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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더 멀리뛰기, 국가대표 김수연,정순옥선수(글/백소애-편집기자)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멀리뛰기 라이벌
나훈아와 남진, 안정환과 이동국, 임요환과 홍진호.....이들의 공통점은? 숙명의 라이벌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라이벌’이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변의 양안을 달리는 자’라고 한다. 그 라이벌이 있기에 더 발전할 수 있는 사람들. 얼마 전 국내 육상계에 기분 좋은 선물을 잇따라 안겨준 당찬 여성 두 명도 그렇게 불리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한국 육상계의 대들보 멀리뛰기 국가대표 김수연 선수와 정순옥 선수이다. 한국신기록을 엎치락뒤치락 경신하고 있는 두 선수 모두 안동시청 소속이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햇빛이 소금처럼 쏟아지는 날씨에, 안동시민운동장에서 건강한 웃음을 날리는 그녀들을 만나보았다.

딸 부잣집, 승부근성, 한국신기록까지 닮은 꼴
막 식사를 끝낸 정순옥(23세) 선수가 커피를 들고 쪼르륵 걸어온다. 막내 동생 같은 귀여움이 아직도 묻어나는 앳된 정순옥 선수는 진도가 고향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부산 동아대를 졸업하고 이곳 안동시청으로 오게 되었다. 평소 그녀를 지켜보던 오성택 감독이 스카웃을 해온 것이다. 1남 6녀 딸부잣집의 다섯째이다. 혹시 막내가 남동생이냐고 물으니, 큰 눈을 부릅뜨며 “아유, 뭐 그런거죠?” 하며 웃는다.

태릉선수촌에서 출발하여 막 도착한 뒤라 피로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김수연(29세) 선수도 1남 4녀 딸 부잣집 셋째이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고 안동시청에 오기 전 충남도청과 울산시청에 소속되어 있었다. 실업팀에서만 6년간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선수이다.
김수연 선수의 장점은 노련함과 한참 절정에 이른 경기감각이다. 차분한 성격에 마인드컨트롤 하는 모습이 여간 대범한 게 아니란다. 현재의 목표를 묻자 일단은 올 12월에 있을 도하아시안게임에 집중해서 메달권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물이 오를대로 올라 절정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가 냉큼 ‘금메달’이 아닌 메달권 진입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만큼 신중해 보였다. 현재의 컨디션을 유지하면 두 선수 모두 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 거라고 안동시청 오성택 감독이 귀띔해준다.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의 정순옥 선수는 승부욕이 강하고 다혈질이라 경기운영에 있어 거침이 없다고 한다. 아직도 한창인 나이라 발전가능성은 더할 나위가 없이 무한하다. 목표가 뭐냐고 묻자 “세계 선수권 출전기록(6m 70cm)을 갖는 거죠. 올해까지는.” 하고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 그녀의 목표는 일단 올해까지로 한정되어있다. 더 큰 목표를 굳이 숨기지 않는 욕심 많은 그녀에게서 젊은 패기가 느껴진다.

멀리, 더 멀리 뛰다보면 나오는 해법
2000년부터 한국신기록을 네 차례나 경신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김수연 선수. 2004년 10월 김수연 선수가 세운 한국기록 6m 38cm를 2005년 정순옥 선수가 6m41cm를 뛰면서 두 선수의 신기록 행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작되었다.
지난달 6일 오사카그랑프리에서 정순옥 선수가 6m52cm의 한국신기록을 경신하자, 김수연 선수가 25일 제60회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6m53cm를 뛰며 다시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이들의 팽팽한 실력은 본인들에게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겠으나, 보는 사람들에게는 기록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김수연 선수는 주 종목인 멀리뛰기 말고도 세단뛰기에서도 국내 신기록 보유자다. 세단뛰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탁월한 기량을 보이고 있다고 오성택 감독의 자랑이 대단하다. 정순옥 선수 또한 주 종목 멀리뛰기 외에도 100m 달리기 선수이기도 하다.
오성택 감독이 대견해하며 말한다. “서로의 기록이 자극이 되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승부욕이 강하고 제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체력적인 부분이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재능 있고 성실한 선수를 두고 있는 감독이 갖고 있는 만족감이 배여 나온다. 현재 10명의 선수가 안동시청에 소속되어 있는데 모두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뿌듯하다고 한다.

경기나 연습이 없는 날은 뭘 하고 보내는지 묻자, 주로 음악 듣고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 옛날, 펜팔 보낼 때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답하는 취미 말고 진짜 취미를 묻자, 정말로 음악 듣고 책 읽는 것이라 한다. 주말에 주로 연습을 쉬는데 컨디션도 유지하고 크게 치이지 않는 취미생활로는 그게 최고란다. 듣고 보니 그렇다. 스트레스나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물어보니, 취미생활로 푼다고 한다. 우문현답이다. ‘운동선수니까 술은 안마실테고.......’로 운을 떼니 역시나 정순옥 선수가 걸려들었다. “음, 마실 때도 있죠. 아주, 가끔”

너무 이른 말이긴 하지만 그녀들의 은퇴 후 계획이 궁금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김수연 선수는 어렸을 때는 현모양처였다며 웃는다. 조용히 가정에 충실하고 싶었다고, 나중에 자그마한 커피숍을 운영하며 삶의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한다. 한창인 나이에 절제하며 운동만 해왔으니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순옥 선수는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고 싶다고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질문에 “공부? 그렇죠 하하” 예의 쾌활하게 웃고 만다.

“팬요? 아유, 없어요.”
축구처럼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서 비어있는 스탠드를 보면 섭섭하지는 않냐고 묻자 정순옥 선수가 능청스레 답한다.
“이젠 아주 그러려니 해요.”
가족이 경기장에 오는 경우가 있냐고 물으니 매번 오지는 못하지만 큰 경기 있을 때면 어김없이 스탠드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보니 경기가 있는 날은 가족을 만나는 날인 셈이다. 혹 응원 오는 팬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팬요? 아유 없어요” 이들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으니 아쉽기만 한데, 아주 특별한 팬은 둘 다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키도 훤칠하고 매력적인 그녀들에게 남자친구가 없을 것 같진 않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남자친구가 있어요.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죠.” 둘 모두에게 남자친구가 있단다.

안동시청에 적을 두고 있으니 안동시내 웬만한 곳은 다 가봤냐는 질문에 둘 다 별로 돌아다녀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이내 눈을 반짝이며 김수연 선수가 “아, 하회탈춤은 봤어요!” 한다. 정순옥 선수가 갑자기 “날씨도 좋은데 지금 어디로 갈까요? 지금?” 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제스처를 취한다.

그녀들과 만나고 난 다음날, 제10회 전국실업육상선수권대회가 안동시민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이번에도 두 선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김수연 선수는 풍속 때문에 한국신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으나 6m70cm을 뛰어 우승을 차지했다. 정순옥 선수도 2위를 차지하는 활약을 보였다.

도약의 여왕들의 활약, 즐겁게 지켜보기
안동시내 곳곳에 플랜카드가 펄럭인다. ‘정순옥 선수 기록 경신, 김수연 선수 또 기록 경신.’ 엎치락뒤치락 시내를 뒤덮어도 좋을 만큼 많은 플랜카드가 펄럭였으면 좋겠다. 두 선수의 끝없는 기록 경신과 목표를 이루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

그녀들과의 대화는 주로 단답식으로 진행되었다. 거침없이 툭툭 내던지는 말투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 보이는 성격은 외려 사람을 매료시키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어느새 1호 팬이 된 모습으로, 그녀들의 힘찬 도약을 지켜볼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