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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숙아! 울지 마라(글/이인우-의성 안평중학교 교사)

축구하는 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떠나면 운동장은 한가롭다 못해 외로워 보인다. 한달에 한번 정도 학생들의 함성이 운동장 가득 한 날도 있다. 그 날은 전교 남학생이 하나 되어 공을 차는 날이다.
8교시를 마치고 청소활동이 끝나면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교정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날이 있다. 하급생이 상급생을 부르는 소리, 상급생이 하급생을 부르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이름을 부르면 친구나 하급생을 부르는 3학년의 목소리이고, ‘아무개 형아!’ 하고 부르면 하급생이 상급생을 부르는 소리이다.
무슨 과제를 하는지 3학년 학생 몇 명이 도서관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다. 1학년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자며 졸랐다. 3학년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들은 안절부절하며 복도를 서성인다. 오늘은 안 될 거라며 숙제를 낸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전교생이 참여해야 축구팀이 겨우 구성되는 것이 우리 학교의 학생 수이다. 남학생 한 두 사람만 없어도 축구팀이 구성되지 않는다.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사발통문을 돌리고 편을 갈라야 한다.
학원에 가는 학생들도 있다. 안평면에는 학원이 없기 때문에 가까운 봉양이나 의성읍까지 가서 공부를 한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오후 8시가 넘는 시간이 되므로 축구하는 날은 학원이 쉬는 날로 잡아야 한다.
전교생이 축구를 하는 날은 학교 가득 활기가 넘친다. 축구팀이 구성되면 운동장은 저녁 늦도록 떠들썩하다. 선생님들도 신이 나서 얼음물을 떠다 주며 구경을 한다. 모처럼 전교 남학생이 뭉쳐진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도 학생들이 다칠까 노심초사하며 운동장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박꽃을 모르는 촌아!
요즘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생각 넒히기에 ‘요람기’라는 소설의 일부가 나온다. 6차 교육과정에서는 전문이 나왔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그런데 소설 요람기를 가르치며 농촌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하는 만족감을 주기위하여 진지한 자세로 수업을 했는데 결과는 엉뚱한 일로 깨어지고 말았다.
문제에 ‘누나’ ‘응’ ‘박꽃은 왜 밤에만 피지?’ 에서 답을 원하는 것이 있다.
기대하는 답은 ‘달빛을 좋아해서 그런데’ 혹은 ‘다른 꽃들이 질투할까 봐 그러지’ 였는데 엉뚱하게도 ‘박꽃이 뭐지요’ 또는 ‘박이 뭐지요’ 라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순간 ‘여기가 농촌학교 맞나!’ 하고 생각했다.

학생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는 것 보다 농촌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질문을 찾기 시작했다. ‘여름 철 마당에서 식사를 해 본 사람’하고 손을 드는 시늉을 했다. 어린 시절 여름밤이면 마당에서 식사하고 별을 보며 잠이 들었던 것을 상상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고기를 구워먹기 위하여 마당에서 밥을 먹었다는 대답이다. 그러면 ‘별을 보며 잠들어 본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는 모기와 고양이가 있는데 왜 마당에서 자느냐는 것이다.
박꽃은 이슬 내린 늦은 저녁에 시골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면 너무 아름답다. 그믐달이라도 어스름히 비치면 더욱 아름답다. 저녁 늦게 친구 집에 다녀오면서 문득 쳐다본 지붕, 초가지붕 위에 몇 개의 박이 매달려 있고 하얀 박꽃이 잎사귀 위로 고개를 내밀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보인다.

요즘은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없다. 시골에 살아도 양옥집에서 모든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인터넷에 물들여지고, 텔레비전으로 도시나 농촌의 구분이 없어지고, 핸드폰으로 거리감이 없어졌다. 농촌은 더 이상 목가적으로 바라보는 시골이 아니다. 농촌 학생들도 이제는 ‘촌아’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한다. 도시화 내지는 도시와 다름이 없다.
시골에 살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푸근한 이웃의 인정으로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박꽃은 몰라도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탐색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할 수는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동숙아 ! 울지 마라
화랑문화재 행사 중 백일장을 하는 날이었다. 교내대회에서 선발된 학생 3명을 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출근해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선발된 현이와 동숙이, 영이를 차에 태워 대회장인 경상북도교육연구원(안동)에 갔다. 백일장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일러주다 보니 언제 왔는지 연구원에 닿았다. 벌써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9시 30분까지 오라고 했지만 모두 새벽을 다투어 왔다.

