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작은 음악회(글/백소애 - 편집기자)
좋은 음악과 좋은 사람이 만나는 곳
No Music No Life. ‘비바 소울’이라는 그룹의 앨범에 수록된 글이다. 음악이 없으면 인생도 없다. 이 묵직한 울림은 먹고사는데 바빠 문화적인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하는 명쾌한 메시지 같기도 하다.
노영심의 작은음악회, 소품집, 경음악, 크로스오버, 조동진, 어떤 날........‘작은음악회’ 하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소극장규모의 공간에서 옆자리 사람과 간혹 팔이 부딪히기도 하고, 연주자의 흐르는 땀도 바로 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생생한 음악회. 문화 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안동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작은 음악회가 있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았다.
작년 8월 안동댐 민속촌 정자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적당한 어둠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가야금병창과 대금소리에 취한 사람들이 지금껏 모임을 계속 가지며 매달 작은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목요 작은 음악회’ 의 열세 번째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안동중학교 음악실로 찾아가보았다.
목요 작은 음악회는 한달에 한번, 목요일 저녁(해 짧을 때는 일곱시, 해 길 때는 여덟시)에 한 시간 가량 음악연주를 듣는다. 연주자나 청중에게 유익한 자리를 만들어, 지역에서 소박한 문화운동을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처음 모임을 제안한 사람은 안동에서 꾸준히 문화, 생명평화 활동을 하고 있는 안동중학교 배용한 교사였다.
“예전부터 이런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 막연히 생각만 했지요. 그러다 작년에 시도를 해봤는데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이런 작은 시작으로 지역의 문화운동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1주년, 소박한 문화운동으로 자리매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thusm)에는 40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안동중학교 김주철 교사가 회장으로 있다. 유독 공연, 연주회 문화가 취약한 안동의 특성상 1년을 훌쩍 넘긴 목요 작은 음악회의 지속성이 반갑기만 하다. 참석하는 얼굴도 이젠 제법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고 하니, 한번 연주를 듣게 된 사람들은 한달에 한번씩 느림의 미학과 음악을 통해 정화되는 시간에 반함직 하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도 새로운 인연을 맺고 목요 작은 음악회의 청중이 되어 앉아있다고 한다. 가족끼리 함께 온 이도 많이 보이고 평균적으로 20명 남짓이 꾸준히 참석하는 말 그대로 ‘작은 음악회’이다.
성악, 기악, 동서양 장르의 다양성을 지향하고 연주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장소 또한 정해진 곳이 없이 음악과 계절을 고려하여 적당한 곳으로 한다. 달이 좋으면 달 아래, 물이 좋으면 물가에서, 산이 좋으면 산에서, 더우면 시원한 곳에서,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서, 피아노가 필요하면 피아노가 있는 곳에서.
그동안의 연주회에서도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었다. 섹소폰, 클라리넷, 대금, 가야금, 클래식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통기타 가수의 김현식 메들리까지.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생생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언제 그리 흔할까.
연주자 선정은 목요 작은 음악회의 실무자이자 살림꾼인 8명의 운영위원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그들이 매달 번갈아가며 여차저차 알게 되고 소개받은 연주자들을 섭외해온다. 작은 무대지만,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해 대부분 흔쾌히 무대에 선다고 한다.
자율적인 회비를 모아 운영되지만, 후원 회비를 내주는 회원과 지인들 덕에 멀리서 오는 연주자들에게는 차비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영화감상을 유료로 하듯이 ‘온전한 문화활동’을 위해서는 사실 그에 응당한 ‘값’을 치러야한다는 게 회원들의 생각이다. 이런 인식이 보편화되고 여건이 좋아지면 지역연주가들에게는 연주의 공간을, 지역민들에겐 좋은 문화감상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는 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여름 밤의 콘서트
열세 번째 연주회는 예천에서 온 문지윤씨의 피아노 독주회였다. 프로그램은 피아노 독주였으나 문지윤씨가 친분이 있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의 바순연주자를 초대해 무대는 더욱 빛이 났다. 베토벤과 쇼팽이 연주되고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제곡이 흐르는 가운데 여름밤의 청아한 피아노소리와 낮고도 부드러운 바순 소리에 흠뻑 취했다.
1시간에 조금 못 미쳐 연주가 끝나자, 아쉬워하는 청중들 틈에서 회원 김지섭 시인이 “아주 긴 곡으루다가 한곡 부탁합니다. 아님, 짧은 걸루 두곡!”하고 다소 우스꽝스런 앵콜을 청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목요 작은 음악회의 1주년을 기념하여 배용한씨가 인사말을 남겼다. “작년 8월 안동댐 정자에서 시작된 이 작은 문화운동이 한달도 거르지 않고 1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정성과 바람으로 이후에도 끊이기 않고 쭉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음악실에는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듣는 연주, 악기나 사람 목소리나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인 것을 듣는 기쁨의 열기가 가득했다.
이날, 앵콜곡으로 영화음악 엘비라 마디간이 울려 퍼졌다. 다음달 세 번째 목요일에는 나섬학교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자리를 파했다. 더위를 피해 학교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삼삼오오 담소 중인 아주머니들, 미풍에 날리는 나뭇가지, 덩그러니 홀로 불 밝힌 작은 음악실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1악장에 실려 여름밤은 깊어만 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