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재재사(글/윤천근-안동대 교수)
날씨는 쾌청!
2월 초. 겨울의 막바지에 이르러있는 때이다. 그러나 음력으로는 12월이니 어쩌면 겨울의 막바지라는 표현보다는 겨울의 한가운데라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날짜로 보아서는 분명 그러한데, 날씨는 그것과 영 다르게 완연한 봄이다. 햇살은 따사롭게 쏟아져 내린다. 봄의 한가운데서나 만날만한 날씨이다. 엘리뇨 현상이니, 지구 온난화니 하는 말들은 이제 추상적인 것들이 아니다. 매일의 날씨를 통하여 피부로 느껴지는 구체적인 것들이다. 햇빛 속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이 조금 찬 기운을 담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오늘의 날씨는 여름의 초입에 가져다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풍산들의 한쪽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풍산은 들이 넓다. 들이 넓다는 것은 높은 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높은 산 가까이에서는 들이 있어도 넓을 수 없다. 다른 높은 산들이 가까이 다가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년기 지형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노년기 지형에서는 높은 산이 막바로 너른 들과 만날 수 있다. 그 경우, 높은 산은 거의 살을 갖지 않은 뼈산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청장년기 지형에서는 높은 산은 혼자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높은 산은 높은 산을 대동하고, 낮은 산은 낮은 산을 대동하며, 들은 또 다른 들을 대동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청장년기 지형의 특징이다.
우리의 산천은 청장년기 지형의 특징을 보여준다. 평야가 드물고 산골이 많은 것이 그 증거이다. 풍산은 평야는 아니지만 꽤 넓은 들이기는 하다. 풍산들은 풍산읍의 남쪽, 또는 서남쪽으로 발달되어 있다. 풍산읍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도 그렇게 높지 않다. 가장 높은 것이 북쪽에 걸터앉아 있는 학가산인데, 학가산도 본산이 풍산들의 한쪽에 걸터앉은 것이 아니라 그 본산으로부터 흘러내린 산줄기의 한 끝이 풍산들의 북쪽 변경을 형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학가산의 줄기와 만나는 풍산들의 북쪽변경에서도 산은 나직하게 흩어져 있을 따름이다. 야산이 둘러싸고 있는 너른 들이 풍산들이므로, 풍산들에서는 어디에서나 태양빛이 풍부하게 확보된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이 봄날 같은 햇살이 풍산들에서는 더욱 강렬한 빛살로 느껴지게 마련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풍산읍의 서쪽 끝에서 북쪽을 향하여 파고 들어가 고속도로를 아래로 건너 나아갔다. 길은 꺾어지기도 하고 휘돌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하며 학가산 쪽을 향하여 뻗어 있다. 길의 앞쪽에 저수지가 나타난다.
만운저수지. 안동 인근에서는 가장 큰 옛 저수지이다. 너른 풍산들을 적시는 이 저수지는 댐이 생기면서 가장 많은 물을 저장하고 있다는 명성을 잃어 버렸다. 안동에 두 개의 댐이 생겼으니 저수용량의 큰 것 순서로 치면 첫째도 둘째도 댐이 차지하고, 만운지는 세 번째로 밀려난 셈이다. 그러나 만운지는 여전히 상당히 많은 용량의 물을 담고 풍산벌을 내려다 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풍산벌을 적셔주는 젖줄 역할은 만운 저수지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길은 만운 저수지를 동편으로 감싸고 돌아 학가산 쪽으로 뻗어나간다. 만운 저수지의 너른 물밭과 그 한편을 휘도는 좁은 길, 그 주변에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낮으막한 산들 사이에는 번들거리는 양광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선성이씨묘하동천
만운 저수지의 위쪽으로 올라서면 길은 구불구불 사선을 그리며 학가산의 아래쪽 품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길이 두어 번 구불거리고 나서, 일단의 바위군이 길을 막고 나선다. 세 무더기의 바위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무더기의 바위군과 세 개의 큰 바위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위군은 짧은 횡선을 그리며 2차선의 콘크리트길을 막아선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세 개의 큰 바위는 오른편에 늘어섰고 하나의 바위무더기는 왼편에 모여 서 있다.
