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글/김연숙-안동주부문학회원)열흘간 탈춤페스티벌 장터에 자리잡은 우물가
예약을 받아 시간 내에 음식을 만들어 내기에도 바쁜 못난이가 열흘 동안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탈춤페스티벌에 고개를 내밀었다. 술과 흥이 나풀거리고 즐비하게 늘어선 장터 국밥집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이곳저곳에서 흥겨운 풍물소리가 요란하고 밀려드는 인파는 파도치는 바다처럼 일렁인다. 술을 팔아야 돈이 된다며 밥집으로 하면 안 된다고 좁쌀이 굴러봐야 한번 구른 호박보다 못 하다는 말로 옆집 식당아저씨는 나를 약 올리신다.
차량 통제 때문에 제때에 배달이 되지 않아 주방은 혼란이 생긴다. 이른 새벽시장에 나가 가장 싱싱한 물건을 사는 내게는 큰 고역이다. 추석과 더불어 겹친 축제라 물가는 하늘 높이 올라가고 품귀 현상마저 한몫을 보탠다. 빨리 빨리가 최고인 난장판에서 느긋한 내 경영 방식으로 인해, 좌충우돌 시고모, 이모, 동생, 도우미까지 서로를 주장하느라 논란이 분분하다. 내가 채를 잡고 돌려야 하는데, 정작 나는 여기 저기 신경 쓰느라 돌아가는 팽이마냥 어지럽기만 했다.
이른 새벽부터 전날 먹은 술이 깨기도 전에 다시 부딪히는 술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십 원짜리 욕이 종횡무진 굴러다니고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을 보며 저러면서 어떻게 장사를 하나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멀쩡하게 술을 팔고 잔을 부딪치며 하하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야말로 요지경속이다 열흘 동안 물 만난 고기처럼 술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혼란스럽다
북적되는 장터에서 만난 아저씨의 ‘이대로’
공연이 끝날 때마다 무더기로 몰려드는 손님들 주문은 가지가지 만들어내랴 손님 접대하랴 단골이라고 찾아와서 굳이 한잔하라며 조르시는데 마지못해 받아 입에 댄 술이 부들부들 나의 다리에 중심을 잃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서 예약 받은 손님의 밥이 모자라서 엉망진창이다. 주방을 몽땅 옮겨 놓았는데도 미처 나르지 못한 음식물이 나의 애를 태운다. 나도 마음이 급하지만 손님들도 십 분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듯 조금 모자라면 야단이 난다.
점심시간의 콩볶이가 끝나고 조금은 숨을 돌리는 시간에 떡집 아저씨가 찾아 오셨다. 작년까지도 추석 전에 눈코 뜰 새 없으셨는데 건강이 나빠져 떡 방앗간을 넘기고 형님 내외분과 나들이를 오셨다. 떡집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어 서로 잔을 들고 부딪치는데 "이대로"하시는 것이었다. 연세도 지긋하신 분이 어디서 배우셨냐고 물으니 이제 더 이상 늙지도 젊지도 말고 죽을 때까지 이대로였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얼마나 좋은 말이냐고 하신다. 순간 내 머리 속에 그 말이 인상 깊게 입력이 된다. 인생 중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면 이대로 하고 날마다 외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는 가족있고, 모두 즐겁게 노닐다가니 행복타
서툰 나 때문에 동분서주하는 옆지기가 ‘한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 시킨다’고 해서 ‘한사람 때문에 여럿이서 이 좋은 구경하고 얼마나 좋냐’고 말했더니 모두 웃음바다다. 제대한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와서 써빙도 하고 모자라는 엄마에게 핀잔을 주다가도 "엄마 힘드시죠 " 가끔씩 어깨도 주물러 준다. 지금까지는 그저 학교 다니고 군대 가고 놀고 그러더니 이번 축제에는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아들아, 고맙다 네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여름철 소낙비처럼 지나가는 바쁜 시간에 네 역할은 빛을 발하는 아침 햇살처럼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대견하구나.’
매 시간마다 달려와 "어머니 제가 할게요 " 하며 힘든 일 다 거들어 준 내 아들과 친구 녀석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다 표현할까?
‘방귀 질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더니 처음엔 어떻게 버틸까 고민되더니 며칠 지나니 질서가 잡혀가고 힘들어도 견딜 만 해진다. 다른 사람들 다 앞뒤 꼭꼭 문 막고 포장을 쳤는데, 밤하늘 둥근달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낙엽이 이리저리 식탁 위에 뒹구는 축제장의 우물가. 그 속에서 요란한 기차 소리를 들으며 기차보다 더 큰 우렁찬 목소리로 ‘위하여’를 외쳐대는 손님들을 보며 나는 행복하다.
추석날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텅 빈 매장에서 이주 노동자 오십 명의 아침을 준비해 오천 군자리로 향했다. 2미터에 가까운 까만 얼굴의 건장한 남자들과 나보다 작은 여인네까지 세계의 인종이 모여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며 그래도 웃음꽃이 피는걸 보니 절로 힘이 솟았다. 일 끝내고 축제장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북적인다. 급한 마음에 가스가 열린 줄 모르고 급히 불을 붙이다가 눈썹과 머리카락이 찌르르 소리를 내고 손등이 여기 저기 쓰리고 아파 온다. 급한 김에 소주를 붓고 얼음물에 열기를 삭히며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너무 아프다. 김일성이 나라에 가면 이리 아파도 일을 하겠지 생각하며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축제여, 안녕! 내년에 또 봐요. 이대로!
한 잔의 술 속에 희로애락이 살아 숨쉬는 현장 속에서 기분 좋아 웃음꽃이 피는 손님들을 보며 우물 안의 개구리가 언 바닷물에 빠져 눈 이며 콧속으로 소금물이 스며 허우적대지만 또 다른 세상에 도전하는 기분이다.
둥둥거리던 가슴만큼이나 북적대던 공연장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마지막 짐을 싣는 시간. 척척 손발이 맞아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옆집 식당들. 임시주방 경험이 부족한 나는 ‘천천히’를 외치며 날이 하얗게 새도록 짐을 옮기고 나니 즐비하게 늘어놓은 짐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은 심정이다. "축제여 안녕! 내년에 또 봐요. 이대로!"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