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산업협회 권형기 회장(글/천남희-하남사는 안동사람, 사진/박영대-동아일보기자)
봄이다. 남쪽에서 전해오는 봄꽃이야기는 이제 막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 이곳에서도 충분히 가슴 설레게 한다. 머지않아 꽃은 필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음을 지금까지의 삶으로 느낌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늘 때에 따라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우리에게 먹을거리와 볼거리를 한없이 베풀어 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해 왔으니까. 그런데 인간으로 인해 우리 인간들의 편리함으로 인해 늘 피해 받던 그들이 그 자연이 이제는 그 섭리를, 균형을 잃어가며 무엇인가 경고성 메시지를 인간에게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자연재해로 사스로 조류독감으로……. 그것에 대해 우리 인간이 어떤 식으로 협상을 아니 대화를 해야 할까?
30여년을 한 우물 판 환경전문기업인
“그 문제는 순리적으로 해야 합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사는 자체가 환경오염이지만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오염을 막을 길은 없어요. 우리가 자연을 최소한으로만 이용하고 살수는 없어요. 우리는 편리하게 살아야 합니다. 환경문제는 심각하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 곳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니까 개발론자들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발론자와 그 반대편에 선 자들이 서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한 흔적을 지울 수 있는 웬만한 기술은 개발되어 있습니다. 그 기술의 질과 인간의 양심에 환경을 맡겨야 합니다.”
환경전문기업인인 한라산업개발 권형기(57) 대표이사의 말이다. 그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여러 가지 물질도 대개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문제도 인간이 풀 수 있다고 말한다.
“앞으로 모든 사업은 친환경 쪽으로 갑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가는 길이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개발론자와 생태론자가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면 환경오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의견 조율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쓰레기 소각로 건설비용이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비쌉니다. 우리나라 환경산업이 왜곡된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사회흐름에 맡겨야죠.”
지난 2002년 제 7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동남아시아에 환경산업기반을 확충한 공로로 국민훈장동백장을 받은 그는 현재 ‘한국환경산업협회장’을 맡아 우리나라 환경산업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환경산업전문기업인으로 30여 년 동안 한 우물을 판 결과이다.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서 환경산업 하는 사람이라고 인사하면 일부 NGO들이 환경오염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치기도 하지만 ‘불났다고 전하는 사람 뺨 맞는 격’ 아니냐며 웃는다.
내 마음의 고향 안동, 그 유년의 낙동강
내가 그를 만나러 간 날은 낮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춘분을 막 지나서이다. 시냇가에 버들강아지가 보슬보슬한 꽃을 틔우고 아지랑이가 소올솔 피어오를 안동을 그리워하며 기대감과 설렘으로 송파구 가락 동에 있는 한라산업개발로 발길을 옮겼다. 내가 오늘 만날 안동사람으로 또 내가 얼마나 안동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고향이 안동임을 알고 가서 그럴게다. 그 역시 영락없는 안동인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음은.
그는 안동시 대석동 269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안동사범부속국민학교와 안동중학교(19회)를 졸업했다. 그의 고향이 어떻게 안동이 되었는지는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란때 안동 권씨 중 추밀공파는 세조의 편에 섰고 그의 조상이자 단종의 외가인 부정공파는 단종의 편에 섰었다. 그 사건으로 단종의 편에 섰던 그의 조상들은 서리를 맞아 죽을 사람 다 죽고 쫒기는 신세로 영덕군 창수면의 어느 산골로 도망을 가 그곳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았다. 그 이후 그의 조부(권정필)가 1919년 3.1운동 때 영덕경찰서를 불태웠었다. 나중에 훈장은 받았지만 참혹한 고생을 하였단다. 그 일로 안동형무소로 잡혀와 형을 살다가 대구에서 재판을 확정 받고 대구 형무소로 갔다. 그의 조부가 안동형무소에 와 있을 때 선친이 당시 13세이었다. 할아버지 옥바라지 하러 다니던 선친이 20세인 1938년에 안동에 자리 잡으면서 그의 고향이 안동이 된 것이다.