이 지점에서 길의 왼편은 바로 왼쪽 산줄기의 경사면이다. 산은 낮지만 경사면은 조금 가파르다. 그 경사면 위에 길에서 보았을 때 여섯 덩어리의 큰 바위들이 2층으로 올려 쌓여 있다. 위아래 각 세 개의 바윗돌이다. 아래쪽 가운데 바윗돌의 표면은 수선방향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깎여 있고, 그 속에 ‘선성이씨묘하동천’宣城李氏墓下洞天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골짜기 전체를 선성이씨의 묘역으로 선언하는 각자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 선성이씨 묘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편의 세 개의 큰 돌들은 길과 분지의 오른편 골짜기 끝을 타고 내리는 폭 좁은 시내 사이에 조금씩 사이를 띄우고 점점이 놓여져 있다. 시내 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가장 덩치가 작은 사각바위이다. 이 바위의 동편은 시대의 한쪽 제방을 이룬다. 이 바위의 서편에는 바위를 사각형으로 갈아내고 글씨들을 써 놓은 것이 보인다. ‘도소호계 서락용산’陶笑虎溪, 西落龍山이라는 두 줄의 글씨는 좀 크게 되어 있고, ‘신축중추 만촌옹제’辛丑仲秋, 晩村翁題라는 글씨는 좀 작게 되어 있다. 신축년 가을에 만촌 늙은이가 썼다는 이 글의 정확한 뜻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이 바위는 동편에 늘어선 세 바위 중 규모가 가장 작은 것에 속한다.
이 바위의 서쪽으로는 바로 붙다시피 하여 그것보다 대여섯배는 확실히 되는 큰 사각바위가 놓여져 있다. 이 바위는 남쪽에서 보면 위쪽이 정사각형으로 세워져 있고 아래쪽이 직사각형으로 넓게 퍼져 있는 것이 꼭 관모의 형상이다. 그래서 이 바위는 ‘모암’帽巖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위의 남쪽 면, 관모 형상의 위쪽 편으로는 작은 직사각형이 옆으로 깎여 있고, 이 바위의 이름인 ‘모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의 남동쪽 사면은 전체가 다 하나의 편편한 횡면을 이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관모형상은 찾아볼 수 없다. 여기 바위 면에는 3분의 2쯤 되는 높이에 수직으로 직사각형 모양이 깎여진 속에 ‘4모암’四慕巖이라는 세 글자가 위에서 아래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쪽으로 ‘만촌’晩村이라는 작은 글씨가 횡으로 써져있다. 이것 역시 ‘네 개의 사모하는 바위’라는 것인지, ‘사각의 사모하는 바위’라는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글씨라고 하겠다.
‘모암’의 서편으로는 조금 떨어져서 그것보다 1배반은 됨직한 바위가 길 위로 상체를 걸쳐놓고 있다. 이 바위는 길 위쪽으로 기어오르는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한쪽 어깨 어림에 ‘호암’虎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사람은 이것을 호랑이의 형상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았을 때에는 바위는 그대로 거북의 형상이다. 이 바위를 거북의 형상이라고 보는 것은 모습을 중시한 것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형상을 두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하겠다. 이 바위를 호랑이의 형상이라고 보는 것은 의미를 중시한 것이다. 그것은 이 골짜기에 부여하고자 하는 위엄을 이 바위를 통해 형상화하고자 하였던 사람의 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그 사람은 이 바위의 생긴 모양과는 조금 다르게 호랑이의 의미를 바위 속에 덧씌우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바위의 어깨에 ‘호암’이라는 각자를 남기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옛날에는 바위가 호랑이 형상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위의 얼굴부분은 마모와 탈락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지라도, 몸체부분은 옛모습 그대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체 부분은 등껍질을 덮고 있는 거북의 형상이다. 이곳은 탈락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매끄럽고 단단한 바위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암’은 물론이고 ‘모암’ 역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바위의 이름이다. ‘호암’이 이 골짜기에 위엄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식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모암’은 이 골짜기에 선조를 모심으로써 귀한 후손을 생산하고자 하였던 의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선성이씨 묘하동천 주변은 그렇게 선성이씨 일문의 염원과 바램이 짙게 드러나 있는 지점인 것이다.
근재재사
선성이씨 묘하동천 바위군으로부터 한 굽이를 돌아 올라가면 포장도로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는 시선방향으로 옛 건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건물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인 근재재사이다. 거기서 길은 비포장으로 한 굽이를 돌아 오르고, 근재재사 앞부분에서는 잠시 포장도로가 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근재재사를 지나면 비포장도로로 돌아가 산골짝 깊은 곳을 향하여 계속 기어 올라간다.
