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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를 위한 변명(글/김종규-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블로그(blog)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인 웹로그(weblog)를 줄인 말이다. 그러니까 블로그는 개인의 기록을 인터넷에 띄운 것을 의미한다. 개인 홈페이지와의 차이점은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게시판 기능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컴퓨터에 관한 큰 지식이 없어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록은 그것이 사적인 일기가 될 수도 있고, 뉴스가 될 수도 있고, 시사평론이 될 수도 있다. 또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개인의 기록이 인터넷에 올려져 다수의 사람이 접근하게 되면 그 개인의 기록은 매체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블로그를 ‘1인 미디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층에 유행하고 있는 ‘미니 홈피’도 특성의 차이는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일종의 블로그라고 볼 수도 있겠다.

중장년의 블로거들, 알찬 생활상 가득해
누군가 나를 지칭해서 "김아무개가 뭐하는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내 직업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는 블로그 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나는 블로그하는 사람 즉 블로거(blogger)다. 블로그라는 말을 접할 때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대개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채팅’이나 ‘친구 찾기’ 열풍을 연상한다. 또 그런 바람과 함께 있었던 부정적 사회 현상들을 떠올리고 나를 나이 값을 못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런 의미를 품은 말을 들은 일도 있다.
블로그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시간 죽이는 공간도 아니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혹은 자주 방문했던 블로거들은 대개 40~50대 분들이다. 그 중에는 60을 넘은 분도 있다. 또 대부분 자신의 직장에서 혹은 취미 생활에서 일가견을 가진 분들이다. 평생 생물학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내기 위해 블로그에 그 내용을 올리는 사람, 꾸준히 책을 읽으며 책 소개를 올리는 사람, 솔직한 일상사로 주위 분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목사님, 불교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깊이 있는 글을 올리는 스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올리는 선생님, 건축에 일가견을 가진 건축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산행기를 올리는 사람, 자신이 작업한 그림을 올리는 사람, 우편물을 배달하며 겪은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 자신의 농사 기록을 올리는 사람, 매년 떠나는 배낭여행의 여행기를 올리는 사람, 외국에서의 활동을 올리는 사람 등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많다.
블로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혼탁하지도 않다. 안동에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올해 8월까지 내 블로그에 달린 댓글 중 한번도 비난성 댓글이나 저속한 표현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힘들어 할 땐 격려해 준다. 올해 9월에 처음으로 비난성 댓글이 몇 개 있긴 했다. 내 블로그가 속한 포털 사이트의 홈에 2년 전 혈액형과 성격이 무관하다는 내용의 내 글이 소개되어 며칠 만에 약 3만 명이 접속한 일이 있는데 이 때 의견이 다른 사람 몇이 약간 불쾌한 댓글을 단 일이 있지만 이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정치적인 견해와 종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올릴 때는 논쟁을 각오해야 한다.

‘40대에 쓰는 자서전’으로 시작된 블로그 활동
나는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안동에 사노라면’이라는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 블로그의 구성은 안동 인근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안동 여행’, 해외여행이나 기타 지역의 여행지에 대해 적는 ‘여행기’,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적는 ‘사노라면’, 책을 읽은 후 적는 ‘독서 후기’, 직장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는 ‘검사실’, 집안 족보에 관한 생각을 적은 ‘족보 이야기’, 고서를 수집하면서 적는 ‘고서’ 등과 비공개로 개인사와 가족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처음에는 ‘다음’에서 블로그 이전 서비스 명칭인 ‘칼럼’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는 자서전을 써 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때를 대비해 40대의 사건과 생각을 기록해 두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제목도 거창하게 ‘40대에 쓰는 자서전’이라고 정했다. 나는 누구나 자서전을 쓸 자격이 있고 그런 자서전이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좋은 사료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에서 출발해 한 때 노인들 자서전을 써주는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다. 안동으로 이사 온 후 바꾼 이름이 ‘안동에 사노라면’이 되었고 다음에서 ‘칼럼’ 서비스를 블로그로 전환하면서 현재의 블로그 이름이 되었다.

