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네팔 친구(글/김종규 - 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지트 바하두리 체트리
거의 매주 만나는 네팔 친구가 있다. 30대 중반인 이 친구는 자신의 직업을 물으면 대답하기를 조금 망설인다. 현재 그는 분명히 안동대학교 교육공학과의 박사과정 학생이지만 네팔에 있을 때는 ‘네팔 민주당 청년위원회 위원'의 직함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이름은 지트 바하두르 체트리. 지트의 성인 ’체트리'는‘크샤트리아'라고 하는 군인, 정치인의 카스트 제2 계급 명칭의 네팔식 발음이다.
정치적 상황으로 한국에 오게 된 ‘지트’
그는 한국에 온지 약 2년이 된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네팔의 정치 상황과 관계가 많다. 마오주의자 반군과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국왕 사이에서 네팔 민주당의 입지는 약한 모양이다. 지난해에는 네팔 민주당 총리가 국왕에 의해 해임되고 가택 연금되기도 했다. 네팔 민주당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안전에 위협을 느낀 가족들의 종용에 의해 한국 유학길을 택했다고 한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재산이 제법 될 것이라는 한국식 선입견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는 월 10만원의 생활보조금으로 생활을 한다. 그 이상의 돈은 네팔에서도 한국에서도 나올 곳이 없다. 이 10만원으로 그는 식대를 포함한 모든 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기숙사비가 무료라지만 식대, 생필품까지 이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그는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방학이 되어도 비행기 삯 때문에 네팔에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한국에 와서 영어에 자신감을 가진 경우다. 네팔에 있을 때 그는 영어가 신통찮았다고 한다. 한국에 오니 모든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교재까지 영어로 공부해야 했으므로 그때부터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단다. 사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는데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들으니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2년 전만 해도 나의 콩글리쉬 실력보다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만나보면 말하기도 아주 유창하고, 듣기도 CNN이나 브리티쉬 뉴스를 청취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영어로 된 교육학 교재를 읽는 데도 별 문제가 없단다. 특히 교재는 전공과 관련된 특수 어휘가 많을 것 같은데도 곧잘 읽는 모양이다. 그는 2년 동안 영어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대신 한국어는 아주 기본적인 단어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 자신 한국어를 공부하면 많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빠른 시간 내에 학위를 마치고 가려면 느긋하게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공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다.
안동 새내기와 외국인 새내기와의 만남
그와의 첫 만남은 2년 전에 이루어졌다. 안동에 온 지 1년쯤 지나니 뭔가 재미있는 일이 필요해졌다. 그 때 안동대에 온 외국인 유학생 몇 명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대에 온 유학생들은 대부분 아시아권에서 온 학생들인데 장학금을 받아 생활한다고 해도 학교생활 외에 관광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유학 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한국의 산천과 문화를 좀 더 알고 돌아가도록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대의 대외관계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시아권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학생 몇 명을 소개해주면 그 학생들에게 안동 인근을 중심으로 관광도 시켜주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한국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단, 직접적 금전 지원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단서도 붙였다. 그 담당자는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도 처음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니 서로 부담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사회적 지위나 연령에 무리가 없는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얼마 후 네팔에서 온 유학생 두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중 한 사람은 네팔에서 총리 비서관으로 있었으니 내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란 말과 함께. 2004년 가을 첫 만남을 가졌는데 이 친구 외에 타파라고 하는 석사과정 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두 사람은 친척 간이었는데 타파는 현재 일본에 있다.
첫 학기 동안은 나와의 관계가 그리 원활하지 못했다. 만나도 말도 별로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따라다니기만 했다. 대화는 주로 타파와 했다. 방학이 되어 네팔로 돌아갈 때도 돌아온 후에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05년 봄 학기부터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몇 주 연락을 하지 않으면 먼저 전화가 온다. 또 자신이 주말에 서울이나 다른 곳에 갈 일이 있을 때에는 주말에 안동에 없으니 헛걸음하지 말라고 미리 전화도 한다. 요즘은 산에도 같이 다니고 내 주말농장 일도 거들어주고 하며 지낸다.
은퇴 후 히말라야의 수행자가 되고 싶은 ‘지트’
그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많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더라도 네팔에서 무사히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모양이다. 네팔의 친한 정치인은 국제 NGO에서 일하기를 권하기도 하는 모양이고 주변에서는 유럽이나 캐나다로 옮길 것을 권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네팔의 정치 상황도 그를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그는 자식들이 크면 자신의 일에서 일찍 은퇴해 히말라야에 수행을 하러 갈 생각을 할 정도로 종교적 심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 삶은 춤이지”
그는 진지한 사람이다. 그와의 대화 중에 많은 것을 배운다. 그에게 배운 몇 가지를 소개한다.
-상황1 (탈춤 축제 공연을 보고 나오며)
"나도 춤춘다."
"(청취력 부족으로) 뭐? 네 아내가 춤을 춘다고?"
"아니 나도 춤춘다고."
"맞아. 삶은 춤이지. 우리나라에서도 삶을 춤춘다고 표현하기도 해."
-상황2
"신은 한 분이다."
"야, 뭔 소리야. 힌두교는 다신교잖아."
"아니야. 신은 한 분인데 힌두교의 많은 신의 이름은 그 신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야. 물론 힌두교인 스스로도 신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그루의 나무를 가리키며) 한 나무에 많은 가지와 잎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지." <안동>
글쓴이 김종규씨는 검찰의 검사와는 무관한, 병원의 검사실에서 현미경과 씨름하고 지내고 있는, 안동에 산지 3년 된 초보 안동내기이다. 다음 블로그 ‘안동에 사노라면’을http://blog.daum.net/cordblood 운영중이며 진솔한 일상과 호기심 가득한 여행기, 해박한 서평을 써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애장품으로는 가족사진, 몽골에서 받은 그림, 북한 남포에서 산 그림이며, 좋은 줄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일(효도, 가족사랑, 인류애 등)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생활해나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