근재재사 영역은 평탄한 산골짝의 모습이다. 평탄면은 근재재사로부터 시작하여 그 위쪽으로 오래 계속된다. 본격적으로 북쪽 산기슭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기까지, 평탄면은 이어지는 모양이다. 선성이씨 묘하동천 영역 아래로는 만운지에 이르는 평탄면이다. 이 주변 골짜기 좌우에는 사과밭들이 늘어서 있다. 선성이씨묘하동천 영역에서 근재재사 영역까지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경사면이다. 이 부분은 골짜기도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며 커다란 바위들을 늘어놓고 있고, 골짜기 서편에 좁직하게 붙은 경작지도 층층으로 다락논을 지으며 높이를 단축하는 모습이다.
근재재사 앞에서 길은 나뉘어 진다. 이제까지 골짜기를 가르며 올라왔던 길은 계속 앞으로 이어져 나가고, 또 하나의 길이 생겨나 동향을 시작한다. 이 길은 좁직한 시멘트 다리를 통해 개울을 횡단하고 근재재사 정문 앞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근재재사는 모선루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재사건물 앞에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운동晩雲洞 모선루慕先樓
중요민속자료 제 180호
안동시 풍산읍 만운리
이 건물은 근재近齋 이전李?(1486-15290)의 덕을 기리는 재실로 조선 선조 24년(1591)에 건립되었다. 이전은 자가 무선茂先으로 조선 성종 17년에 태어나서 조선 중종 24년에 타계하였다. 근재는 기묘사화 때 고향에 내려와 풍산현에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모선루는 선조를 기리고 사모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미음’자 평면을 가진 재실로 기둥과 보아지 등에서 오래된 수법이 보인다. 안채는 정면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우측에 사랑방이 있고 안방 앞마당 쪽으로 부엌 2칸과 찬방 1칸을 달았다.”
집은 동서 방면으로 길쭉하고 남쪽 방면으로 입을 열은 디귿자 형 건물의 남쪽 터진 부분에 문간채를 붙여 세우고 빈틈을 짧은 벽으로 막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깥으로는 역시 동서 방향으로 길쭉하고 남쪽이 짧은 직사각형 모양의 담이 돌아간다.
담장은 눈높이에 이르고 있었는데, 적당히 자른 돌을 시멘트로 이겨붙여 쌓았고, 그 위에 기와를 올렸다. 남쪽 짧은 담장의 한가운데에는 전면 1칸반, 측면 반칸 정도의 대문이 만들어져 있는데, 벽면은 시멘트칠을 한 것이었다. 이 회칠된 벽면은 뒤쪽의 재사 건물과 아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본건물의 벽면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담장과 대문이 시멘트로 되어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배합이다. 특히 시멘트의 회색 색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문의 회벽은 무신경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남쪽, 디귿자의 터진 부분을 막고 서 있는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길쭉길쭉한 자연석을 3단으로 쌓아올린 대좌 위에 건물을 세웠다. 동쪽 1칸은 방이다. 이 부분의 대좌영역에는 굴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중앙 1칸은 헛간이 있는 곳이다. 벽면의 3분의 2쯤 되는 높이에 시렁을 얹은 통나무의 둥근 단면이 일선으로 늘어서서 조금씩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아래쪽 벽면은 나무판과 나무문으로 되어 있고, 위쪽 벽면은 흙으로 되어 있다. 서쪽의 1칸은 중문이다. 사각의 나무틀 속에 두쪽 나무문이 달려 있다. 현대식 자물통이 달려 있고 문은 잠겨 있는데 동쪽 문기둥에 달려 있는 플라스틱판의 ‘개조심’이라는 붉은 글씨가 생경하게만 느껴진다.
이 문간채 건물은 좌우의 건물에 비해서 조금 전면으로 나와서 있다. 서쪽 건물채는 이 문간채의 앞선으로부터 반간정도 물러나 있다. 그러나 동쪽 건물채는 이 문간채의 뒤쪽으로 약 50센티 정도 물러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는 돌을 흙으로 붙여 쌓아 메꾸었다. 서쪽 건물채의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반 칸 정도의 대문채 벽면도 돌과 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벽면의 윗선까지만 그러하고 그 위쪽의 지붕면 부분은 삼각형으로 그냥 비워져 있다.
