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누리꾼들, 안동실버넷61동호회(글/백소애-편집기자)
팝업창이 뜬다. -한글판 스위시 CD를 반드시 지참하시길 바랍니다.- 무슨 컴퓨터학원에서 원생들에게 띄우는 공지사항이 아니다.
학문(컴퓨터)으로 항상 벗을 모으고 덕으로써 이웃을 만든다는 모토로 모인 ‘안동실버넷 61 동호회’ http://cafe.eandong.net/silver61/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열리는 화면이다. 인생 60부터라지만, 아직도 독수리타법을 날리는 보통의 40~50대를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들에게는 거리낄게 없어 보인다.
금요일 오전10시 안동문화원.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돋보기를 쓰고 신중하게 컴퓨터를 다루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멋쟁이 어르신들의 모임에 찾아가보았다.
우연히 받은 안내장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
이들의 모임은 2004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동과학대 사회교육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컴퓨터강좌를 개설하면서 안내장을 보내게 된다. 평소 컴퓨터 자판조차 익숙치 않았던 어르신들이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수강했으나, 2주간의 기초과정만으로는 아쉬움만 남아 차라리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지속적으로 컴퓨터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동호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장소 섭외가 문제였다. 고민 끝에 안동시청 정보통신과 담당자에게 실버들을 위한 컴퓨터실 사용허가를 요청하니 다행히 매주 금요일에 사용가능하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모임의 틀을 갖추면서 이헌복 회장이 선출되었고, 그가 손수 교재를 작성하여 직접 강의를 맡아서 했다.
그러나 3개월 후 안동시청 컴퓨터실에 다른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또다시 장소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다행히 안동문화원3층에 위치한 사이버 파크실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현재 33명의 회원들이 열의를 불태우고 있으나, 원래 강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버 파크실이 아니었기에, 대형스크린, 칠판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청심사달 이헌복회장, 가르치는게 곧 배우는 거죠.
‘안동실버넷61’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청심사달,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의 청심사달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헌복 회장(73세). A4용지 앞뒤로 빼곡히 강의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며칠을 꼬박 투자해야한다. 알기 쉽게 읽히라고 힘들게 준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 이곳에서는 선생님도 학생도 비슷한 또래들이고 평균연령이 70세 정도이니 이곳에서는 60대 초 ? 중반은 ‘어른’명함 내밀기에는 짬밥(?)이 안 될 성 싶다.
이날의 강좌내용은 스위시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었다. 각자의 홈페이지에 움직이는 그림을 올릴 목적이기에 모두들 진지하다. 강의 중간 중간에 손을 들어 이헌복 회장의 개인지도를 받는 등 모두들 열의가 보통이 아니었다.
안동문화원 사이버파크 담당자 김경민 씨는 매주 어르신들의 강의를 보면서 본인도 배우는 점이 많다고 한다. “사실 스위시는 저도 잘 모르거든요. 오늘 강의하는 걸 보면서 저도 배우게 돼요. 어르신들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배우시는데 젊은 제가 부끄럽네요. 옆에서 잘 모르시는 것 거들어드리기도 하지만 제 인생 공부에 더 도움이 되네요.”
이헌복 회장 역시 “내가 배운 것을 가르치다보면, 남도 알고 나는 더 확실히 알게 되지요.”한다. 그 자신도 강의 덕에 더욱더 공부하게 된다고 한다. 온혜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고 뒤늦게 컴퓨터의 매력에 푹 빠진 이헌복 회장은 새 컴퓨터를 마련하면서 예전 컴퓨터를 갖다 준 아들 덕에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고.
안동실버넷61 동호회에 가입하여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 컴맹인 실버들인 경우에는, 먼저 안동시청에서 무료 컴퓨터 기초강좌를 이수하여 기본적인 타자를 익힌 뒤, 실버넷 61의 문을 두드리면 될 것이다. 개인별로 진도를 맞춰 나가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바로 안동문화원으로 나오는 분들이 있는데, 일단은 기초과정을 거치고 와야 뒤처지지 않고 강의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강의를 마치고 식사를 함께 하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만든다. 정갈한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강의 중 이해가 안됐던 부분을 얘기하고 소소한 일상사도 같이 나눈다. 재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배움의 동호회 활동은 결과로도 곧잘 나타난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실시한 어르신 정보문화모델선발대회 등 각종 대회의 상을 ‘안동실버넷61’ 회원들이 휩쓸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로 벗을 모으고 덕으로 이웃을 만든다
인터넷뱅킹은 물론이고 전산 공과금 납부, 인터넷 장보기, 가족들과 이메일로 안부도 주고받는 정도라니 이정도면 신세대 할아버지, 할머니다. 인터넷 이래봐야 기껏 ‘맞고’수준을 못 벗어난 어르신들 틈에서 군계일학이요, 게임수준만 높은 손주 녀석을 되려 가르칠 수 있으니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
이들의 바람이라면, 좀더 많은 시간, 지속적으로 강의를 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노인회관이라든지 어느 공공기관에서라도 컴퓨터나 스크린시설을 해놓고 노인들이 언제고 방문해서 컴퓨터도 배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단다. 그렇게 되면 완전초보들도 함께 배울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서 체계적인 배움은 물론이고 모임도 더 조직적이고 활성화되리라 확신한다. 이헌복 회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무한의 정보세상을 항해하여, 보다 풍요롭고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하여” 오늘도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한다면 나도 변해야 하고,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나이는 숫자고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는 이들. 돋보기를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모습이, 어느 젊은 동호인들의 모습보다 더 생기 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