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내용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글/권태경, 그림/백설인)

<세 번째 이야기>

"옷은 왜 벗어"

택시는 날씨와 시간대별로 장사에 민감하다. 출퇴근 시간, 교대시간, 행사나 장날 등..
그날은 귀가시간대인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 집중공략하기로 했다. 여흥을 달래는 주당이나 계모임 주부나 데이트 나간 아가씨에게 있어 12시 귀가 시간은 평범한 진리이다.
그래서 시내에서 손님 많고 목 좋은 A나이트클럽 앞에는 11시부터 대기 중인 택시의 줄서기가 시작된다.
그날도 순번을 기다리는 중에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분의 여자 손님이 차에 올랐다. ‘가자’, ‘안 간다’ 한참 실랑이 끝에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반강제로 차에 태웠다.
“어서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얼마지요?”
“미터기대로 주시면 됩니다.” 하니
“아저씨 버뜩 가시더” 한다.
출발하면서 시끄럽게 계속되는 대화의 내용을 듣자하니, 시골에서 규모가 꽤 큰 과수원에서 오랜 기간 가을 수확을 마치고 주인집의 배려로 10여명의 아줌마들이 시내에서 회식을 마치고 2차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는 것이다. 모처럼의 외출에다 술에 분위기에 취해 시간은 흘러 마지막으로 남은 두 여자. 말씨로 보아 서울 아줌마와 촌 아지매인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이만큼 놀았으면 돼지 와이카노. 여그 올때 우리 아바이한테 공갈치고 왔는데 12까지는 집에 가야지. 우리 아바이 불같은 성질 모르나 이 어마이야!”
“오랜만에 취한 술에 분위기도 좋고 부킹된 남자랑 브루스 스텝도 밟고, 기분 좋은 밤을 불태우려는데 집에 가자니 원... 우리가 백년을 살아? 혼자 가라고, 혼자!”
“술 취한 여자 혼자 두고 가자이 내가 양심에 걸려 그런다, 이 여편네야. 행여나 잘못되면 내한테 다 덮어씌울라나!”
옥신각신. 차내의 소란 속에 시내를 벗어나 안막재를 지날쯤, 룸미러로 뒤를 보니 뭔가 허연 물체가 보인다. 이상한 장면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니 서울 아줌마의 훌러덩 벗은 몸.
“아지매! 옷은 왜 벗니껴?”
당황한 내가 묻자, 촌 아지매가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일부러 서울 아줌마의 윗옷을 벗긴 것이라 한다. 참말로 감당이 안 되어 차문을 열어놓고 혼자 차에서 내렸다.
지나가는 택시기사 후배녀석이 농짓거리를 한다.
“형님, 옷 벗고 뭐하세요?”
“야, 이누마야 보면 모르나!”
난감한 나를 세워두고 한참을 다투는 두 아줌마. 서울 아줌마가 용감하게 옷을 들고 내리고 촌아지매는 걱정 반에 오기반이 섞인 목소로 말한다.
“내가 못 사니더. 고마 가시더”
어느덧 시골집에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요금은 4만8천원. 아지매 펄쩍 뛰며 놀라며 본래 3만원인데 억울하다며 깎아달라 성화다.
“아지매요. 밤중에 동네 시끄럽게 할래요.”
한밤에 애먹인 게 얄밉기도 하여 으름장을 놓자 ‘아고, 못 산데이’하며 가방이며 주머니 속을 여기저기 뒤져 5만원을 척 내놓는다. 잔돈 2천원을 거슬러주니 삐친 아줌마 냉큼 말한다.
“됐니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아지매. 어둑한 길을 빠져나오며 혼자 중얼거려본다.
‘아지매요! 그래도 우리는 착하게 사시데이~’

<네 번째 이야기>

첫사랑의 두번 째 이별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오전. 한통의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젊은 여자 손님이었다.
“여보세요. 택시 아저씨죠?”
“예”
“혹시 부산까지 갈 수 있어요?”
“그럼요.”
10시까지 ○○동 ○아파트 정문에 오라는 말로 전화를 끊고 서둘러 준비를 했다. 약속시간보다 20분전에 도착하여 장거리 운행의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렸다.
정시에 오신 여자 손님. 부산 왕복요금을 합의하고 안동도착은 꼭 저녁6시까지여야 한다는 약속과 함께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약간의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길안을 지날쯤 여자 손님이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단골손님 많으시죠.”
“예”
먼 길 왕복하는데 안전운행의 부탁을 하더니 내게 전화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준다. 자기도 두 번 정도 내 차를 타보았는데 나의 독특한 외모를 기억하고 있어서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택시회사에 물어보니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단다.
하긴 평범한 외모는 아니라는 생각에 나도 껄껄 웃는다. 표정이 어둡지 않아 보이기에, 미루어 짐작한 내가 물었다.
“부산에는 좋은 일로 가시나 봐요?”
“아저씨, 아저씨는 첫사랑을 몇 살 때 하셨어요?”
대답은 않고 뜬금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나는 스무 살 때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럼, 그 첫사랑 기억하세요?”
“그럼요”
“어떻게, 연락은 하세요?”
“기억은 나지만 확인은 안합니다.”
나의 대답에 옅은 웃음을 띠던 여자 손님이 말문을 연다. 여자 손님은 자기가 지금 부산으로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시골의 한동네에서 같이 다녔던 친구는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때가 중학교 3학년 봄이었다고 한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이성에 눈뜰 무렵 학교 담장에 개나리가 만개하던 어느 봄날, 봄날의 아른거리는 아지랑이처럼 떠난 친구.
어느덧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생활하면서 바쁘게 살아온 그녀. 오늘은 직장에서 타 지역 출장이라 말하고 남편 모르게 가는 중이라 한다.
저녁6시까지 도착해야하는 것을 다짐하던 궁금증이 풀렸던 참이다.
남자친구는 부산의 큰 병원에서 불치의 병으로 2년째 투병중인데 시간의 연장일 뿐 희망이 없단다. 한 달 전쯤 소식은 들었지만 많은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가는 거라 한다.
오랜 유학생활에 총각으로 공부만 하였는데 마지막 남은 희망, 첫사랑인 자기를 보고 싶다기에 이렇게 가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덧 부산에 도착했다. 3시간 후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나는 용두산에 올라 늦은 점심과 휴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여유 있게 내려와서 병원마당에 대기 중이었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 손님.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는 미풍을 느낀다.
그녀는 잠시 멈춰 병동 쪽을 바라보더니 두 팔로 하트모양을 그린다. 저쪽 병동에서도 하트가 보인다. 서로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는 두 사람.
아- 이것이 영화 속 한 장면이라면 나는 빛나는 조연이 기꺼이 되고 싶다.<안동>

글쓴이 권태경씨는 8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