옛 친구 찾아주고, 새로운 인연 맺어준 블로그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정이 많아 그런지 뭐든 관계의 문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IT 기술도 이 땅의 사람들과 접목되면 관계 형성의 도구가 된다. 휴대 전화가 젊은이들이 문자 메시지를 활용해 친구와 수시로 대화하는 도구로 정착했다. 인터넷도 관계를 위해 활용한다. 인터넷을 통한 ‘친구 찾기’가 전국적 유행이 되기도 하고, 카페 등의 기능을 활용해 동호회의 활성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정도론 부족해 실시간 대화인 ‘채팅’이 유행하기도 했다. 개인의 기록인 블로그도 ‘1인 미디어’를 넘어 관계 형성의 도구를 겸한다. ‘댓글’ 주고받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통하기’ 등의 관계 형성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블로그가 인맥 형성의 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처음엔 내 삶의 기록이라는 생각에서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남긴 인사말이나 댓글에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글을 쓰고 당신네들은 보고 싶으면 보라는 식이었다. 그러다 블로그도 사람이 만나는 장소인데 자주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의 댓글에 답을 달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금씩 답글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내 블로그를 찾는 분들의 블로그를 찾아서 나도 댓글을 다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의기투합하면 실제 만나기도 한다. 다양한 방면에 있는 그 분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 경우는 블로그를 통해 멀리 인도에서 선물을 받기도 했고, 어려운 한시(漢詩)의 해석을 부탁하면 금방 해답이 올라오기도 한다. 내 블로그를 우연히 찾아온 초등학교 동기와 연락이 되어 만나기도 했다. 안동에서 만나 알고 지내는 분들 중 몇 분은 블로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만난 분들이다. 인터넷에 올린 삶의 기록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안동에 사노라면, 블로그에 사노라면
다음(Daum)의 ‘안동에 사노라면’이란 공개 블로그 외에 다른 포털에 두 개의 비공개 블로그를 더 가지고 있는데 그 블로그들은 내 사진을 보관하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찍은 모든 사진은 스캔해서 올려두었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올려두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 사진도 모두 올려두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만 연결되면 보고 싶은 사진을 꺼내 볼 수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그 사진을 즉석에서 꺼내 볼 수도 있다. 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따로 보관해 놓지 않으면 없어지기 쉬운데 이렇게 해 놓으면 그 포털 사이트가 존재하는 한 분실할 염려는 거의 없다. 혹 어느 포털 사이트에 갑자기 문제가 생길지 모르므로 두 곳의 포털 사이트에 올려 안전을 기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블로그는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블로그를 통해 만나는 분들 중 안동 출신들이 몇 분 있다. 안동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 교사로 일하는 어떤 분은 5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연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여름이면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저렴한 비용으로 3~4주를 다녀온 후 여행기를 올리는데 나중에 책으로 내면 훌륭한 여행안내서가 될 수준이다. 그 분은 여행뿐만 아니라 영화 이야기도 블로그에 쓰는데 그 역시 나중에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내용이다. 또 안동 출신의 어느 분은 아르헨티나 남단에 사시면서 남극 대륙 가까운 그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 또 다른 안동 출신은 뛰어난 글 솜씨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블로그는 21세기 초의 한 문화현상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후 여러 문화현상이 부침을 거듭했다. 블로그도 그런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끝이 날지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지 알 수는 없다. 후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블로그라는 문화현상이 오랜 기간 지속되리라 믿고 있다. 나는 그 현상을 분석하는 학자도 아니고, 거리를 둔 방관자도 아닌 그 현상 한가운데에서 나 자신을 보여주는 블로거다.
안동에 사노라면(http://www.blog.daum.net/cordblood)에 언제 한번 들러주시지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