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벚꽃 엔딩, 축제장길(글/사진/ 백소애_편집기자)
벚꽃 흩날리는 골목학개론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특히 <4월 이야기>라는 영화가 좋다. 도쿄의 대학에 갓 입학한 시골 여학생의 봄의 일상이 벚꽃처럼 기분 좋게 흩날리는 풋풋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실 별 내용도 없다. 고교시절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도시로 대학을 오게 된 여주인공이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 주위를 배회하고 괴짜 친구에게 낚여 낚시 동호회에 들고 그럭저럭 도시의 자취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다인 영화다. 그럼에도 영화는 내내 4월의 봄처럼 상큼하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두 주인공은 골목 사이사이에 위치한 자신이 사는 동네를 탐방해 보라는 과제로 인연을 맺게 된다. 정릉에 사는 음대 신입생 서연에게 건축학개론의 교수는 ‘정릉이 누구의 묘냐?’고 묻는데 그녀는 ‘정조?’라고 답했다가 교수의 얼굴을 보며 간 맞추듯 다시 ‘정종? 정약용?’이라고 답한다. 관객들과 함께 나도 웃지만 사실 누구의 묘인지는 모른다. 아마 관객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貞陵洞)에 위치한 정릉이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이며 1409년(태종 9)에 지금의 정동(貞洞)에서 정릉으로 옮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정릉에 사는 사람이 알아야 할 의무는 다분히 있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갓 이사 온 여주인공이기에 ‘정약용’은 흔쾌히 용서가 되는 것이다.
경주와 더불어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곳 안동에서도 ‘정릉이 누구의 묘냐’는 따위의 질문을 받는다면 막힘없이 술술 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을 것 같다. 농담 삼아 안동시민 모두들 ‘안동문화지킴이’활동을 한다면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 안동의 건축학개론은 물론이요 골목학개론까지 줄줄 읊을 수 있다는 것,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건축학과 교수가 “자기가 사는 동네 골목을 여행해 보세요. 사는 곳부터 애정을 가지고 잘 알아보는 것,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고 말한 것처럼 자신의 동네를 애정을 갖고 잘 알아보는 것, 자신의 주변을 알아가는 게 자신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골목’은 큰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을 일컫는다.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집들은 서로의 암묵적인 표시에 의해 골목공간을 나누고 청소 순번을 정하곤 한다. 이제 택배기사들에게도 골목 첫 번째 집 등의 지명 안내가 흔치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학창시절 가정방문을 하는 선생님께 ‘사거리에서 쭉 올라오다가 골목 첫 번째 파란 대문집’이라는 집 안내처럼 정겨운 골목길 설명이 그리운 시대다.
영화 속에는 ‘집을 짓는 과정과 사랑하는 과정은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 커가는 키를 담에 표시해둔 소중한 기록을 부수지 않고 집은지어진다. 이 세상 모두의 첫사랑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지 몰라도 미숙하고 떨렸던 첫사랑의 기억만큼 4월의 벚꽃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이런 계절에 안동에도 벚꽃축제가 열렸다. 지난 13일 비오는 금요일에 시작된 벚꽃축제는 스물네번째 맞는 안동예술제와 병행해서 개최되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축제장 길 부근에는 벚꽃길을 걷는 인파와 노천음식점, 야시장이 들어섰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번 호 <골목기행>은 벚꽃거리 스케치를 해보고자 한다. 평일 오후의 벚꽃거리는 인도며 차도며 나트막한 집 지붕이며 축제장길 어느 곳에도 흩날리는 벚꽃이 길 가는 행인을 붙잡아두곤 했다.
벚꽃잎이 떨어지는 축제장길
벚꽃거리에는 새로 펜스를 설치하고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게 벤치도 놓여 있다. 큰길 아래 낮은 지대에 위치한 축제장1길 골목에는 날려온 벚꽃잎이 골목에 흩뿌려져 있다. 평상에 앉아 고지서를 들여다보는 할머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낮은 담벼락에는 작은 화분이 즐비한데, 빨아놓은 신발도 그 담 위에서 말리는 중이다. 슬레이트지붕, 나무문과 문풍지가 발린 방문 등 개조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 집의 소박한 전경이 눈길을 끈다.