선친을 비롯한 조상들이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담담히 말을 이어가지만 그때 당시 가족들이 겪었던 그 어려움을 어찌 말이나 글로 옮길 수 있겠는가. 그때에는 여러 친척들도 참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친척집에 가면 밥 한 끼라도 신세를 져야 한다고 보내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쭉 안동에서 자랐죠.” 그 때문인지 그는 원고향인 영덕에 자주 가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1950년에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니 그의 가족의 어려움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그의 호적에 생일은 1950년 4월19일로 돼 있고 출생신고는 1950년 1월에 한 것으로 적혀있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호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생긴 아이러니다. 1956년에 안동사범학교 부속국민학교가 처음 생겨 100명을 선발해서 입학시켰다. 그때 그가 1학년으로 입학을 했고 졸업한 후 학교가 바로 없어지고 교육대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도 유년시절은 낙동강에서 거의 보냈다.
“집 앞 사장뚝에 나무다리가 있었어요. 그 물을 따라가면 어개골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 옆 개천에 잠자리가 많아 잠자리를 잡고 놀았죠. 그러다가 강이 얼면 썰매를 타고 강이 녹으면 수영도하고 그러면서 놀았어요. 전쟁직후여서 낙동강 다리 중간쯤 왼쪽 아래에 부서진 인민군 탱크도 있었어요, 내가 10살 정도 까지 봤는데 어느 날 치워버렸더군요. 밤에 전기불이 20여 번이나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였는데 여러 가지 어려울 때죠. ‘다시게또’ 라는 놀이도 하면서 놀았죠.”
초등학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6년 내내 1등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에서는 노력을 안 해서 그런지 그냥 공부를 잘하는 학생정도로 기억된다. 그 후 경복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가 안동을 떠난 것이 1965년이다.
“상경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음력 설날이었는데 매우 추웠죠. 차례를 지내자 말자 떡국 한 그릇 먹고 안동 역에 나와서 12시18분 기차를 탔어요. 기차 속에서 내가 왜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가? 내가 왜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 생각을 꾸준히 했어요. 어려울 때 마다 그때를 생각합니다. 서울에 온지 40년이 되었지만 안동에서 서울로 올 때 가졌던 그 꿈을 하나도 버린 게 없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어요. 고향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초심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향 다녀오는 길에 풍산에 있는 선친묘소를 지나면서 나름대로 내가 아버지가 기대하는 자식이 되었는지 항상 내가 왜 서울로 가는지를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힘이 아마 거기에서 나오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때 당시 촌사람이 법학과에 가면 성공한다고 좋은 줄 알고 갔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어릴 때 꿈이 정치 한번 잘해보는 것이었는데 아마 그 길로 접어들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다. 군 복무(방위)를 하면서 그가 다시 안동을 내려간다. 그 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참 재미있게 지냈다. 그때의 그 안식이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움직이는데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때 그는 울적할 때마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서 영호루 옆에 있던 과수원 사이로 난 길을 즐겨 찾았다. 달구지 하나 다닐 수 있는 그 길을 걸으며 울적함을 외로움을 달래었다고 한다. 밤이면 별이 쏟아질 듯 맑은 하늘을 보며 나름대로 미래를 계획했으리라. 그 길이 지금 없어진 것이 참으로 아쉽다고 했다.
“니 서울 왜 왔노?” 진짜배기가 되어야 한다
그가 환경관련 산업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고 말한다. 한라그룹에서 1970년대 말에 사우디아라비아에 한국 최초로 시멘트 공장을 수출하게 되었는데 그 공장 설계를 스위스 회사가 맡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환경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을 때인데 스위스 회사로부터 환경시설은 이런이런 기준에 맞춰서 해야 하고 어느어느 회사 것을 사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 했었는데 공사를 하면서 그 회사와 관계를 갖게 되고 환경산업이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중학교 때 영월화력발전소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만 해도 굴뚝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를 보고 인솔한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공업화가 안돼서 저런 굴뚝이 많지 않다. 굴뚝이 많지 않아 나라가 못산다.”고 말했었다. 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이다. 마침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가 업무를 맡게 된 것이 반드시 우연한 기회였을까? 이과적인 소양이 전혀 없는 그였으니 기본적인 단어 하나를 받아들이는데도 한참은 노력했어야 했다. 공업고등학교 교재도 가져다 보고 나름대로 환경기술에 접근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직업이 나한테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떻게 해 왔느냐 어떻게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힘들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직장을 옮겨 다니는 젊은이들이 곱씹어 볼 내용이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얘기 합니다. 니 서울에 왜 왔노. 단순히 밥 먹으러 왔나. 안동 있으면 밥 못 먹나. 안동에 있으나 서울에 있으나 밥 먹는 건 똑 같은데 서울에 왔으면 좀 다른 밥을 먹으려고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냐고 서울사람과 촌사람이 다른 것이 무엇이겠냐고 서로 채근합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 중에 진짜 상류층 사람은 촌사람입니다. 그건 촌사람이 그만큼 노력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나도 그 노력하는 촌사람 중에 한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밥터, 임원진부터 열린 사고 가져야
한라산업개발은 쓰레기 소각장, 대기오염방지시설 등 환경관련 설비를 개발하고 설치하는 회사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라그룹이 해체될 때 한라중공업 내 환경사업실 직원들이 퇴직금으로 설립한 회사로 환경사업실 실장이었던 그가 경영을 맡은 것이다.
