연희 씨가 베란다로 나가 과도와 과일을 들고 와서 깎아낸다. 아마도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취재에 응했던 게 조금 무리가 간 듯 편히 앉으려고 다리를 펴다가 그새 몸이 불편해져서 힘들어하는 그네의 다리를 정옥 씨가 붙잡고 주물러준다. 짐작컨대 아마도 우리 앞에서 한껏 긴장을 하고 있다가 편안한 얼굴들을 본 순간 긴장이 풀려서 팔다리에 힘이 풀린 듯싶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픈 사람 같지 않다며 편히 앉으시라는 소리 한 번 없이 아픈 사람 붙잡고 물색없이 이것저것 물은 죄가 있어 마음이 바늘방석인데 다행히 좀 지나니 진정이 된 듯,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돌아왔다.

부지런히 사는 것이 아픔 덜어내는 법
남들은 몸도 불편한 데 아들한테 가지 왜 혼자 고생 하느냐고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아들도 같이 살자고 했지만, 그가 싫다 했다. 지금도 혼자서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끄떡없이 살아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정 밥을 못 해 먹을 정도가 되면 양로원으로 가려고 마음먹은 지 오래다. 한참 클 때 잘해주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켰는데, 다 늙어 병들어서 자식한테 가면 짐만 될 게 뻔한 데 왜 그러겠는가. 같이 살면서 온몸이 뒤틀려서 잠도 못 자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자신도 아들도 힘들게 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더 악착같이 부지런을 떨며 열심히 산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니 돈을 벌고 싶단다.
“내가 잘 살아야지 싶어서, 나는 이것저것 찾아서 뭐든지 열심히 해요. 요즘은 옥동 여성노인문화센터에 스포츠댄스도 배우러 나가요. 놀이 삼아 운동 삼아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데 하루는 스포츠댄스, 하루는 노래 교실 두 가지를 배워요. 스포츠댄스를 배우는데 앞으로 가는 스텝은 돼도 뒤로 가는 스텝은 넘어질까 겁이 나서 못해요. 넘어지면 못 일어나고 위험하니까 그냥 내대로 알아서 따라 하고 그러지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조금만 더 몸이 좋아지면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싶은데, 아직 한참 일 할 나이인 데 이렇게 들어앉아 있으니 그게 제일 답답하고 안타깝지요. 일할 정도만 되면 지금도 일자리 주겠다는 사람들은 있는데, 아직은 내가 자신 없어 못해. 좋을 때는 좋다가도 한 번씩 이렇게 심해질 때는 꼼짝을 못하고 있어야 되니까. 그래도 완치는 아니더라도 하루 빨리 건강해져서 카운터 보는 가벼운 일 정도는 하고 싶어.” 정옥 씨가 조금 있다가 오늘은 우리하고 산책을 하자니까 좋다 한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왔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