대강당에 정해진 자리를 찾아 앉도록 하고 밖으로 나오니 학생을 인솔하신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국어선생님 중에는 특히 순수함이 묻어 있는 분들이 많다. 다정한 이웃을 만난 듯 반갑게 악수를 했다. 12시가 넘어서야 2학년 현이가 웃으며 나왔다. 동숙이와 영이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아마 글짓기가 잘 안된 모양이었다.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썼는지 묻다 보니 시간이 너무 흘렀다.
점심을 먹어야겠기에 무엇을 먹었으면 좋을지 물으니 떡볶이, 피자, 자장면 등이 술술 나왔다. 그러다가 ‘무엇이든 좋아요’하며 선택권을 나에게 넘겼다.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느라 아침도 못 먹었을 애들을 생각하며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출장비도 조금 나왔으니 고기라도 구워주고 싶었다.
식당에 도착하여 내가 차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이가 ‘여기는 맛이 없어요’ 라며 고기를 싫어한다는 표현을 했다. 그러자 뒷좌석에 있던 동숙이와 영이도 고기에 불만이 있는지 내리지 않았다.

여기서 지금 점심을 먹는다 해도 학교까지 학생을 태워주려면 오후 3시가 넘어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화를 내어 오랜만에 안동시내에 온 시골 여학생들의 들뜬 기분을 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시 차에 타면서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것이 답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숙이는 ‘시내에 가서 떡볶이 사먹고 이미지 사진 찍어요.’라고 했다. 영이도 ‘그렇게 해요’라며 콧소리 섞인 어리광으로 조르기 시작했다. 요 귀여운 놈들의 바람이야 알지만 토요일 오후 시간은 딱하게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여기서 고기 먹고 시내로 가자’라며 달랬다. 그러자 우르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설득을 할 요량이었다.

동숙이와 영이는 안동시내를 구경하면서 떡볶이도 사먹고 이미지 사진도 찍을 것을 고집했는데, 현이는 부모님과의 약속 때문에 집에 가야할 형편인 것 같았다. 동숙이와 영이는 현이만 태우고 가면 자기들은 놀다가 버스로 가겠다고 졸랐다. 나는 “행동을 통일해라 그래야 내가 따라 다닐 수 있다. 두 가지 행동이 나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너희들을 집까지 태워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안심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세 명은 행동이 통일 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차에 태우고 문을 닫았다. 시내 방향이 아닌 학교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했다. ‘시내는 나중에 가도 되는 일이다. 시내도 가고 현이도 태워 주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여학생을 아무도 모르는 시내에 두고 집에 갈 수는 없는 일이다’고. 차 안은 정적이 흐르면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후 동숙이 쪽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룸 밀러로 보니 동숙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동숙이는 모처럼 안동에 왔으니 시내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생을 안전하게 집까지 태워주려는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시내를 구경하고 싶은 순수한 시골 여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학교까지 오는데 무척 힘들었다.
학교에 오니 동숙이와 영이는 자전거가 학교에 있다며 교문에서 내렸다. 언니들에게 미안하다는 현이를 집에까지 태워주고, 혹시나 하여 학교로 오니 아직까지 동숙이와 영이가 자전거를 밀며 힘없는 걸음을 걷고 있었다. 동숙이는 눈이 붓도록 울고 있었다. 영이는 동숙이를 달래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가 나를 보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원망했다. 곤란해진 나는 동숙이를 달래는 방법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동숙아! 선생님이 미안하다. 울지 마라. 다음에, 아니 몇 개월 후 고등학교에 가면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단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