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가 남긴 것(글/조동진 - 안동MBC 기자)5.31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여권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예측된 면도 있었지만 선거결과는 예측을 초월하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버렸으니, 여?야 모두 국민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고 우리는 무엇을 얻고 느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충격에 가까운 야당의 승리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전국적으로 16개 시?도지사 가운데 대구, 경북을 비롯한 12개 지역에서 당선자를 내며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은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에서 당선자를 냈고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전북 한곳에서만 승리했을 뿐이며 제주에서는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230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155곳에서 당선됐고 민주당은 20곳, 열린우리당 19곳, 국민중심당 7곳, 무소속이 29곳에서 당선됐다. 지역구 광역의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75%가량을 석권했고 열린우리당은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6대 광역시에서 전멸하다시피 하는 사상 유례 없는 참패를 기록했다. 내용을 분석해보면 집권 여당의 패배는 참혹할 지경이다.
정당투표수에서는 1위 한나라당과 2위 열린우리당의 격차는 603만표로 우리나라 역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3.15 부정선거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격차이다.
수도권에서의 한나라당 독주현상이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권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 것도 이변의 하나다. 수도권 시,도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95%가 넘는 싹쓸이를 한 것을 비롯해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의 당선율은 92%로 한나라당의 영남권 기초단체장의 승률 83%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또 하나 이번 선거의 특징은 전 연령층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집권 여당의 지지기반이라 할 수 있는 20, 30대 조차도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과 열린우리당의 참담한 몰락, 민주당의 호남약진으로 요약되면서 민심이 얼마나 냉혹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편, 많은 문제점도 가져오고 있다.
특정당 독주로 지방살림 견제 약화 우려
5.31 지방선거 결과 지역별로 단체장은 물론 의회까지 특정 정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지방정부에 대한 의회 고유의 견제기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한나라당이 비례대표를 포함해 전국 광역의회 733석 가운데 76%인 557석을 차지했고 열린우리당은 7%인 52석에 불과했다. 기초의회 역시 전체 2888석 가운데 56%를 한나라당이 차지했고 열린우리당은 22%에 그쳤다.
이처럼 단체장과 의회를 특정 정당이 장악함에 따라 지방의회의 고유기능인 예산심의와 조례안심의, 행정사무감사 등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이번 선거부터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사실 기초의원의 특정정당 독주현상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권자들은 시장 후보자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고 어느 후보를 선택할 것인지 고민할 뿐,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 대부분 유권자들의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내 지역구에 출마한 지방의원 후보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다보니 후보자의 능력과 인물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고 결국 선택기준은 당 공천여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기초의원의 경우 기호배정에 따라 후보간의 희비가 엇갈렸고 이는 당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정당공천을 받은 기호에 ‘묻지마’ 식의 투표에 나서다보니 특정지역의 특정정당 후보 당선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우리지역의 살림꾼을 선출하는 지방의원선거가 유권자의 무관심으로 자치단체장 선거의 들러리만 서는 형태로 전락되고 있으니 지방 살림의 감시와 견제는 선출단계에서부터 한계를 안고 출발하고 있다.
‘묻지마’ 식 선출에다 특정 정당의 독식이 어우러지고 거기에다 정당공천제까지 결합되면서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예속화로 이어지고 결국 의회기능의 약화는 불가피해진다.
주민참여제를 활성화하고 의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지만 이에 앞서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 선출제도의 개선 등의 조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강화된 선거법으로 불법선거 감소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2004년 총선부터 적용됐던 50배 과태료 규정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선거관리위원회는 분석하고 있다. 실제 공식 선거운동 기간동안 선관위가 위법행위를 적발해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한 건수는 천3백건이 넘는데 이는 2002년 지방선거 당시 2천6백여 건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든 것으로 ‘50배 과태료’의 역할이 주효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강화된 선거법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의 불법선거는 여전히 발생하면서 재선거가 우려되는 지역이 대구, 경북지역에서만 50여 곳에 이르고 있다.
봉화군 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구태의연한 돈 살포로 봉화군 전체가 쑥대밭이 되다시피 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돈을 살포한 후보자 측 관계자들이 구속되고 20만원의 돈을 받은 140여명의 주민은 천만 원의 과태료 처분은 면하게 됐지만 벌금 등의 전과자 신세를 지게 됐으니 평화롭던 시골동네가 선거로 인해 풍비박산이 될 지경이다.
사법당국은 최근 50배 과태료 규정이 금품과 향응 제공자보다 수령자에게 훨씬 가혹한 문제점이 있다며 해당 규정을 손질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지만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던 간에 불법선거를 뿌리 뽑는 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공명선거를 향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되고 앞으로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냉혹한 심판자 국민, 국민을 무서워해야....
이번 선거는 국민의 냉정한 판단과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위대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야당을 표로써 탄핵하고 집권여당에 과반수의 표를 몰아주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정확히 2년 뒤 국민들은 다시금 냉혹한 심판을 내렸다.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언제나 지켜보고 있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까지 지녔음을 위정자들은 곱씹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다음 선거 때는 또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여,야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인지, 아니면 당리당략의 이전투구에 매몰돼 국민을 외면하는 정치를 할 것인지, 국민들은 벌써 냉정히 지켜보고 평가하고 있다.
코드에 맞는 소수 정예 엘리트(?) 지지자들만 있으면 국가를 경영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얼마나 허황되고 부끄러운 일임을 가슴 속 깊이 반성하고 되돌아볼 때 국민의 목소리는 들릴 것이다.
냉혹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또 한편으로는 돈 선거에 연루되고 ‘묻지마’ 식 투표에 나서는 것은 모순 되고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다. 지방선거의 총론에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밑그림을 그렸다면 각론에서도 진정한 생활정치의 완성된 그림을 보여주는 역량이 요구된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