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권영태씨의 따뜻한 겨울나기(글/백소애-편집기자)
권영태씨는 안동민속박물관 관리계 직원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에게는 재산이 많다. 누가 안동사람 아니랄까봐 ‘문화재산’이 차고 넘치는 권영태(49세)씨. 안동수필문학회원이자 등단한 시인이고 제16회 허난설헌 시낭송회 금상을 수상할 정도의 실력에, 성악에도 일가견이 있고 색소폰부터 풀잎, 피리, 톱연주 등도 수준급이다. 이 많은 문화재산을 언제부턴가 주위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있는 그를 겨울초입에 만나보았다.
재주많고 인정넘치니 찾아주는 사람도 많아
바람이 퍽 차다. 추운 겨울, 야외 나들이가 많이 줄었다지만 안동댐 월영교의 운치야 계절에 상관없이 즐기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이 말하길, 언젠가 월영교 누각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풀잎연주를 하는 이를 본적이 있다고 했다. 구슬픈 노래부터 흥겨운 노래까지, 그 정취에 감동한 어르신 한분이 ‘시간 정해놓고 연주를 하는 건 어떻냐’고 청했으나 ‘그건 곤란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연주를 할 수밖에 없으니 인연되면 또 뵙겠지요’ 했단다. 안개가 자욱한 월영교 누각에서의 하모니카 연주라, 생각만 해도 운치가 있다.
그런 월영교가 얼마 전 교각안전문제로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누구보다 복잡한 마음인 안동민속박물관 월영교 관리자 권영태씨. 사실 그 연주자는 권영태씨고, 그가 자신의 연주와 여러 재주를 통해 알음알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안동시청 ‘칭찬합시다’코너에 곧잘 올라오곤 했다. 이전에 근무한 하회마을을 다녀간 관광객들이 그에게 안내를 받은 인연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글을 많이 올리는 것이다. 내용은 하나같이 그의 친절함과 유쾌한 가이드에 감사한다는 인사이다. 그렇다고 그가 직업이 문화해설사였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곳에 있어도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가 바로 그다.
오죽하면 나비축제로 유명한 전라도 함평군수가 그의 문화해설솜씨에 매료되어 직원들을 직접 데리고 와 벤치마킹을 해갔다고 한다.
온전치 못한 체력아픔 음악으로 이겨냈죠
그는 풍산이 고향이다. 경찰로 근무한 아버지와 평생을 고생한 어머니,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청렴하고 강직한 아버지였기에 집안 살림은 펼 줄을 몰랐고 어렵게 커왔다. 그런 그 앞에 닥친 시련은 군대가기 전까지도 단단치 못했던 체력이었다. 장티푸스예방주사를 잘못 맞았는지 그 이후 특별한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기가 일쑤, 몸무게가 48kg였단다. 당연히 군대가기는 틀린 그에게 부모님은 당신 아들이 대한민국 평균치에도 못 미치고 너무나 허약해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해나갈까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루었다고 한다. 거기다 그의 큰형이 소아마비로 고생을 해서 더더욱 부모님의 걱정이 컸다한다. 남달리 똑똑한 큰형이 신체적 불리함으로 그 뜻을 펴지 못하는 것을 본 권영태씨가 군대만은 꼭 가야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가슴둘레가 신장의 반이 되어야한다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만들고, 하물며 눈까지 나쁜 걸 감추기 위해 시력 검사판을 줄줄 외우고 다녔단다. 그리곤 모CF에서처럼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쳤다니 그도 참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군에 간 것이 약이 되었던지 어쨌든 그는 10kg이상을 찌워서 제대를 했다. 소위 ‘군이 사람 만든다’는 말이 권영태씨에게는 제대로 적용이 되었던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하니 해피바이러스로 퍼져
그의 남다른 의지는 살아오면서 약이 되었다. 오래전 그가 남후면사무소에 근무할 당시였다. 33살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에다 운전직으로 시작하다보니 한 가지라도 뚜렷하게 내세울게 없다는 것이 후회스러웠단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7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나온 것을 보고, 아무리 머리가 나쁜들 외국어 하나는 작정하고 공부하면 안 되겠나 생각이 들어서, 학원 한번 안다니고 악착같이 일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상적인 회화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 덕에 하회마을 근무시나 현재 박물관에 근무하면서도 유용하게 쓰임이 있어, 헛된 배움이란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가 이렇게 여러 재주를 지니게 된 데에는 언젠가는 필요할거라는 생각과 호기심이 작용했음은 물론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즐기는’ 것이다. 즐겁게 연주하고 즐겁게 안내하고 즐겁게 노래하니 보는 사람도 즐거운 것이다. 매사 최선을 다하고 마음가는대로 즐겁게 움직이니 그의 주변에 해피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이다.
“이렇게 흥에 겨우니 굶어죽진 않겠죠?”
어린시절 꿈은 음악가였다. 음악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으나 가정형편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악대부에 들어가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지니고 있는 모든 악기에는 그의 손때가 묻어있고 대부분 사연도 많은데 특히나 색소폰에 얽힌 일화가 재미나다.