서쪽 건물은 누각이 있는 곳이다. 자연석을 4단으로 쌓은 기단면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에서 보았을 때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를 갖고 있다. 이 중 서쪽 건물채에 속한 것은 남쪽 4칸 이다. 이 4칸 부분에는 기단면으로부터 1미터쯤 되는 높이에서 폭 좁은 난간이 서쪽을 향하여 50센티 정도 튀어나오는 방식으로 가설되어 있다.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건물 측면 1칸의 벽면은 횡으로 3분되어 중앙면의 한가운데 중간 크기의 방문 두쪽을 달았고, 벽면은 흙으로 메꾸어져 있다. 이 벽면의 동쪽 끝은 건물채의 측면 중앙부위에 맞붙어 있다. 서쪽에서 보았을 때, 이 건물의 남쪽 제1칸은 마루방인 듯하다. 역시 벽면은 횡으로 3분되어 중앙면에 방문이 배치되어 있다. 남쪽 제2칸으로부터 제4칸 까지는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벽면은 3대 1정도의 비례로 횡분 되어, 아래쪽은 나무판과 나무문으로, 위쪽은 흙으로 되어 있다. 이 3칸의 중앙칸에는 처마 아래로 모선루라는 현판이 매달려 있다. 이 3칸 부분의 안쪽이 누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서쪽벽면의 맨 위 1칸은 북쪽 건물의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이 부분 역시 마루로 되어 있는 영역이라 하겠다. 북쪽에서 보았을 때, 북쪽건물은 전체 6칸 규모를 하고 있다. 동쪽의 2칸과 서쪽 4칸은 조금 높이가 다른 기단면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이 1줄 정도 더 높은 기단면이다. 북쪽 벽면은 기초면을 제외하고 2단으로 구분되었다. 중앙의 횡목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는 벽면마다 조금씩 다르다. 서쪽 방향으로부터 보았을 때 제1면은 아래쪽 벽면 중앙에 작은 방문을 한쪽 달고 있다. 제2면은 아래쪽 벽면이 나무판으로 되어 있고, 위쪽 벽면의 한쪽에는 작은 사각형의 바람창이 마련되어 있다. 제3면은 아래쪽 벽면 중앙에 나무판 문이 2쪽 달려 있는 것이 제2면과 다르다. 제4면은 위쪽 벽면 위쪽으로 바람창 하나를 달고 있는 모습이며, 제5면은 아래쪽 벽면 중앙에 방문 하나를 달고 있고. 제6면은 온전히 다 흙벽으로 되어 있다.
동쪽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뒤로부터 제1칸은 북쪽건물과 중첩되는 부분인데 벽면이 2분되어 위아래가 다 흙으로 발라져 있다. 제2칸과 제 3칸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벽면은 아래3 위 1 정도의 비례로 횡분 되며, 아래쪽에는 중앙에 2쪽 나무문을 달았다. 제 4칸은 제 1칸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건물의 남쪽 측면 1칸은 기초부분, 중앙부분, 처마부분으로 벽면이 1대 2.5대 1 정도의 비례로 횡분되며, 중앙면의 중간부분에 작은 방문을 두었다.
모선루는 골짜기의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닭벼슬 같은 모양의 산줄기 서쪽 기슭면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건물이 서향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또한 남쪽으로 골짜기가 길쭉하게 열린 것을 바라다 볼 수 있으므로, 남향의 시야가 확보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건물은 이런 두 가지 조건이 뒤섞여서 건물의 특징이 마련되었다. 그러므로 남향의 자세를 취하여 중문과 대문을 남쪽으로 두고, 기단면에 차이를 두어 남쪽 건물은 낮게 북쪽 건물은 조금 높게 배치하면서도 건물의 측면을 길게 하여 서향의 자세를 갖게 하는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건물영역은 골짜기의 중간쯤에 있는 조금 높은 평탄면의 출발점을 이용한 것이다. 건물의 앞쪽은 100여평 규모의 밭이 마련되어 있고, 밭의 끝 쪽 경사면에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넝쿨식물에 휩쌓여 남향의 자세를 취하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근재 이전의 묘역
모선루 건물의 좌우로는 잘 가꾸어진 묘역들이 있다. 좌측, 그러니까 동쪽 측면에는 골짜기 안을 향해 흘러내리는 산기슭의 돌출면을 따라 일선으로 10여기의 묘소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근재 이전의 묘소는 그 꼭대기 부분에 있다.