축제장1길에서 올려다본 벚꽃거리의 벤치에는 담소를 나누는 여인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맞은편으로는 안동체육관 건물이 보인다. 동네 정자에는 아직 어르신들이 모일 계절이 아닌지 조용하다. 보조장비를 이용해 겨우 발걸음을 떼는 할아버지와 관절이 좋지 않은 할머니의 뒷모습이 화려한 벚꽃 아래 축제장1길의 풍경을 어쩐지 쓸쓸해보이게 했다. 축제장길에 살지만 축제에서 소외된 느낌은 왜 드는 것일까.
벚꽃길의 쌍둥이 자매
안동탈춤공원 뒷길로 걷다가 벚꽃길 중간즈음에 자리잡고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이선화, 미화 쌍둥이 자매를 만났다. 이들은 금, 토, 일 주말에 열렸던 벚꽃 프리마켓에 참석 후 평일 이곳 벚꽃길에 전을 편 것이다. 삼십대 초반, 평범한 주부인 이들이 액세서리상으로 나선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초보 장사꾼은 벚꽃길 한복판에 전을 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아이를 키우면서 언젠가는 가게를 열고픈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평일에도 옥동이나 시내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척하니 액세서리를 자판을 펴는 용감한 초보 장사꾼들이다. 처음엔 친구사이로 보였는데, 쌍둥이 자매라는 얘길 듣고 자세히 보니 그렇게 보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닮은 얼굴이다. 자매는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작지만 제법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며 벚꽃길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문화와 일상이 만나는 곳
안동문화예술의전당 뒷길 나무에는 ‘소원나무’라 이름붙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솔로탈출’ ‘건강기원’ ‘돈벼락’사연이 묶여져 펄럭인다. 행운과 복을 준다는 달마도를 파는 아저씨는 스스로 ‘기인’임을 자청하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한다. 구경꾼들이 많이 몰린 걸로 봐서 본전은 뽑을 듯하다.
전당 잔디에는 삽, 호미, 낫 등 각종 농기구를 미술 오브제처럼 전시해 솟대처럼 세워놓은 야외전시장이 눈길을 끈다. 안동문인협회에서 세워둔 비석에는 이육사, 권정생 선생의 시가 새겨져있다. 각종 시와 그림, 조형물이 전시된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야외를 지나 안동청소년수련관 뒷길 노천에는 야시장과 식당천막이 형성되었다.
고래고기, 장터국밥, 산채비빔밥, 홍어회 메뉴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탁자에는 얼룩덜룩한 비닐이 깔려 손님을 기다린다. 도토리묵부터 고추전, 순대볶음까지 없는 게 없는 메뉴부터 꼬챙이에 꽂아뱅글뱅글 돌아가는 바비큐까지, 한산한 오후시간대가 지나 저녁이면 동동주에 파전 손님으로 북적이리라.
케밥을 파는 외국인과 트롯트 CD와 테이프가 진열되어 있고 저가 서적이 세일 중이다. 또 야시장하면 빠질 수 없는 사격게임, 동전 던지기 등 조잡한 게임과 생필품부터 각종 액세서리가 판매 중이고 외국인 판매상도 보인다. 행사장 한켠을 시끌벅적하게 하는 엿장수는 아예 천막을 친 상설공연장을 두고 열연 중이고 그늘을 피해 구경 겸 앉아 있는 어르신들이 엿장수의 요란한 화장과 신명에 자리 잡고 구경 중이다.
옥수수며 핫바, 번데기, 군밤 따위의 주전부리가 간이냉장고 속 음료수와 함께 진열된 벚꽃거리. 국밥집과 벚꽃거리와 생필품 천냥마트는 어쩐 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단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야시장의 생리상 이해가 가기도 한다.
4월의 벚꽃 엔딩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에서 4월의 ‘벚꽃 엔딩’을 맞는다. 이제 곧 벚꽃도 지고 봄의 기운을 느껴볼 새도 없이 더운 날이 올 것이다. 봄과 가을의 여운은 느껴볼 여유도 없이 춥거나 더운 계절을 사람들은 더 잘 느끼니까. 캐릭터 분명한 사람이 기억에 잘 남듯 봄처럼 밋밋한 계절은 사람들 기억에 금방 잊혀져 간다. 그래도 산책하기에 봄처럼 좋은 날이 없다. 봄처럼 풋풋한 계절이 없다. 이 계절이 다가기 전에 안동 거리를 휘휘 한 바퀴 돌아보리라. 요즘 ‘대세’라는 풋풋한 거리의 악사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들으며 걷자니 더 운치가 있다. 벚꽃축제 개막식에 세워진 권정생 선생의 시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하늘이 좋아라 해질녘이면 더욱 좋아라’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39호>