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향사 참관기(글/권윤대 - 안동관광정보센터 소장)

2006 병술년 춘향(春享)
안동에 살면서 서원의 향사, 향교의 석전, 명문가의 불천위제사 등에 관심을 두고 참관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마침 도산서원 춘향이 주말에 올리게 됨에 참관에 대한 기대를 하였다.
향사는 당초 망기(望記)를 받은 사람에 한하여 참석하는 매우 엄격한 출입제한을 받는 곳으로, 함부로 들어가 학습차원에서 참관이 결례가 되었기에 도산서원관리소장님과 금년도 유사어르신께 사전에 전화로 참관 가능여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가능하다면 관광정보센터 남녀 직원들이 같이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자에 한하여 참관을 허용하고 있었고 경건하게 하라는 주문이 있었다.


3월18일 오후 5시경 혼자 도산서원에 갔다. 관리사무소에 들르니 ‘밤에 향사에 참관하겠다고?’라는 어색한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곧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더욱 외롭고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유사어르신도 찾아뵙지도 못하였기에 그냥 안동으로 나갈까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에 오갔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집에서 혼자 나설 때 마음가짐을 떠올리면서 이번엔 꼭 참관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관리사무소는 6시가 되자 문을 잠그고 당직인 오규태씨와 둘이 서원 안에 고직사 건물의 방을 개조한 숙직실로 갔다. 고직사에서 마련해 준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직 불안은 여전하였다. 유사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려니 만날 길이 없었다. 밤8시경에 석미(淅米, 제사에 사용할 쌀과 기장을 씻는 의식)의식이 있다기에 그때 방에서 나오면 인사를 드릴 생각을 하였다. 고직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묘(廟)지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고, 제사 준비하는 분들도 나의 정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향사의 절차를 간략히 소개하면, 향사는 모두 3일 동안 치르게 된다. 헌관과 축관 및 제유(諸儒)들은 향사 사흘 전에 입재(入齋)하여야 하며 향사가 끝날 때까지 서원 밖에 나가지 않고 서원 내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내가 참관하기 전에 이미 이루어진 의식을 살펴보면, 모든 유생이 전교당 앞에 모여 집사를 선출한 후 다음날 아침(향사 전일 새벽 6시경)에 알묘례(謁廟禮, 향사 전날 아침에 올리는 것으로써 입재하고 향사 올리러 왔음을 알리는 의식)를 올린다. 알묘례가 끝나면 유사들이 전사청으로 나아가 척기의식(滌器儀式, 제기의 숫자를 맞추어보고 잘 씻겨져 있는지 확인하는 의식)을 한다. 이어서 향사 전날 오시(午時)에는 집사분정(執事分定, 이미 천거된 4명의 헌관과 축관 이외에 제사 진행시 부문별로 임무를 맡을 사람을 뽑아 역할을 맡기는 의식)이 있다. 분정이 끝나면 축문을 작성하는데 주향(主享)과 종향(從享)을 합쳐 하나만 작성한다. 축문은 월천 조목이 지었고, 축문 마지막에 ‘월천 조공 종향’이란 여섯자는 월천 선생을 종향한 이후에 추가한 것이다.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생간의식(牲看儀式, 제사에 쓸 쌀, 기장, 돼지 등의 제물을 검사하는 의식)이 있다. 저녁식사 후 석미와 습례(習禮, 분정에 의하여 선정된 각 집사들의 임무와 역할에 대하여 연습하는 의식)의식이 있다.



향사 준비의식
여기 향사 참관을 위해 미리 안동민속박물관에서 출간한 ‘안동의 서원 향사’ 중 도산서원 편을 두세 번 읽고 왔지만 실제 이해가 부족하여 참관에 기대가 컸다. 향사를 위하여 참석한 사람들의 거소가 궁금하였다. 도산서원의 전교당 건물의 서편방인 한존재(閑存齋)에는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분헌관 네 분이 계시는 방이고, 전교당 앞 동재(東齋)에는 별유사 등 나이가 많은 집사가, 서재(西齋)에는 젊은 집사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보통은 헌관이 초,아,종헌관으로 세 분인데 여기는 네 분이다. 분헌관은 월천조공의 종향이 있은 뒤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한참 후 7시반경 석미의식이 있었다. 헌관 이하 모든 집사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전교당 앞뜰에 동서로 두 줄로 늘어섰다. 제사에 쓸 쌀과 기장이 담긴 물동이를 앞세워 구관유사(句管有司)와 집사 5명이 진도문을 나가 서원입구 우물인 열정으로 갔다. 열정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쌀동이에 부어 손을 넣지 않고 씻는 의식을 아홉 번 하는데 이때 쌀 씻는 횟수를 집사가 큰소리로 선창한다. 석미가 끝나고 약 1시간 정도 구관유사의 지도아래 습례가 진행되었다. 나는 전교당 뜰에 모인 자리에서 별유사 이원대 어르신을 찾아 인사드린 후 참관을 정식으로 허락받았다. 그리곤 고직사 건물 숙직방에 와서 안심이 된 채 향사를 기다렸다.