그는 사업가로서 원칙주의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회사를 처음 만들 때 임원들끼리 한 가지 결의를 했습니다. 적어도 임원이 된 사람은 친인척을 취직시키지 말자고요. 회사는 밥터 입니다. 수저의 크고 작은 차이일 뿐 내 직장이기도 하지만 상대에게는 상대의 직장입니다. 적어도 우리 회사 직원들만은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내 원칙입니다. 우리 회사는 지연 학연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우리 회사에도 안동사람이 있지만 내 방에는 절대로 못 오게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부당하게 생각되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원칙을 굽히지 않았던 조상들의 피가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느낌이었다. 그런 그에게 안동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진짜 안동다운 모습이 그립습니다.
"내 마음속에 안동은 떠나 올 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요. 지금도 안동에 가면 옛날 다니던 길로 갑니다. 지금은 없어진 옛날에 있던 것들이 내 마음속에는 그대로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선어대 조금 아래에는 귀례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그 앞 물에서 놀다가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어 그 물이 지금도 깊게만 느껴집니다. 영호루를 깨끗하게 고쳐서 칠해 놓았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영호루는 국민학교 때 소풍가서 삐거덕 삐거덕 거리며 올라가던 그 영호루 입니다. 시청에 볼일이라도 있어 들어가면 운동장 한가운데 있던 큰 은행나무 자리며, 6.25때 폭격을 맞아 생긴 연못자리를 찾아 여기가 ‘탄지’자리구나 혼자 생각하며 내 수업 받던 자리도 한 번 보고 나옵니다. 안동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안동은 항상 같은 모습입니다. 가끔 방송이나 어떤 곳에서 진짜 안동다운 모습을 보면 너무 좋습니다. 고향 떠나온 사람으로 바람이 있다면 안동이 좀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했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안동을 안동답게 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금방 돈이 안 되어서 다른 사람이 꺼려하는 그런 일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침 7시에 경기도 양평에 있는 자택에서 출근한 그가 다시 양평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밤11시 전후이다. 걷기도 하고 팔 굽혀펴기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 직원들에게 중국어를 배우라고 입으로 말하기 보다는 사장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요즈음에는 중국어도 짬짬이 배우고 있다. 배우고 있다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현지에서 간단한 브리핑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급이었다. 99%의 중국인들이 100%로 알아들을 실력이라며 웃는다. 그 부드러운 웃음 속에 강한 카리스마가 베어 나온다. 그는 또 자신은 브레이크가 잘 잡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서울 올라올 때의 초심으로 항상 자기 자신을 긴장시키며 살아서 일게다. 그래서 그는 외국으로 출장 갈 때 비행기 안에서의 휴식이 의식과 업무의 진공상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가장 편하다고 했다. 고향, 안동을 다녀갈 때에도 그에게 그런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40여 년 전에 처음 서울로 올라올 때의 꿈을 하나도 버린 게 없다고 말했다. 꿈이 있어 행복하고 아직도 그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그가 이루어 나갈 꿈속에 우리나라의 환경을, 안동을 슬며시 집어넣는다면 나의 과욕일까?
“낙동강 푸른 줄기 감도는 터에 태백산 정기 받아 빼난 인재는 ~~~ 우리는 명예로운 안동의 시민” 부끄럽지만 내 기억에 전혀 저장되어 있지 않은 안동시민의 노래를 그에게서 들었다. 날마다 아무 생각 없이 먹는 밥, 나는 과연 어떤 밥을 먹고 있나? 고향 떠나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의미 깊게 생각해 볼일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