근재 이전의 묘소를 향해 올라가는 길은 묘역의 측면을 이용하는 것이다. 묘소들이 치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묘소들은 묘역이 서로 맞물리기도 한다. 뒷묘소의 아랫부분이 아랫 묘소의 뒤편으로 뚫고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맞물림이 서로의 봉분영역을 훼손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봉분들이 조금씩 방향을 틀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풍수적 선택의 결과일 터인데, 어쩌면 좁은 묘역에 큰 봉분을 갖춘 묘소들을 다닥다닥 붙여서 들여놓기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방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묘역의 제일 위쪽에 있는 것은 근재 이전의 묘소이다. 묘역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랫단은 사각으로 자른 돌을 쌓아 단을 만들고 좌우로 좀 가냘퍼 보이는 망주석을 벌려 세웠다. 윗단은 겉을 탁마하고 반듯하게 직사각형으로 자른 화강석을 쌓아 단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봉분을 앉혔다. 이 2층의 단을 만들기 위해 화강석 돌을 쌓은 것은 아무래도 좀 생경하여 보인다. 화강석 판석으로 쌓은 봉분 기단면의 한가운데에 바닥에 박아 세운 향탁은 옛 돌이다. 봉분을 감아 돌린 호석과, 봉분 앞에 깔은 상탁도 옛 돌이다. 호석은 봉분의 뒤쪽만을 제외하고 3면을 감싸고돈다.
옛 돌의 색감은 자연스럽고 따스해 보인다. 새 돌의 색감은 부자연스럽고 차가워 보인다. 옛 묘역에 새 돌이 들어가면 그 둘은 서로 어울리기 어렵다. 거기다 탁마된 돌의 경우에는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도 자연스러움을 획득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윗단, 봉분의 오른편으로 조금 치우친 지점에는 비석이 서 있다. 아담한 크기의 비석이다. 비석의 지붕은 기와지붕의 모습을 하고 있고, 대좌는 복련의 형상이다. 비신은 색이 바랜 오석인데, 지붕과 대좌를 구성하고 있는 석재와는 성질이 다른 것이다. 개갈하면서 오석을 쓴 것이라고 하겠다. 비석의 전면에는 왼편으로 ‘참봉근재예안이공지묘’參奉近齋禮安李公之墓라는 글씨가, 오른편으로는 ‘배공인남양홍씨부’配恭人南陽洪氏?라는 글씨가 내려써져 있다. 제법 큰 글씨이다.
비석면에 새겨진 글자는 많지 않다. 내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공의 이름은 ‘전’, 자는 ‘무선’茂先, 성은 이씨, 본관은 전의인데 후에 예안으로 적을 옮겼다. 선계는 가승에 다 갖추어져 있다. 공은 성화 병오년 6월 4일에 태어났으며, 6세가 되었을 때 부친 사직공에게 공부를 배우기 시작하여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부친은 매양 칭송하여 ‘이 아이의 효성하고 우애하는 성품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니 더 이상 보탤 것도 없다’고 하였다. 종제인 명蓂(1496-1572)이 책을 끼고 와 공부하였는데 엄한 스승으로 모셨다. 항상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같이 재주가 낮은 사람은 비록 열필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가더라도 가형의 한발짝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문을 닫아걸고 종적을 감추어 성리학 공부에 몰두하였고, 예법에 맞추어 행동하여,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더욱 엄격히 하였다. 세상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해 휩쓸리는 것이 더욱 심해지기에 이르자 서울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영가의 풍산현을 택하여 살며. 시로써 그 뜻을 드러냈다.
허둥대는 세상 어두움은 이미 깊었으니/
어떤 일에 몸을 맡겨 크게 바름을 얻겠는가/
뜬 세상 공명 따위는 즐길 것이 못되네/
남쪽으로 옮겨가 나물 뜯고 사는 게 제일이리/
매양 말하기를, ‘우리 집안 조상들이 힘쓴 것은 ‘청백렴근’淸白廉謹 네글자 뿐이다. 다만 이것을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 집안의 행복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근사록>>을 택하여 절실하게 물어 배우고, ‘근재’近齋라는 두 글자를 손수 써서 호로 삼았다. 을유년에 대신이 경사에 밝고 행의에 독실하다고 경연에서 특별히 천거하였고, 병술년에 재천거 하니, 서부참봉이 주어졌는데 취임하지 았았다. 가정 기축년 7월 19일에 집에서 타계하시니, 향년 44세였다. 현의 북쪽 호암虎岩의 간좌艮坐로 모시고, 공인 홍씨와 합장하였다. 공에게는 3남1녀가 있으나 다 어리므로 상세히 적지 않는다. 평소 덕과 행동을 아름답게 닦아 죽을 때까지 자손들이 살필 필요가 없게 하였으니 어찌 무겁고 격려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갑자기 한두 가지 일을 적어 여러 후손들과 더불어 후일 붓을 잡은 사람이 채택하여 완전한 글을 짓게 되기를 기다려 본다.”
이전은 풍산 우릉골에 입향한 예안이씨 3형제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기묘사화의 광풍을 피하여 3형제가 같이 내려와 한 마을에 서로 이웃해 살았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