밤 9시경, 동재에서 별유사 어르신이 찾는 전화가 숙직실로 걸려왔다. 기대와 두려움 반으로 동재에 가니 야참시간이었다. 시청에서 혼자 와서 참관하려 기다리는 것을 기억하여 찾은 것이다. 동재에 들어가 인사를 다시 드리니 몇 분은 개인적으로 면이 있고, 잘 아는 사람도 계셨다. 꿇어앉아서 술과 돼지고기 안주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로 향사의 궁금함을 덜었다. 개인적으로 와도 이왕이면 의관을 갖추어서 오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안동풍습은 맏며느리 맞을 때 가장 중요하게 챙기는 것으로 ‘시아버지 도포’가 특징이다. 맏며느리가 해 오는 가장 중요한 혼수품이 ‘도포’인 것이다. 아직 며느리는 언제 맞을지 모르니 우선 행사에 출입할 정도로 싼 것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다시 숙직방에 들어와 혼자 생각해보니 동재에 들어가 어르신께 인사하면서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었던 실수가 생각나 죄송스러웠다. 어른께는 젊은 사람이 인사 올릴 때 눈이 나빠도 인사하는 순간에는 벗는 게 예의라고 알고 있다. 물론 향사 시 사당에 들어갈 때도 안경은 반드시 벗어야 한다.


이어서 밤 12시가 넘어 축시전에 제물을 진설하게 된다. 제물은 전사청에서 준비하여 쪽문을 열면 사당 서편 뜰 안으로 연결된다. 상덕사는 전면에 문이 세칸, 서편에 쪽문이 있다. 제물은 모두 서편 쪽문으로 운반되어 진설되고 구관유사는 진설도를 보고 진설이 바로 되었는지 확인한다.



향사례
새벽 0시30분경 별유사 어르신이 숙직방으로 전화하셨다. 어서 오라는 말씀이었다. 양복을 입고 전교당에 오르니 어르신은 묘지기에게 ‘헌관복 4벌과 祭服 1벌을 내 놓으라’ 하신다. 제복은 내가 입을 옷이다. 당초에는 그냥 참관하려 했으나 제복까지 갖추니 이제는 완전한 참제원(參祭員)으로서 자격을 갖춘 기분이었다. 헌관4분은 전교당 강당에, 나머지 집사는 모두 앞뜰에 두 줄로 늘어섰다. 축시(丑時)가 되자, 도사령(都司令)이 ‘개좌(開座) 아뢰오’라고 세 번 외치면서 향사의식은 시작되었다. 사당의 우측문을 통하여 뜰로 들어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앞줄에 헌관, 뒤에 두 줄은 집사들이다.


나도 의관을 정제하였으니 처음으로 500년 전의 유명한 퇴계선생과 수제자 월천 조공에 대한 향사에 직접 참제를 하게 된 것이다. 특히 월천 조공은 안동권씨 중윤공파 21세손 수익(受益)공의 외손자라는 가친(家親)의 말씀이 떠올랐다. 향사례가 시작 될 무렵 미리 예약한 안동MBC 제작팀들이 촬영을 하러 도착하였다. 유사 어르신은 향사 촬영에 대하여 부정적인 것으로 조심조심 촬영토록 부탁하셨다. 여자 출입이나 촬영팀을 제한하는 이유는 ‘이런데 신경 쓰여 만에 하나 신성한 향사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는 말씀을 조용히 해 주셨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향사 순서는 홀기 내용에 따라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과 분헌관이 잔을 올리고, 음복수조(집사는 북쪽을 향하여 헌관에게 제사에 쓴 고기를 주면 헌관은 받았다가 다시 집사에게 주는 의식)를 하고, 철변두(제기로 사용한 변두를 철거하는 의식), 망예(축문을 땅에 묻는 의식으로 사당 서편 뜰 안에 기왓장으로 덮는다)를 하고 난 후 헌관을 선두로 하여 모두 전교당 대청에 모여 ‘파좌례(罷座禮)’를 고하고 각 처소로 돌아가 아침까지 잠을 잔다. 음복은 아침에 일어나 하는 것으로 보통 가정에서는 제사후 곧 이어서 음복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음복례
묘의 출입은 매우 엄격하다. 헌관은 동편 계단을 이용하여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반드시 동문으로 나와 두 번째 기둥을 돌아서 동편계단으로 내려온다. 서문은 향사중 망예의식를 하러 나오는 문이다.


