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속에서 찾은 기쁨, 인천보쉬공구 이상원 사장(글/김영희-주부, 사진/박영대-동아일보 기자)
주부들 손에 물마를 새 없다는 추석을 바삐 보내고 나니 벌써 가을하늘이 높다. 차롬한 날씨며 하늘모양새를 감상하다가 이번 달 원고마감을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아이쿠야! 큰일 났다고 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안동사람을 알고 있다고 살짝 알려주었다.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러 갔다가 젊은 사장님을 만났는데 어디서 많이 듣던 사투리가 귀를 사로잡았단다. 집사람이 쓰는 안동사투리에 익숙한 터라 금방 알아보았다고. 사실 내가 글을 쓴 사람들의 반 이상은 남편이 섭외를 한 사람들이다. 안동사투리가 들리면 지나치지 않고 꼭 고향을 묻고 나중을 대비해 연락처를 받아둔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적극적이다.
공구상으로 인천에 터 잡은 예안사람 이상원씨
그래서 이번에 만난 사람은 인천에서 공구상을 하고 있는 이상원(60) 사장님이다. 원래 남편은 젊은 사장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동생이고 실제 사장님은 형 되시는 분이다. 형제가 함께 공구상을 운영하고 계신다. 제2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가다가 남동공단으로 빠져서 문학경기장을 지나쳐 인천시청 쪽으로 가다가 보면 큰 대로변 왼쪽 편에 공구상가가 나온다. 그 중에서 제법 크고 깨끗한 보쉬 공구전문점이 바로 사장님의 가게다. 처음 취재차 갈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남편 차를 타고 갔다가 며칠 후 사진을 찍으러 박영대 기자와 같이 갔는데 위치를 잘 몰라서 그 주변을 좀 헤맸다. 진짜 취재 왔던 사람 맞냐고 핀잔을 들어서 이렇게 위치를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시 찾아간다면 제대로 한 번에 갈 것 같다.
이상원 사장님은 고향이 예안면 부포동이다. 지금은 안동댐 수몰지역으로 물속에 마을이 잠겨 있다. 명절에 산소에 갈 때만 고향에 내려가 보는데 예안에서 다래마을로 가서 배를 타고 부포로 들어간다고 한다. 수몰되기 전에는 진성이씨 집성촌으로 100여 호가 살던 큰 마을이었다. 마을이 사라지고 없으니 동네에서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고향에 갈 때 마다 차로 예안 주변 산천을 달려보곤 한다고. 그럴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넓어지는 것이 감상적이 된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서 살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고향에 가면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 된다. 명절 때 한 번씩 보는 고향산천이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 고생 덕에 세상 이치는 더 빨리 터득해
사실 사장님은 고향에서의 기억이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14살에 고향집에서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가산을 정리해서 강원도 횡성으로 이사를 하셨다. 거기에서 쌀가게를 하셨는데 사업에 실패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 안동으로 다시 내려오셨다. 사장님은 당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밥 먹기도 힘든 형편이라 학교를 그만두고 영주에 있는 과자도매점에 취직을 했다. 5년 정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아버지에게 태화동 파출소 옆에 슈퍼를 차려드리고 사장님은 군대에 입대했다. 아버지는 당시 통행금지가 있을 때였는데도 24시간 가게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하셨단다. 24시간 편의점의 시초라고. 그만큼 아버지도 열심히 사셨다고 자랑하셨다. 그 가게를 하셔서 새어머니와 2남 4녀의 동생들을 다 키워내셨단다.
사장님은 군대에 가서 혼자 앞날을 궁리하며 계획을 세우다가 사람은 무슨 일은 하건 밑천이 있어야 날품팔이 인생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월남으로 갔다. 73년 제대할 당시에는 수중에 30만원(현재 3천만 원 정도)이 마련되었다. 취직을 하자니 학벌이 짧아서 힘들고 혼자 성공하려면 사업을 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서울로 와서 자전거 한 대를 사서 식품 도매상을 시작했다.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가게를 다니며 납품했는데 한 번에 라면은 30박스, 맥주는 10박스씩 싣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단다. 묘기한다고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하니 돈도 벌리고 그 즐거움에 지칠 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1남 1녀를 두어 딸은 결혼을 하고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있다.
이제 나이 60이 되어서 평생 산 세월을 돌이켜보니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고비가 두어 번 있었지만 다 극복을 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단다. 삶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은 20대의 젊은 시절에 인생의 계획을 세우면 80%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계획이 늦어지면 그만큼 성공확률도 줄어든다. 또 장사를 해 보면 돈이 벌리는 때가 있다고. 늘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모이는 때는 2-3년 정도라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또 그것을 잘 모아 놓으면 그다음 어떤 고비가 오더라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터득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잘 될 때 모아놓지 않고 항상 잘 될 거라 생각하고 낭비한다면 곧 닥치는 어려움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하셨다.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라 귀담아 듣고 기억해두었다.
새로운 도전, 동생과 적성에 맞는 공구점으로 선택
지금의 공구점을 하게 된 것은 3년 전인데 구로동에서 공구점에 취직해 있던 막내동생과 함께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 동생이 공구점에 취직한 것도 사장님의 생각이었는데, 식품점을 하고 있었지만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다. 더 적성에 맞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공구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망설임이 있었는데 막내동생과 함께라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동생이 제대할 때 나중에 같이 일을 하자고 약속하고 동생을 공구점에 취직하게 했다. 경험을 쌓고 나서 기회가 닿아 동생과 함께 시작한 것이다. 가게를 차리는데 5억 정도의 자금이 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이 부근에서는 가장 잘 되는 가게가 되었다. 적성에 맞는 일이라 하루하루가 즐겁고 일할 기분이 난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기쁘고 신이난다. 동생은 주로 밖으로 나가 영업을 하고 기술자와 사장님은 가게를 지키며 손님을 맞는다.
가게 안에는 각종 공구들로 빼곡했는데 종류가 3만여 가지나 된다고 해서 정말 놀랐다. 가지런히 잘 정리된 온갖 종류의 드라이버, 컷터칼, 자, 송곳, 톱, 망치 등등 셀 수도 없는 공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드나들었는데 그때마다 즐겁게 일어나 맞는 모습을 보니 젊은이 못지않게 젊고 활기차게 느껴졌다.
지금은 같이 하지만 몇 년 후에는 가게를 동생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하셨다. 사장님을 빼고 밑에 동생들은 모두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들이지만 친형제 이상으로 우애 있고 화목하게 잘 지낸다고 뿌듯해하셨다.
타향살이 외로움은 심향회 친구들과 함께
지금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녀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다. 사는 것에 바빠서 자식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그것이 최선인줄 알았는데 다 크고 나니 허전한 기분이 든다고. 자녀들은 손자들을 더 사랑하면서 키우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고향 친구들과는 「심향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만나 즐거움을 나누며 서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하셨다. 그 연세에도 수줍게 웃으시며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모습이 어린아이같이 순진하였다.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하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