안동댐에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때문에 트렁크에 색소폰을 넣는 것을 깜빡해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부은 적금을 타 큰마음 먹고 구입한 색소폰인데 그는 한 며칠 잠이 오지 않아 마당에 나가 달을 쳐다보며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부인 박종예(47세)씨가 측은하기도 하고 청승맞기도 하여, 나중에 좋은 것으로 하나 사줄 테니 그만 잊어버리라 했단다. 경찰서에 신고를 해놓았으나 오랜 시간 소식도 없고 해서 그도 그렇게 잊어버리나 싶었는데, 어느 날 꿈에 9시 뉴스의 엄기영 앵커가 나와 하는 말이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안동경찰서 관할의 분실물이 왜 대구에 있을까요?” 했단다. 부인에게 말했더니 ‘아직도 색소폰을 잊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고. 이상한 꿈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연락을 취했더니 우연히 안동에 온 대구사람이 분실물을 취득하고 있어서 극적으로 찾게 됐다고 한다.
톱 연주를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TV를 통해 본 톱 연주에 매료됐으나 악기를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느 날 용상동에 톱 연주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그 연주가가 다리를 다쳐 더 이상 톱 연주를 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들렸다. 한달음에 톱 연주가를 찾아가 본인이 열심히 연주하겠으니 악기를 내달라고 사정했다. 다리가 불편하게 된 사람에게 앞으로 악기를 본인이 잘 다루겠노라고 말하는 그도 참 맥랑한 고등학생이었다. 그때 얻게 된 톱이 그의 트렁크에 눕혀져 여기저기 행사 때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가끔 홀로 산행을 즐긴다. 한번은 주왕산엘 올랐다. 맥고모자 쓰고 라이방안경을 쓴 그가 주왕산 3폭포 계단 앞에서 모자를 벗어놓고 자기 흥에 취해 하모니카 연주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랑곳 않고 연주를 마친 그가 눈을 떠보니 맥고모자 안에 돈이 만원 들어있더란다. 놀란 그가 저만치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돈 만원의 주인이 누군가를 찾으니 그들이 놀라 한다는 말이 “당신! 보여요?” 했단다. 맹인악사로 착각해 연주값을 치르고 간 사람들. 돈을 돌려주고 다시 연주에 심취한 그 앞에 이번에는 할머니 한분이 또 돈 만원을 놓더란다. 역시나 돈을 돌려드리며 그가 생각한 것이 신나게 하모니카만 연주해도 밥 굶어죽지는 않겠다, 였단다.
투박한 질그릇도 쓸모있고 기쁨일수 있겠죠
일종의 문화봉사활동을 하고 다니는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거라며 한사코 봉사활동관련 이야기를 꺼려한다. 좋은 일 나누는 것이야 굳이 칭찬받지 않아도 현장에서 사람들의 호응에 감격하니 그걸로 족하고, 무슨 일이든 소문나면 생색내는 것처럼 보여 지는 편치 못한 마음간수를 하기 힘들어서이다. 십수 년이나 봉사활동을 이어온 그이지만, ‘미담사례’처럼 남에게 알려지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분기별로 한번씩은 여러 악기를 챙겨들고 노하동 ‘우리집’을 찾아간다. 무의탁 장애인보호시설인 이곳에서 여러 자원봉사활동이 이루어지지만 그의 연주소리에 귀 기울이고 흥겨워 모습을 보면 그도 마음이 짠하다고. ‘섬마을 선생님’ ‘한 많은 대동강’을 들려줄 때면 서글픈 표정을 짓다가도 신나는 음악에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 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낀다.
그를 주로 찾는 곳은 교회나 재활원, 여러 단체의 행사장, 가끔은 유치원에서도 찾는다. 시간대가 맞으면 방문을 하지만 아쉽게도 근무시간에 찾는 경우가 많아 불가피하게 못가는 경우가 많다. 안동민속박물관은 격주로 번갈아가며 월요일과 토, 일요일이 휴무다.
그런 시간적 아쉬움이 있어도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낭송부터 성악, 연주, 가이드, 행사진행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 그는 어린시절을 꿩이 울고 새가 날아다니는 시골집에서 보냈다. 그런 자연환경이 선천적으로 서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정갈한 마음을 갖게 한듯하다.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매시간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은 다하자는 인생모토로 살아온 그이다. 너무 ‘나서는’인상으로 보이기 싫어 행사도 마다하고 프로급실력이 아니라 민망해하는 그에게 지인이 했던 말은 가슴 한켠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도 그에게 가장 큰 용기를 준다고 한다. “고려청자만 기쁨을 줄 수 있나. 질그릇도 쓸모 있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나에게도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그게 곧 나의 희망입니다.” 소박한 그의 건강한 바람이, 2006년을 잘 갈무리하는 어는 곳에서 하모니카며 풀잎이며 시낭송으로 많은 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의 기쁨이 다른 이의 기쁨도 될 수 있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 왜소한 체구에도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쳤던 청년은, 주변에 자양강장제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중년이 되었다. 권영태씨의 신나는 인생 푸근한 인생철학이, 이 겨울 한파도 따뜻이 보듬어 안고 갈 것만 같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