새벽 1시40분경, 숙직방에 들어와 다시 미리 준비한 향사 책을 읽으면서 실제와 대조해 본 후 아침에 나올 음복을 기다리면서 잠을 청했다. 혹시 혼자 늦잠자서 음복하는 구경을 못할지 걱정이 되어 핸드폰으로 알람을 5시50분에 설정하였다. 이 시간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그대로였다.


새벽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니 아직 어둠이 덜 걷히고 뜰에 나가 봐도 인기척이 없었다. 너무 일러서였다. 다시 방에 조용히 들어가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7시경 어르신들이 세면하느라 고직사 앞 화장실에 줄이 늘어섰다. 나는 역락서재 앞 공중화장실에 나가서 세수를 하였지만 잠잘 준비가 당초에 안 되었기에 세수한 후 수건도 없어 밖에서 그대로 말렸다. 아침날씨가 차가워서 얼마나 춥던지 어린시절 시골집에서 졸졸 흐르는 도랑에 세수하던 때가 떠올랐다. 평소 손수건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이 마저 없어 아쉬웠다.


고직사에는 음복상이 한창 준비되고 있었다. 음복을 위하여 모두 의관을 정제하여 전교당 대청에 개좌하였으며,  헌관4분과 축관은 독상, 나머지 집사는 모두 겸상을 받았다. 상은 옛날 나무상으로 대부분의 종택 방문시 시렁에 얹혀 있었던 것이다. 음복이 끝나고 비닐봉지가 배부되었다. 참제원들은 모두 자기의 음복상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옛날부터 이 제사음복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기를 받는다고 하는 말에 나도 가족과 함께 먹고 기를 받고 싶어 음복을 비닐봉지에 챙겼다. 음복음식으로는 쌀과 기장쌀을 살짝 찐 것과 대추2개, 잣 몇 개 그리고 돼지고기 익힌 것과 祭酒이다.


음복상을 철상하고 다시 고직사에는 아침준비로 분주하였다. 오랜만에 검은 가마솥에 장작으로 불을 넣어 밥 짓고 국 끓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침식사는 전교당 대청이 아니라 한존재와 동,서재에서 이루어졌다.


 



9시경 아침식사가 모두 끝나고 어르신들은 참제를 위해 입소한지 3일 만에 서로 뜻 깊은 이별의 인사를 나눈 뒤 서광명실 옆 쪽문으로 나갔다. 전교당앞 진도문은 의관을 정제하였을 경우에 출입이 가능하지만 3일 만에 나설 때는 모두 도포를 벗은 상태였기에 어르신들이 모두 옆문을 이용하고 계셨다. 나도 뒤이어 미리 챙겨둔 음복봉지를 들고 옥진각 앞을 지나 천연대를 향해 걸어 나오니 화창한 날씨가 반겨 주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어서 가족과 제사음복을 함께 먹고 기를 받음은 물론 한 해 동안 모든 일이 성취되리란 기대를 하면서 안동으로 나왔다.


도산서원 춘향 분정은 다음과 같다.
初獻官, 亞獻官, 終獻官, 分獻官, 祝
贊者 / 향사 시 진행순서인 홀기를 읽는 사람
謁者 / 초헌관을 인도하는 사람
贊引 / 아헌, 종헌, 분헌관을 인도하는 사람
司尊 / 술잔에 술을 채워서 봉작에게 주는 사람
奉香 / 향을 관리하는 사람
奉爐 / 화로를 관리하는 사람
奉爵 / 전작으로부터 받은 술잔을 사준에게 주고, 다시 사준에게 받은 술잔을 전작에게 주는 사람
奠爵 / 제상위의 술잔을 내려 봉작에게 주고, 다시 봉작에게 받은 술잔을 초헌관에게 주고, 초헌관은 다시 전작에게 주면 전작은  술잔을 제상 위에 올린다.
잔 올리는 순서는, 제상 위의 술잔→전작→봉작→사준→잔에 술 채움 →봉작→전작→초헌관→전작 →제상 위에 얹음으로 진행된다.


아직 ‘도산서원 선비문화체험연수’ 기회를 갖지 못하였는데 기회가 오면 다시 한번 열심히 체험할 생각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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